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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Aug 15. 2021

성냥팔이 소녀 괴담

 이제 소녀에게 남은 건 세상에 홀로 맞서야 할 연약한 몸뚱이와 어머니가 남겨주신 성냥 3통이 전부였다. 부유했던 그녀 집안의 자산은 탐욕스러운 친척들이 모두 채갔다. 그들은 어린 소녀가 관리하기에는 무리라며, 소녀가 필요할 때 돌려주자고 입을 모았다.

 “괜찮지?” 친척들이 소녀를 향해 물었을 때,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소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지독하게 날카로웠다. 아마 동의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마저 남아나지 않을 것임을 소녀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요. 괜찮고 말고요.”


 그녀가 가졌던 것들은 모조리 찢겼고 성냥만 남았다. 가족은 세상을 떠났고, 돈은 친척들에 의해 분해됐다. 친구들도 모두 소녀에게 등을 돌렸다. 오히려 소녀의 친구들은 부모를 잡아먹은 애라며 소녀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길 수가 있을까. 소녀는 며칠을 가슴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러자 소녀가 입었던 값비싼 블라우스는 금방 헤져서 너덜 해져 버렸다. 소녀의 조각난 마음을 이어 붙여준 건, 어머니가 남겨준 성냥 한 개비의 불꽃이었다.

 어둑했던 방 안에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추위에 떨던 소녀의 곁에 불의 정령들이 몰려왔다. 손톱만 한 크기의 불씨들이 소녀의 블라우스에 달라붙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어깨와 등을 토닥거려주는 촉감에 소녀는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따뜻하고도 나른한 공기가 소녀의 몸을 감싸고, 눈물을 마르게 하자 소녀는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소녀는 자신이 며칠 새 제대로 된 잠을 자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소녀는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성냥에 불을 붙였다. 불빛마저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눈을 부릅뜨면서 성냥을 꺼내길 반복했다. 더 이상 혼자가 되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세상에게 버림받은 기분은 비참한 거구나. 비로소 소녀는 자신의 상태가 괜찮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왜 성냥만 남겨주고 떠나셨는지, 친구들은 왜 나의 곁에서 떠나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과 마음인 건지, 알 수만 있다면 이해라도 할 텐데. 하다못해 납득하고 받아들이기라도 할 텐데.

 '내가 잘못한 걸까?' [알 수 없음]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두려움의 촉은 종국엔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스치기만 해도 깊게 베일 정도로, 아주 날이 제대로 선 화살촉에 과녁이 된 소녀의 심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아주 평온하게 뛰고 있을 뿐이었다.


 촥.

 시간이 꽤 흐르고, 문득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성냥개비 마찰음이 소녀의 귀에 박혔다. 소녀는 멍한 눈빛으로 성냥의 불꽃을 응시했다. 타오르는 불꽃 안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보였다.


 딸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미안해서 미안해하는 어머니의 모습.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재산을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머리를 굴리는 어른의 모습.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고 친구를 멀리해야 하는 아이의 모습. 친구들이 돌을 던지자 같이 던질 수밖에 없는 소년의 모습. 그걸 지켜보는 여자의 모습.


 성냥불이 사그라짐과 동시에 영상의 단편과도 같은 생각의 모양들이 사라졌다. 소녀는 급히 하나의 성냥개비를 꺼내 다시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소녀의 눈앞에 사람의 감정들이 펼쳐졌다.


 사랑과 호감, 헌신과 같은 하얀색의 감정들과 질투와 분노, 시기나 증오와 같은 검은 감정들이 결을 뒤엉켜 불꽃을 만들었다. 이윽고 성냥은 하얗게 불타오르고, 회색빛 연기를 피어올렸으며 검게 그을린 재들을 남겼다. 소녀는 그제야 사람들이 가진 감정의 색깔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숨이 막힐듯한 열기와 시야를 가리는 뿌연 연기들이 번쩍하고 순식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다음 날, 소녀의 집은 흔적도 없이 태워진 채로 발견되었다. 소녀의 집에 있던 것들은 모조리 불태워졌고, 오직 성냥 1통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이상한 건, 그 누구도 간밤에 화재를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소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소녀의 행방조차 묘연했다. 그 누구도 성냥을 건들지 못했다. 사람들은 저주받은 집이라며 저마다 수군거렸고, 소녀의 존재를 두려워하며 혹시나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가하지 않을까 불안감에 떨었다.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을 곳곳에는 성냥과 소녀를 엮은 괴상한 이야기가 떠돌아다녔다.

"어떤 소녀가 성냥을 사겠냐고 물어보거든, 대답하지 말고 무조건 도망치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너의 집이 모두 불타오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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