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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Nov 19. 2021

평생지기

조리원 동기


 조리원 동기라는 말이 있다. 입사 동기, 대학 동기와 비슷한 말인데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하는 조리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일컫는다. 요즘은 아이를 낳고 당연하게 몸조리를 하러 조리원으로 가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만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즉 우리 엄마 때만 해도 조리원에서 몸조리라는 일은 생소할 때였다. 아이를 낳자마자 집에 왔고 시어머니의 몸조리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도 비슷한 의미의 조리원 동기가 있었으니, 옆집 엄마였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나와 a는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3층짜리 주택의 아래, 위층에 살다가 대문을 열고 스무 계단쯤 올라가야 나오는 2층의 옆집에 살 때까지 내내 붙어 지냈다. 동생들까지 같은 해에 태어나면서 남매는 항상 짝지어 놀았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도 엄마들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같은 동네에 터전을 잡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었다.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달라서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고 하기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친한 친구들이 달랐고 학교 생활은 달랐지만 엄마들이 친해서 만남은 이어졌다. 지내온 세월만큼 각자의 집 사정을 자연스럽게 알았고 거기서 오는 편안함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 숨기고 싶었던 집안 사정이라던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a에게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 있던 끈이 우리를 연결해 서로를 이해 가능하게 하는 부분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친정집에 들리는 타이밍이 맞아떨어질 때 a와 동네에서 만나곤 했다. 그날도 세월이 벌써 이렇게 됐냐느니, 어떻게  지냈냐느니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지나간 시절을 아쉬워하며 a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같은 학교 다녔으면 진짜 매일 붙어 다녔을 텐데."

"맞아 맞아. 아니, 근데 우리 같은 학교 다녔으면 몇 번은 싸우지 않았을까? 싸우다가 절교까지 하고! "

"에? 설마 그랬을까~?"

"그리고 난 우리가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고 하니깐, 어떨 때는 우리가 엄마들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만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던데, 그렇지 않아?"

"음... 아니? 엄마들이 우리를 만나게 해준건 맞는데, 그 연을 이어간 건 우리잖아, 난 엄마들 아니어도 우리 계속 만났을 거 같아!"


 낮고 작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하는 a의 마지막 말에 기습 공격을 받은 듯이 울렁거렸다. 우리 관계가 너무 당연하게 시작되고 지속되어왔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쉽게 판단해서는 안되었다. 우스겟 소리로 주고받은 대화에서 그녀의 깊은 진심을 알게 된 것 같아 고맙고 기뻤다.


 지금도 엄마와 a의 엄마는 같은 동네에 살며 서로 끊임없이 왕래하고 지낸다. 비가 와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a엄마와 치킨에 맥주를 먹고 있다고 했다. 김장철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a네 시골에서 가져온 김치에 수육을 해 먹는다며 함께 계신 a엄마의 안부를 듣곤 했다. 그녀들의 정다움이 참 부러웠다. a의 말처럼 시작은 엄마들이 했지만 이어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엄마들처럼 정다운 관계로 이어나가기 위해 끈을 내쪽으로 당겨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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