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마뱀마법사 Aug 03. 2023

두 번 말하면 되잖아요

“자, 한 바퀴 돌아오세요.” 

오늘은 수영강습이 있는 날이다. 매 시간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활용해서 레인의 이쪽 끝에서 출발해서 저쪽 끝에 닿았다가 돌아온다. 이때 수강생들이 줄지어 한 명씩 출발하게 되는데 마지막이 내 자리다. 수영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순서는 실력순이다. 못하는 사람이 먼저 출발하면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제 실력만큼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잘하는 순서대로 출발하게 하는 것이다. 즉 내 수영 실력은 우리반에서 꼴찌란 이야기다.

물개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수영 강습에 등록하고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각도 않은 채 수영장으로 향했으나, 안타깝게도 나의 운동신경은 열정에 비해 상당히 하찮은 편이라 늘 꼴찌를 도맡아야했다. 그리고 이 순서는 당연하게도 수강하는 내내 웬만하면 바뀌지 않는다. 내가 무슨 수로 갑자기, 급격하게 남들보다 잘할 수 있게 되겠는가. 물 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나를 꿈꿨으나 기초 과정 두 달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나는 겨우겨우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뿐이었다.

   “아휴… 수영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어요?”

   정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투정과 속상함을 섞어 선생님께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내게 다시 물었다.

   “수영 잘하고 싶어요?”

   “네, 근데 나는 운동 신경이 별로인가봐요.”

   그러자 선생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잘하는 방법이 있어요. 기초반을 한 번 더 들으세요.”

   아마도 내가 윗 단계를 못따라갈까봐하는 말일것이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남들보다 잘 못하는 걸 한 번 더 한다고 뭐 그렇게 크게 달라지겠는가. 그런데 마침 시력 교정 수술 일정이 잡혀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한 달 정도 수영을 쉬어야했다. 한 달 후 재등록을 하면서 선생님 말도 생각나고 쉬기도했으니 기초반으로 재등록을 했다. 이미 중급반으로 올라간 나의 동기들은 내가 기초반을 다시 한다고 하자 고작 한달 쉰거니 자기반으로 다시 오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 분들은 이미 내가 없는 한 달을 더 배운 사람들인데 가뜩이나 꼴찌인 내가 그 반으로 다시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속는 셈치고 두 달을 기본으로 하는 기초반의 두 번째 반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기초반에 다시가자 선생님도 다르고 당연히 수강생들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한 두번의 수업을 한 뒤였을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뒤쪽으로가서 줄을 섰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더니 첫 번째로 출발하라고 하셨다.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채하며 출발을 했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 다른 수강생들이 수영을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는 우리 반에서 일등이 되어있었다.

   한 번 더 들으면 잘하게 될 거라는 말은 진짜였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데 남들보다 잘 못할 때의 정답은 ‘한 번 더 하기’다. ‘노오오오력을 하면 누구나 잘 할 수 있어’라는 다소 폭력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팔도 움직여야되고, 다리도 움직여야하고 그 와중에 고개 돌려 숨도 쉬어야된다. 그러면서도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다시 수강하면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자 이제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은 할 줄 알고 무엇은 못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때문에 내가 놓쳤던 부분에 집중하며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꼴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남들보다 더디게 갔을 뿐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걸 두 번째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 했을때 알게 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처음 할 때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첫번째 수강을 할 때 꼴찌를 도맡아하면서 나도 모르게 주눅들었지만 수영을 못한다고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좀 더 잘하게 된다고해서 내 앞의 세상이 대단히 바뀌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도 수영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적당히 할 줄은 알아서 운동삼아 놀이삼아 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즐길 수 있으면 된다는 걸 꼴찌도 되어보고 일등도 되어보고 결과적으로 그저그런 실력을 가지면서 알게되었다.

   전 프로게이머, 현 프로 포커 선수이자 방송인인 홍진호씨는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발음 교정을 고민하고 실제로 시도도했었지만 이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못 알아들으면 두 번 말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잘 못하는 일, 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한 번 더 하면 된다. 그것을 통해 실력이 향상될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괜찮다. 왜냐하면 ‘한번 더 하기’의 진짜 목적은 한 번 더해서 그것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플 것 같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