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이 크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유교문화가 영향으로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지만 때때로 이런 문화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한다.
최근 가장 화두 되고 있는 박수홍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개인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다르겠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던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좀 더 확고히 만들어 주는 사건이었다.
가족은 특별하다
부모의 사랑은 비교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일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듯이 어떤 가족이냐 어떤 부모이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남보다 못한 게 가족이다 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가족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너무 상처받을 일도.. 너무 증오할 일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에 오은영 님의 금쪽이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부모의 잘못이 부각되는 경우들이 많다.
물론 올바른 부모가 적은 건 사실이지만 성인이 되어서 좋은 자식들도 별로 없는 것도 팩트이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고 희생하다가 현대판 고려장처럼 요양원에 쫓겨난 이야기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괴롭히고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이야기
흔한 뉴스거리 같지만 크든 작든 이러한 일들은 어디에서나 일어 난다.
자식을 괴롭히는 부모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자식
서로 가장 의지 되고 힘이 되는 대상이 되어야 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점점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남보다 못한 경우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현상 속에 숨겨진 것은 가족도 결국 남이다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간으로서 바라본다면 모든 상황은 이해가 되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될지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쉴 새 없이 부부싸움과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과 나는 이런 환경에서 부모님을 바라보는 거리감이 완전히 달랐고 가족에 대해 달리보는 생각들이 서로 간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형은 툭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가득했고 항상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종종 어머니와의 트러블이 일어날 때면 형은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나는 이런 가족 안에서 가장 약자이기에 항상 눈치 보면서 어떻게든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까라는 전전긍긍하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력감에 시간만 빨리 흐르기를 바랬다. 성인이 되면 벗어 날수 있을 거라 착각 했다.
20살이 되자 마자 시간이 흘러도 가족의 불화는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인생에 집중하였고 어떻게든 집에서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형에 생각은 달랐다.
부모님에 대한 애증과 연민에 사이에서 여전히 기대하고 여전히 상처를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가족과의 관계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형은 가족 모두 같이 행복해져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서 결국 가족도 남이라는 마음을 품고 남처럼 서로 도움되면 도와주고 서로 도움 안되면 평생 안 봐도 된다는 생각이엿다.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였다.
가난하면서 살아 왔던 순간 순간 좋은 추억들
여전히 삶에 허덕이는 부모님을 보면서 연민도 있었지만 나 조차 책임 못지는 상황에서 같이 짐어 지기에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내 일에 집중하고 내 감정에 솔직하면서 내가 해야 될 일이 너무 많으면
나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불효자처럼 집안일에 대해 무심했고 신경 쓰지 않았다.
반면 형은 언제나 끝나지 않는 아버지 문제 어머니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어떻게든 같이 함께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살았고 다른 표현으로는 어머니 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아버지가 아프면 제쳐두고 병원에 모셔가고 어머니가 외가 문제가 생기면 같이 개입해서 에너지 쓰고 시간 쓰고 이모, 고모, 삼촌들과 섞여서 가족에 구성원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할 일 보다 가족의 일을 해결하며 살아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뻔하지만 불쌍한 어머니 싫지만 어쨌든 아버지 내 인생에 도움 되지는 않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삼촌, 이모들을 챙겼지만 형에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보험 가입시키려는 이모들은 월급 200~300 버는 형은 어느새 100만 원 넘게 보험금을 내고 있었고 형이 쉬는 날이면 운전을 한다는 이유로 툭하면 불러서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불려 다니는 기사 노릇을 시켰던 아버지, 어머니로 자기 쉬는 날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남이라는 거리감으로 가족여행, 가족 모임, 친척 모임 등등 내 인생에 우선순위에 가장 밑으로 두고 선택을 하다 보니 초반에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점점 가족들도 포기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재밌는 건 시간 에너지 돈을 썼던 우리 형에게는 더 많은 희생과 책임을 강요했고 최소한의 시간 에너지 돈을 썼던 나에게 부모님은 희생 강요보다 더 잘해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내가 배운 세상에서의 이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의 기본적인 본능은 강약약강이기 때문이다.
30대가 되어 가족에게 발목 잡혀 머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벗어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안 그랬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전히 머물러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어릴때 나의 모습, 형의 모습이 보여 너무나도 공감이 되고 때론 과몰입이 되어 화가나기도 한다.
그들은 항상 언제든 가족이 먼저 바뀌기를 가족만 바뀌면 모든 것을 해결된다고 착각한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갑자기 바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결국 자기 자신이 변해야 된다는 사실을 도덕적인 이유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만약 형과 같은 선택을 했다면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20살부터 지원받지 않고 독립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들이 쌓여 가난에서 벗어났고 당연히 경제적으로 나아졌기에 지금은 가족의 도움 요청에 어느 정도는 쉽게 쉽게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마음이 아픈 건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노력했던 형보다 나에 대한 평가가 더 높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 어머니에 대한 슬픔이 없다.
서로서로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면 여전히 형에게는 원망과 증오들이 마음속에 남아 어느 순간 모든 문제와 부정적인 상황의 가족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족도 결국 남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의 분위기 여러 가지 환경은 삶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하다. 내 인생에 지원자가 되어 준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 집중해야 될까?
가깝기에 너무나도 많이 싸우고 미워하던 가족들이 독립해서 멀어지면 애틋하고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들도 많이 보게 된다.어쩌면 너무나도 가깝기에 생기는 문제들이 아닐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길수 있는 거리감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