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020년 5월
별 목적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오랜만이다. 신문 키워드를 정리한다거나, 논제를 모으기 위한 준비를 한다거나, 작문 글감을 모으는 일 말고, 그냥 내 얘기를 이렇게 배설하듯 쓰는 거. 일기는 매일 썼지만 이렇게 빈 페이지를 대놓고 채우겠다는 맘을 먹은 건 오랜만이다.
어제 병원에서 선생님께 물었다. “하루에 걷는 거 말고 또 어떤 걸 하면 좋을까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 같다. 선생님은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워딩은 생각 안 나지만. 냉정해지지 말라고 했나. 그랬다. 테스크를 내려놓기로 했으면 그러면 너는 뭐 하고 싶어? 이렇게 물어봐주고, 그걸 해주라고 했다. 내 안에 내가 두 사람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나를 채찍질하고 혼내던 친구를 작게 만들고, 그 친구를 다정히 물어봐주는 애로 바꾸는 거다.
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했다. 내일 뭐하지. 내일은 뭘 하는 게 좋을까. 문득 지금 갑갑한 이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들을 일주일 동안 써내려가고 싶었다. 그런 시간이 왠지 내게 필요할 것 같았다. 한없이 내 얘기를 가장 다정한 청자가 돼서 들어주는 그런 시간 말이다. 가능하다면 위로도 해주고 싶고, 할 수 있다면 이해도 해주고 싶고, 감당할 수 있다면 안아주고 싶기도 하다.
쓰기에 대한 생각이 든 건 어제 선생님이 한 말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선생님께 그간 품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상세히 풀었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 같다고 말했다. 세상에 성공과 실패라는 게. 맞고 틀린 게 어쩌면 없고. 그 과정을 어떻게 나 자신이 해석해주느냐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것도 선생님이 정확히 어떻게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의역했다.
어제 상담에서 가장 좋았던 말은 "감당할 수 있는 걸 감당하고 사는 거에요"라는 말이었다. 감당할 수 있는 걸 감당하고 산다는 건 너무 당연한 말인데, 나는 자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보다 더 많이 짊어지고 싶어하고, 그게 안되면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선생님 말이 맞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하는 거다.
지금 이 백지를 감당할 수 있나?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쓰는 거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이야기하고 써내려가고 싶다. 혹시 모르지 쓰다보면 감당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