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독립 선언
일주일 전, 갑자기 아이가 독립을 요구했다.
"엄마, 나 내 방에서 잘래, 침대 옮겨줘요"
"응? 갑자기? 아직은 같이 자도 되는데 왜~"
"놀이방에 침대 옮겨주세요"
그렇게 큰방에 부부 침대와 아이 침대를 두고 생활했던 방에 변화가 생겼다. 중간에 틈이 있어서 같은 공간이지만 분리해서 잠을 자긴 했지만 이 공간을 이탈하고자 하는 아이의 마음이 의아했다. 따로 떨어져 잠을 자는 경우는 난생처음이라 그날만 그러려니 생각했다. 다시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아이 침대의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매트리스와 이불, 인형들, 텐트만 놀이방으로 옮겼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뚝 떨어지니 왠지 모르게 쓸쓸해진 내 기분과는 달리 아이는 제법 아늑해진 제 방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너는 이제 너 혼자 자야 한다, 라거나 네 방을 따로 만들어 줄까?라는 말은 한 적이 없었기에 매트만 옮겨 놓고도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혼자만의 방이 필요했을까? 혹시라도 감성 상한 일이 있었던 걸까? 별별 의문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떠다녔다.
언젠가 놀이터에서 만난 같은 반 친구 엄마랑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는 벌써 방을 따로 쓴다기에 놀란적이 있긴 하다. 그 친구는 여자아이였고 둘째라고 했다. 언니가 독립을 하니 자기도 따라서 방을 만들어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리는 없는데 어린이집에서 생활을 하다가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한 걸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방이 있다고 자랑을 하고 뽐내다가 아이의 마음에 와닿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녀석들이 지들끼리 방이 있네, 없네, 쫑알거렸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추측이지만 아이가 독립된 공간을 요구한 이유로 가장 유력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던 나는 첫날은 등 떠밀려 어물쩡 아이의 의견에 맞췄다.
'그래, 어디 한번 혼자 자봐라, 밤에 깨면 자다가 울면서 큰방으로 나를 찾아오겠지.'
아직은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스스로 들어가 혼자 자는 아이가 아니라서 아이 곁에 누워 있다가 아이가 잠들어 방을 나왔다. 밤새 혹시나 아이가 울면서 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뒤척였던 것도 같다. 우리 침대 바로 옆에 프레임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빈 침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밤새도록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꿀잠을 자고 일어나 자기 방에서 잠을 자니 너무 좋았다고, 일어나자마자 기쁨의 단어들을 쏟아냈다. 어둠 속에서 빈 공간을 공허하게 쳐다보다가 잠을 뒤척인 건 나뿐이었다. 대견함보다는 섭섭함이 들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렇게 빨리 독립하려 하는 건가.
둘째 날 밤이 되어 다시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는 아이에게 물었다.
"어제 혼자 자니까 춥지 않았어? 조금 무서웠지? 이제 그냥 다시 큰방에서 같이 자는 거 어때?"
"아니! 나 너무 좋았는데? 오늘도 혼자서 내 방에서 잘 꺼야.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갈 일은 없어!"
마음에서 큰 돌덩어리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무게에 가슴이 찌르르 진동했다. 다시 돌아갈 일은 없다니. 조그맣고 촉촉한 입술에서 나온 말치고는 단단하고 확신에 찬 어조였다. 그날은 아이가 잠들고 방을 나와 큰방 침대에 누워 신랑에게 서러움을 토로했다.
"아니 쟤 너무 갑자기 획 가버리는 거 아니야? 나 좀 마음이 이상해. 저렇게 빈 침대 프레임을 보니까 쓸쓸하기까지 해. 자기는 괜찮아? "
"저러다 또 오겠지 뭐~"
"마음이 허하고 잠도 안 와. 나 오늘은 저 방 가서 잘 까 봐."
"참나, 그래, 가라 가~"
두 집 살림을 하는 여자가 된 기분으로 나와서는 한걸음에 아이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잠든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어루만지고 팔과 다리를 조물조물 만졌다. 이렇게 보니 언제 이렇게 훌쩍 커버렸나, 싶을 정도로 다리가 길쭉해져 있었다. 따뜻한 체온이,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비릿한 땀냄새마저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한참을 쓰다듬었다.
아이는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혼자만의 방을 즐기고 있다. 주말에는 혼자 깨서 제방에 있는 장난감을 한참 가지고 놀다가 거실로 나왔다. 자기만의 방. 독립. 아직 너무 아기 같기만 한 아이가 벌써 나의 품을 벗어나는 것만 같아서, 어떻게 놓아줘야 하는지 몰라 잠 못 드는 밤들이었다. 여섯 살 꼬맹이의 독립을 쿨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여섯 살 난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