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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칼랭 Jun 10. 2020

'그것'이 처음 찾아오던 날

#불안이 주는 공포


어느 날 찾아온 '그것'

예상 못했던 불청객


소안도에서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차를 운전해서 급하게 혼자 내려갔기 때문에 소안도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집까지, 6시간이 넘는 긴 여정을 다시 혼자 버텨야 했다.

내려갈 때는 배 시간 때문에 조바심 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다시 돌아오는 길은 그저 한숨이었다.     

 

라디오 주파수도 잡지 못해 묵언 수행을 시작한 지 두어 시간 지났을 때였을까.

이름 모를 터널에 진입한 순간. 내 몸이 이상했다. 소위 '발작'이 시작된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팔과 다리가 경직됐다. 머리는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운전하고 싶지 않아 졌다.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차, 나는 1차선에 있었다.

그리고 곧 알 수 없는 ‘강박’도 찾아왔다.

‘넌 죽을 거야. 교통사고가 나서 오늘 여기서 죽을 거야.’라는 강박이었다.  

 누군가 경험했다고 들었던 그것. 연예인들이 토크 소재로 삼던 그것. 공황장애였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비상 깜빡이를 켜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속도를 줄이면서 1차선에서 맨 끝 차선으로 이동하는 동안 누군가 내 차를 들이받을 거라는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손이 덜덜 떨려서 더는 운전할 수 없었고 나는 그냥 완전히 서버렸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터널 안에서. 나는 내 정신에 공격받았고, 스스로 고립된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용기를 내 10여 km를 저속으로 움직이다가 처음 보이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 아직도 그 휴게소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잠깐 생각했다.

공황장애의 원인인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이런 것이었다. 어떡하면 되지, 어떡하지?, 라는 질문.


하지만 답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까, 잠깐 고민도 했다. 하지만 대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도. 언니도, 친구도 스쳐 지나갈 뿐 나를 도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다시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기를’,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기를’, ‘손이 그만 떨리기를’, ‘이 공포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날, 그 순간으로 돌아가 최고의 해결책을 다시 찾아본다고 해도 답을 모르겠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숨쉬기가 조금 편해지자 나는 라면을 샀다.

이걸 먹고 나면 나는 다시 운전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아무렇지도 않던 과거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목구멍으로 라면을 밀어 넣고 있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이 전화기에 보였다.

나를 언니라고도 부르지도 못할 만큼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어린 후배 유진이었다.

내가 ‘입봉’시켜 작가 만들었다고 자랑으로 삼던 - 이쁜 후배였다.           


 “잘 있었어? 웬일이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주문을 외우듯 최대한 명랑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와 달랐다.          


 “작가니임……. 작가니임…. 어떻게 해요…….”        

  

후배가 울고 있었다.           


 “유진아 왜 울어, 왜? 무슨 일인데!”


 “작가님. 저 일 못 할 거 같아요. 제 능력이 안 되는 일을…. 도저히 제가 할 수 없는 일인 거 같아요….”    

 

2년간 내 취재 작가로 다큐멘터리 자료조사와 섭외를 했던 아이였다. 그 뒤 또 다른 방송사까지 데려와 다시 1년간 원고 쓰는 법을 가르쳤고, 드디어 진짜 작가가 되라고 떠나보낸 후배였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못하겠다는 전화를 한 것이다.    


 “문제가 뭐야. 못하겠는 거야? 하기 싫은 거야? 편하게 말을 해봐.”

 “그게요. 저한테 너무 어려워요. 제 생각엔 못할 거 같아요. 계속하면 제가 다 망칠 것 같아요.”         

 

방송작가로 사는 우리는 자주 다른 프로그램을 만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기획을 하고 새로운 틀을 잡는 일도 부지기수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아이디어를 비난하지는 않을까. 내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치지는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야 늘 있지만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다른 말로 위로할 것도 없었다.

‘유진아, 강하게 마음먹어! 넌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라는 게, 그냥 내가 강하게 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걸까.

나 역시 지금 이 혼란된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는데. 내가 감히 누구에게 이따위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을 바꿨다.    


 “유진아. 너희 프로그램 메인 작가님한테 가서 솔직히 말해봐. 가진 능력보다 맡은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나는 그만둬도 괜찮으니 작가님 뜻에 따르겠다고. 솔직히 다 말하고 결정해달라고 해.”          


‘솔직하게 그냥 다 털어놓을 때’ 답이 나오는 순간이 있다.

고민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방향이 틀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쉽게 해결책이 나오기도 한다.

정답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오답이 아닌 모든 것이 정답이라는 걸 잊고 있는 셈이다.   


잔소리가 섞인 위로를 하다가 다시 격려를 쏟아 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순간 나를 돌아보니,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손에 전화기를 들고 다시 운전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던 것이다!


유진의 불안한 마음에 온전히 빠져, 나를 잊어버린 순간에 나는 나의 '불안'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던 시간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이미 아무렇지도 않게 차가 출발했기 때문에 그날 나는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으로 등장했던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1999년)’에도 공황장애가 등장한다.

물론 공황장애가 뭔지도 몰랐을 때 - 우연히 본 영화였다. 

 

주인공 폴 비티(Paul Vitti. 로버드 드니로)는 뉴욕 최강의 마피아 보스로 등장한다. 

얼마 후에 있을 전국 마피아 총회를 두고 극도의 정신 불안에 시달리던 중, 어린 시절 아버지가 암살돼 죽던 순간을 떠올리는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충격이 되살아난 뒤, 마피아 보스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긴장하면 심장이 마비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즉 불안장애. 공황장애 환자가 된 것이다.    


Analyzw This, 1999  해롤드 래미스 감독


문제는 마피아 보스로 조폭의 대부와 같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총도 쏘지 못할 만큼’ 마음 약한 아저씨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상대방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

물론 장르가 코미디인 만큼 과장된 표정과 대사로 웃기로 작정하고 달려가기에 그저 ‘삶의 애환’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나의 눈물은 결코 코미디가 될 수 없다.      

‘나 공황장애 왔어요.’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오늘 검사했는데, 암이래요.’라고 전화로 말할 수 있나.


직장 동료에게 일단 아픈 것을 말할 수 없다. 책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가족에게도 말하기 힘들다. 더 검사를 해보고, 치료법을 알고. 뭔가 대책이 나올 때까지 미루고 싶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다. 뜬금포가 될 게 뻔하기에.          


영화 ‘애널라이즈 디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폴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까지 병을 이겨내려고 의지를 보이지만, ‘목숨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충성심 가득한 심복들에게까지 비밀로 한다.


만약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면 이런 장면이 등장할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병명을 쓰고, 치료 후기를 읽으며 밤을 보내는 장면. 환우회 카페에 가입해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삶에 막연한 위로를 받는 장면. 하루는 희망에 찼다가 다시 하루는 절망으로 떨어지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나를 위협하는 질병이라는 공포에 놓였을 때, 스스로 혼자가 되기로 하는 이유는 어쩌면 ‘타인에게 위로받는 법’을 잊어버려서가 아닐까. 나의 위로를 쏟아놓고 안절부절 방을 서성인다. 의연해지려고 노력하지만 금세 좌절한다. 내가 나에게 하는 격려는 생각보다 긴 시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득 영화에서 정신과 의사가 ‘사람 죽이는 마피아’를 고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난 마피아 고치려고 의사 된 것 아니에요”          


 의사가 거절하고 등을 돌렸을 때. 폴은 울며 말한다.    


 “이거 보여? 바로 이거라니까 난 시체와 다름없어. 마리아 님 저에게 힘을 주소서.”      

    

사람을 죽이던 사람이 신의 도움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깨닫는 순간이라기보다는, 그 누군가의 도움이라도 혹은 어떤 사람이 도움이라도 받고 싶은 순간일 것이다.                         






내가 경험한 첫 번째 발작은 후배 유진이를 위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진정되었다.      

물론 그날로부터 '발작의 경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몇 년간 반복적으로 터널에 들어갈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고 운전대를 놓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식은땀도 났고 속도를 저속으로 줄여야 하는 날도 있었다. 비상등을 켜고 '왕초보'보다 더한 바보 같은 운전자가 돼야 했던 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용기를 얻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낸 그 순간의 기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적의 순간은 나에게 집중하던 시간이 아니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로하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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