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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칼랭 Jul 28. 2020

슈퍼맨 아빠가 없다면


전화가 왔다.

운전을 하는데 화가 난 듯 벨소리가 쏟아졌다.

이유는 모르지만, '불길'했다.

왜 우리는 아무 근거도 없는 예감이라는 걸 갖고 있을까.

발신자는 언니였다.


"너 어디냐?"

"나 운전해. 바빠. 왜?"

"아빠 입원하셨대. 떨어져서 다리를 다쳤다고..."

"왜? 어디를? 얼마나?"

"많이 다친 건 아니라고 하는데, 나 지금 병원 가고 있어."

"...."

 

나는 아빠와 안 친하다.

어떤 사건도 없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문제일까.

우리는 단 한 번도 간격을 좁힌 적이 없이 멀리 있었다.


어쩌면 이런 식의 설명을 할 수는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는 정도.

무심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어서 그래.라고 얼버무릴 정도.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면 꽤 오래전 과거로 거슬러 간다.

이 기억이 왜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 아빠가 출근하는 시간과 내가 학교에 가는 시간이 딱 맞았던 어느 날 - 난 아빠와 같이 우산을 쓰고 걸었다.

우리는 앞만 보고 걸었고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심각하거나 어두운 분위기가 아니었고 심지어 평화로운 등굣길이었지만, 그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는 나에게 궁금한 게 하나도 없는 거 아닐까?'


그 이후 파편의 기억은 이런 것이다.

- 오셨어요?' 네, 네?  같은 말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인사. 대답이 정해진 것 같은 질문.

삶의 곳곳에 스쳐 지나가는 아빠의 실루엣을 더듬어 보면 특별할 것은 없다.


반말로 '아빠!'라고 불러본 적도 많지 않으니 이쯤에서 문장을 고쳐야 한다.


나는 아버지와 친해본 적이 없다.




정형외과 병실에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깁스를 하고도 예상보다 편안해 보여서 안심이 됐다.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엄마를 찾았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세요?'라는 질문과 함께 급히 물었다. '엄마는?'

아버지는 반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엄마 집에 잠깐 갔어. 짐이랑 챙겨 온다고."

"?!"


.... 엄마가 없다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병실에 혼자 있던 아버지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잠깐 고민했다.

그렇다고 지금 나갈 수도 없지 않은가.

냉큼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좀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안 아프세요? 아프겠다."


이런 식의, 비슷한 질문을 몇 번이나  뒤에, 핸드폰을 들었다.






여기, 태어나 아버지를 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고 알려진 -

그런  사람이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혼혈'이라는 차별의 시선을 견디며 성장한 가수 인순이 씨의 이야기다.

그녀가 태어난 시절의 사람들은 다른 피부색과 머리 모양에 냉정했고 편견을 가진 것에 미안하지 않았다.

버림받았다는 절망이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 가늠해볼 수도 없다.


가수 인순이 씨는 '아버지'라는 곡을 받은 뒤 녹음하기 도 전에 도망 다녔다고 한다.

곡이 어려워서였다는 핑계도 들은 적은 있지만 우리는 진짜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얼굴을 떠올려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가사에서 '아버지'라는 단어를 빼는 조건으로 노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 인터뷰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사랑합니다.

나한테 이 세상을 구경할 기회를 줬기 때문에 감사한 거죠."



<<아버지> >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라 왔는지

눈물이 말해 준다


점점 멀어져 가 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제발 내 얘길 들어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었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시간이 지났고 나의 아버지는 노인이 되었다.

세월은 내 마음속에 날 선 것을 뭉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로 서툴게 살았던 '한 남자'를 가끔 멍하니 쳐다볼 때가 있다.


얼마 전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심장질환을 진단받았을 때 쓱, 반말을 섞어 말했다.


"술은 이제 못 마시겠네. 들었죠? 이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게 더 많아~"


침대가 다섯 개나 있는 좁은 병실에서 나는 진짜 보호자가 되었다

그런데 왜일까,


아버지와 나

우리의 침묵은 가볍고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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