입양
어느 날 저녁, 같이 밥을 먹던 신랑에게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던 친구가 드디어 아이를 가지게 되어 낮에 친구들의 채팅방이 축하 메시지로 도배됐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잘됐다며 축하를 하던 신랑이 곰곰 생각하더니 혹시나 계속 아이가 안 생겼다면 입양하는 건 어떤가? 라며 뜬금포를 날렸다.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도 만약에 그랬다면 입양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라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장 드는 생각을 내뱉었다. 우린 이미 아이가 있고 그 상황이 되어보지 못해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둘째 계획은 없지만 혹시라도 둘째를 입양하는 건 어떠한가, 생각해봐도 어려운 문제다.
내 배에서 나온 둘째라도 첫째는 동생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고 그들 사이의 미묘한 차별이 있기 마련인데 입양을 한 아이와 내 아이와의 사이에서 과연 차별을 두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러려면 첫째보다 더 관심을 주고 의식적으로 잘해주려 노력하겠지? 최대한 차별을 하지 않았다고 한들 아이들은 그 마음을 알아줄까? 다 같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불확실성이 커져 불가능한 일로 결론이 되어가는 중에 신랑의 의견을 물었다. 갓난아기는 되는데 사람에 대한 인지능력이 되는 아이는 안 되겠단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다니.
그럼 이번에는 만약에, 아주 만약에를 거듭 붙이며 아주버님네나 동생네 부부가 불의의 사고로 아이들만 남기고 세상을 뜨게 되면 조카들은 우리가 키울 수 있을까? 한다. 거 참, 왜 자꾸 어렵고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상을 하게 만드는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했는데 신랑은 더 쉽다.
부모를 잃은 조카들이 조부모에게 가든, 기관에 가든, 우리가 키우든 아이들의 행복은 자기들의 몫이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 행복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생존적인 면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을 기꺼이 돕겠다. 그에 따른 내 아이의 행복도, 자신의 행복도 포기하고 받아들이겠단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나와 상의하고 내가 동의해야 되는 거지 내가 안된다면 안 되는 거란다.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만 희생하면 여럿이 생존할 수 있다는 말에 극도록 현실적이구나 싶다가 마음이 짠해졌다. 옆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그의 삶이 남긴 주관이겠지. 그에 반면 나만 생각하고 내 아이, 내 가족의 행복만 생각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행복을 찾는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나의 마음은 그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