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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칼랭 Jun 15. 2020

나의 위로는 잘못되었다

#고독의 자리 #고독의 상태

      

나는 위로 전문가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직업은 방송작가지만 글 쓰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생계형 작가니까, 돈을 준다면 쓴다. 

홍보물도 쓰고 웹드라마도 쓴다. 글을 쓰는 일이 익숙하니까. 그냥 쓴다.      


그런 나에게 가끔, 예고 없이 누군가가 찾아와 삶의 통증을 덜어내려 한다. 

전화가 오고, 메일이 오고, 문자도 톡도 온다. 

그리고 우리는 만난다. 부족한 위로의 건네고 서로를 바라본다. 이것이 전부다.     

 

위로 전문가가 아닌 우리는 서툴게 위로를 하다가 가끔 그 ‘억지스러운 격려’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나에게도 있다.      


소연이는 착한 동생이었다.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늘 존댓말을 썼다. (내가 12월 생이었고 소연은 3월생으로 나는 3개월 언니였지만) 

때론 소연의 '예의 바름'이 부담스러워 ‘그냥 반말해!’라로도 해봤고, ‘뭐야~ 나만 늙은이 같잖아~’라고도 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우리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났다. 다른 프로그램 작가였지만 경력도 비슷하고 집 방향이 같아서 자연스레 같이 퇴근을 했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퇴근길이 1년 정도 이어지다가 내가 라디오를 떠나 TV 방송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서로의 일상은 쉽게 공유되지 못했지만 가끔 만나 수다를 떨며 인연을 이어갔다. 

1년에 한두 번 문자를 주고받았고 문득 생각날 때 밥을 먹고, 문득 서로를 걱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출근 준비를 한참 하고 있던 때에 전화가 왔다. 

   

 “소연! 안녕? 잘 있었어? 근데 급한 일이야?”

 “아니에요, 언니. 바쁘시면 나중에 전화할게요.”     


소연의 예의 바른 태도에 잠깐 긴장이 됐다. 1년 만의 전화 통화인 데다가 정중한 태도였기에 '내가 좀 있다가 할게!'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편하게 말했으면 좀 있다가 더 길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괜히 상처 받을까 신경이 쓰여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아니야. 그냥 얘기해. 무슨 일 있어?”     


나는 한 손으로 집 정리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시계를 힐끔 봤다. 회의에 맞춰가려면 10분 내로 나가야겠다. 뛰어다니며 소연이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지를 몰라요. 오늘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혀 예상 못 했던 주제였다. 

아침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였다.      


 “아. 그래? 어떤 관계인데? 일하면서 만난 사람이야?”     


동생이 좋아하는 남자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나는 순간 집중력을 잃었다. 

길게 들어줄 시간은 부족한데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근데 미안해 소연아. 그런 얘기는 지금 내가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 들을 거 같은데. 오후에 전화할까?"

 "그래요 언니...."

 "그래, 그런데 남자랑 그런 얘기 할 땐 편하게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좋은데... "

 “......”     


정적이 흘렀다. 

한 마디를 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오후에 전화를 해서 조금 길게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다. 


연애 한 번을 한 적 없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녀가 얼마나 긴 시간 하나님 앞에서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해 왔는지 알고 있던 나였다. 그런 소연에게 술 이야기를 하다니.

순간 실수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라는 마음에 말을 더 했다. 


 “소연아 너무 좋다! 네가 남자 이야기하니까! 근데 너무 진지하게는 말고 술 한잔 가볍게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눠봐~ 이따 다시 전화할게!”

     

소연이가 하려는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나는 그냥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해버렸다. 지난 10년 간, 기도만 하던 소연에게 해주고 싶었던 진심. 소연에겐 정말 어려운 일. 그것을 툭 던져버린 것이었다. 

     

 “언니 바쁜데 미안해요.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소연은 다시 지나치게 정중하게 전화를 끊었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소연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만 안 받은 게 아니라, 그날 이후로 내 전화를 단 번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 소연에게 짧은 문자가 왔다. 


 ‘언니 제가 좀 바빠서 그래요. 나중에 정리 좀 하고 연락드릴게요.’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의 성급한 조언과 위로가 독이 되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에게 던지는 '쉬운 한 마디'는 가시가 되었을까. 


만약 처음 전화가 왔을 때 통화를 미뤘으면 - 

혹은 둘이 따로 만나 차 한 잔을 마셨다면 - 

또 어땠을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누군가에겐 제일 쉬운 게 연애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것을 즐기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것이 정말 어려운 사람도 있다. 그게 나는 ‘너무 진지해서’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사실을  모른다. 그날 소연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로칼랭> - 로맹 가리





















거대한 대도시에 살면서도 작은 인간 관계를 반복하며 사는 시대.

감정을 꺼내놓은 일은 쉽게 풀어내기 힘든 숙제가 됐다. 


매일 만나는 그야말로 '사회관계'는 사실상 무의미하고 표면적인 인간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속에서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건 나만의 이야기다 아니다.


서른일곱 살 독신남 ‘미셸 쿠쟁’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하는 통계일은 척척 해내면서도 짝사랑하는 회사 동료 ‘드레퓌스’에게는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할 정도로 - 연애에 젬병이었다. 


소설 ‘그로칼랭(로맹 가리 저)’의 이야기다.    


도시엔 많은 사람이 살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는 늘 외롭다.   

가끔 사무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볼 때면 아이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사람으로 가득한 도시에,  왜 친구는 귀한걸까. 

꽤 오랜 시간 질문해도 답은 없었다. 


회사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솔직히 사치다. 

오늘 터놓은 내 이야기가 내일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까 봐 조바심이 난다. 

내 연약한 심리 상태가 약점이 될까 두려움이 생긴다. 

웃는 얼굴, 강한 표정이 담긴 가면을 쓰고 ‘외롭지 않아’라는 광고 문구를 쓴 듯 살아간다. 

그런 우리에게 허물을 벗고 민낯의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소설 <그로칼랭>에서 주인공 ‘미셀 쿠쟁’은 같은 층에 일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직장 동료 드레퓌스 씨와 결혼하겠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다. 


쿠쟁은 반복된 일상에 쫓겨 사는 도시인을 대표한다. 

혼자라는 느낌을 덜어내기 위해 숫자에 관심을 가졌다는 쿠쟁은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기대로 수백만까지 사람들의 수를 세느라 꼬박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런 경험 때문에 통계일을 하게 됐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지만 여전히 혼자다.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관계를 만들고 사람을 사귀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그러면서도 지하철에서 만난 낯선 누군가와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괴기한 '젖소 사진'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것이 ‘서로를 찾아 헤매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모든 존재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외로움을 덜기 위해 수를 세다가 통계 일을 하게 된 남자, 하지만 그는 사람이 아닌 비단뱀 ‘그로칼랭’과 살고 있었다.           



나는 내게서 영원하고 진정한 여성적 가치를 떼어놓는 비단뱀으로부터 벗어나서 여자와 둘만의 삶을 누리고 싶어 진다.  그러나 나날이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불안하고 불행할수록  그로칼랭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로칼랭은 그것을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몸을 늘려 나를 감아주지만 때로는 그것도 부족해서 몇 미터, 도 몇 미터가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애정 때문이다. 애정은 내부에 구멍을 파고 자기 자리를 만들어놓지만  막상 거기에 애정이 없기 때문에 의문이 생기고 이유를 찾게 된다.     

- 로맹 가리 <그로칼랭> 중에서



우리는 고독하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 무리 속에 늘 혼자였던 - 불안에 떨고 있는 주인공 쿠쟁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막연한 고독에 휩싸여 멍해지는 나도 만날 수 있다. 





     

고립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고독한 사람이다. 

때론 스스로 ‘고독의 자리’를 찾기도 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고독의 상태’에 빠질 때가 더 많다. 


가끔 '고독의 상태'에서 있는 나를 발견하면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차 한 잔을 마실 누군가. 

이유 없이 전화 통화를 할 누군가.

가족이면 좋고, 친구라면 더 좋다. 

고독의 자리를 빠져나오려면 결국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소연이에게 다시 연락할 용기는 아직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전화를 기다린다.

만약 그녀의 삶이 똑같다면 내 관심이 고문이 될까 봐 두렵다. 

 

행복한 목소리가 듣고 싶다. ‘나 결혼해요.’라는 연락은 언제쯤 올까.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을 이토록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걸, 소연이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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