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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옴 Aug 27. 2024

그놈의 MBTI

본디 나는 사랑받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에 가깝다. 그러니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다던가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해 주는 이들에게 그만큼 보답하지 못하고, 표현하기보다 망설임이 앞선다.

MBTI라는 게 유행하더니, 이제는 MBTI 이야기를 그만하자는 말 유행인 듯하다. 이제 지겹다고들 하는데 나는 여전히 즐기고 있다. 그저 못난 것을 성향 핑계로 난 X라서, 하며 변명하는 사람들이 타박받지만 나에게 내 못남을 변명하는 거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나. 노력하지만 저 사람만큼 못한 건 그럴 수 있어. 이런 사람도 있는 거야.

사람을 어떻게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판단하냐, 라는 게 이 담론을 싫어하는 이들의 주 근거인데, 내가 이걸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어느 약점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런 사람도 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런 사람을 '수집'한다는, 그러니까 그렇게 좋아한다는 유형도 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거 아닌가. 이 부족함에도.

외향형(E)이 더 우수한 사회성을 표방하는 줄 알았고, 다른 이에게 다정해 마지않는 말로 공감(F)해주는 것만이 인간적인 줄 알았다. 내향형(I) 인간인 게 딱히 좋지 않았고, 이성(T)이 앞서는 게 딱히 자랑스럽지 않았다. 놀랍게도 MBTI라는 것이 내향적이거나 감정보다 사고가 앞서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나는 T가 좋아, 나는 I가 좋아, 하며.



사람을 열여섯 가지로 나눈다는 데 거부감이 있지도 않다. 목적에 따라 우린 늘 나눠 왔다. 서양에서는 생일에 따라 별자리를 나눴고, 우리나라에서는 체질을 나눴다. 그리고 예를 들어 나는, 오이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다. 반대에는 오이 헤이터(hater)들이 있겠지. 차별적이거나 나쁘게 활용하지만 않는다면야.

그럼 MBTI를 맹신하는 거냐 묻는다면, 아니다. 왜냐면, E, I 같은 알파벳뿐 아니라 ENFP 같은 그 조합과 특징까지 꿰고 있는 이들이 있던데, 나는 그게 그렇게 머리에 남아 있지 않고, 외울 생각도 없다. 남의 MBTI를 외우고자 하는 열망이 없기 때문.

음, 여기까지 말하면 누군가는 나의 MBTI를 추측할 수 있으려나.



* T는 공감을 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걸 주장하는 게 아님을 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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