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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칼랭 Jun 16. 2020

내 가슴이 C컵인 게 무슨 상관이람

#수치심 #성희롱 # 성추행의 역사



나는 아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성희롱은 그렇게 아무 때나 온다


          

 “너 가슴이 크다, 응?”     


방송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나이 많은 미혼의 작가가 내게 건넨 첫 번째 말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말도 이어졌다.


 "B컵이니, 아님 C컵인가?"


우리는 몇 번 눈인사를 나눴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건넨 첫 번째 대화 주제가 '내 가슴 치수'에 관한 것이라니.

당혹스러워서, 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아, 네.’ 정도로 흘렸던 것 같다.      


누가 이렇게 내 신체에 대해 지적을 하면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건 당연하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등이 볼록 올라온다. 선배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자리로 돌아올 때 나는 명치 근처 옷을 잡아당겨 공간을 만들었다. 어쩌면 습관 같은 거였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폭격기처럼 떨어지는 한 마디의 ‘희롱’ - 그 잔상이 길다.

현장에서는 피식, 웃으며 넘어가버렸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스멀스멀 수치심을 태워 올린다.

반복해 기억하다가 이불 킥을 하게 되고, 묻어두었다가도 다시 쏟아져 버린다.

비슷한 기억이 얼개를 만들어 성을 쌓기도 한다.


희롱이라는 단어는 곱씹을수록 기분이 나쁘다.

그만큼 수치심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멸되지 않는다.      


말로 하는 희롱은 술자리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술 취했다는 이유로 ‘기억나지 않는’ 행세를 하면 가해자도 없다는 걸 우린 이미 경험했다.

술자리에서 나를 당황하게 한 파편 같은 기억들이 많지만, 그중 결코 잊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나는 어느 해 12월 28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임에서 1년간 함께 일하던 PD가 술에 취해 말했다.      


 “오늘 내가 너를 강간하겠어.”     


주물럭집에서 회식이 끝날 무렵의 일이었다.

술도 잘 먹지 못했지만 1년여 함께 일한 의리로 뭉쳐 그간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높으신 분’들은 먼저 갔고, 팀장 격이었던 차장이 돈 계산을 하러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 이야기의 흐름이 왜 이쪽으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정 작가, 오늘 너를 강간하겠어!”     


방어적으로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몸에 붙는 니트 셔츠가 신경 쓰여서 서둘러 외투를 입고 가방을 가슴 쪽으로 들었지만,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술 취한 또 다른 PD가 말을 덧붙인 것이다.      


 “내가 잡아줄까?”

 “그래 잡아!”     


미투 운동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일하던 곳에선 이런 일도 벌어졌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다시 조용히 넘어가도 되는 거였을까.

그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회식 자리를 지키는 것과 술 취한 동료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다.


PD 둘이서 나를 붙잡아 가게 밖으로 나갔고, 주물럭집이 있던 골목 끝까지 힘 있게 나를 끌고 갔다.

두 사람이 그 벽에 나를 세웠을 때 나는 그냥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힘껏 가방을 들어 얼굴을 밀어냈다. 그리고 땅만 보고 뛰었다.


안타까운 건 몇 걸음 뛰지 못해 넘어졌다는 것이고, 내 앞에 차장님이 서서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었다는 거다. 그는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며 나를 봤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정 작가, 얼른 가. 다리 괜찮아?”

 “괜찮아요. 저 갈게요.”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아들이 케이크에 촛불을 켤 준비를 하고 엄마를 기다리던 밤이었지만, 회식이라 빠지지도 못하고 참석했던 거였는데.


황망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손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매일 출근하던 거리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발이 빨리 움직이지 않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주변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치매 환자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를 놀리던 PD 두 명은 아마도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기억이 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내가 따지고 들었다면 장난이었다고 말할 것도 뻔하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묻고 나면 더 기분 나빠질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했다.

그렇다. 그날 현장에 있던 남자 셋, 아무도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성추행의 역사를 서술하자면 처음은 어디이고 끝은 왜 없는지 장황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경험’이 여성에게는 평생에 함께한다는 것이다.

말로 뱉어버리는 희롱과, 만지려는 손은 어디에나 있었기에 더욱 구차하다.


15살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겪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엄마에게도 하지 못했다. 언니한테 말하는 데 15년이 걸렸으니까.

꺼내놓자면 수치스럽고 불편한 기억들은 사라지지도 않고 남아서 탑처럼 쌓여있다.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반이었다.  

7시 반에 맞춰진 알람에 따라 하루가 시작되던 시절이었는데 나를 깨운 것은 우리 팀 서브 작가 A였다.   

  

 “언니. 너무 일찍 전화했어요?”

 “아냐. 괜찮아. 그런데 오늘 촬영 몇 시부터야? 벌써 시작해?”


주섬주섬 일어나 앉았다. 촬영팀과 1박 2일 촬영을 떠났는데, 무슨 일일까. 걱정됐다.     


 “뭐 문제 생겼어?”

 “그게 언니……. 흑…….”     


A가 울고 있었다.     


 “울지 말고 말해봐. 왜. 촬영이 잘 안 된 거야?”

 “그게 아니고 언니. 어젯밤에…….”

 “어젯밤에 왜, 무슨 일인데?”

 “피디님이요. 어제 술 먹고 숙소에서……. 어떻게 내 방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내 따귀를 때리고…. "

 "너 따귀를 때렸다고, 왜? 술 취해서?"

 "그리고..."


 A의 호흡이 가빠졌고, 목이 메는 듯했다.


 "그리고 왜, 왜? 왜!"

 "억지로 키스하려고.. 나한테...."

 “뭐? 개새끼가….”     


욕이 나왔다. 한참을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남은 것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따라갔으면 달라졌을 텐데. 미안했다.


왜 문을 제대로 왜 안 잠갔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나누고 싶지 않은 상처들이 왜 이렇게 자주, 내 주위에서 발생하게 될까.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거기 택시 불러줄 테니까 일단 서울로 와.”

 “그래도 될까요?”

 “지금 촬영이 문제야. 택시 타고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나와서 버스 타고 와. 내가 터미널에서 기다릴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A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한 시간여 나와 통화를 하면서 수치심과 공포라는 감정을 누르며 참아냈다. 촬영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프로의식 같은 게 A를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촬영이 모두 끝날 때까지 A는 현장을 지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일하던 담당 PD와 함께 서울로 왔다.     




Spotlight, 2015 /  감독 토마스 맥카시



언론의 힘이 진실을 보도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속한 곳에 행해지는 부정한 상황들이 묵인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떠오른 영화가 ‘스포트라이트(토마스 맥카시 감독)’다. 

스포트라이트는 성추행을 주제로 한 영화로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신문사 탐사보도국 '스포트라이트 팀'에서 가톨릭 교회 보스턴 교구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을 취재해 파헤지는 이야기다.   


가톨릭 교회 사제들의 추행 문제는 이미 수 세기 동안 은폐해 왔던 비밀이었다. 보도 취재가 시작됐다는 걸 알게 된 가톨릭 교회는 압력을 넣으며 오히려 언론사에 조사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늘 그랬듯이, 가진 힘과 권력을 동원해서.


취재가 위기에 빠진 그때, 피해자가 등장한다. 피해자의 증언만큼 강력한 증거는 없다.                    

 


전 11살이었어요. 대이빗 홀리 신부에게 강간당했죠. 기도하러 갔다가 변을 당한 거예요

가난한 집 아이는 종교에 크게 의지해요. 신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그게 그렇게 좋죠.

심부름이라도 시키시면 특별해진 기분이에요. 하나님이 도움을 청하신 것처럼.

추잡한 농담이라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하다가도 그게 둘만의 비밀이 되는 거죠.

그렇게 가까워져요.


 (중략)


이건 신체적 학대를 넘어 영적인 학대예요. 성직자에게 당하면 믿음까지 뺏기는 거예요.

그래서 술이나 약에 빠지고 그것도 안 되면 자살을 하죠.  

   

 - 영화 <스포트라이트> 중 ‘필 사비아노’의 대사 중에서       



    

성추행은 어디에나 있지만,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성직자가 아니어도, 교양 넘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가해자에게 성추행은 무조건 비밀이 된다.

왜? 범죄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말하지 않을 것이 뻔하데 피해자 역시 수치심에 말하지 않는다면 범죄는 어둠에 묻혀버린다.

만약 피해자가 사실을 밝히고 사과를 요구한다고 해도 '진짜 사실’로 인정받는 과정은 쉽지 않다.      




다음 날, 나는 A와 만나 대책을 세웠다. 우리가 원하는 건 한 가지, PD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나의 경우처럼 그저 ‘이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방송 PD들조차 '서로 잘못을 용인해주는 사회 집단'에 속해있는데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걸까?


다행인 것은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 얼마 지나지 않아 - 가해자 PD가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졌고, A는 편하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후배, 친구, 선배들이 피해자가 되었다고 말할 때 -

또 과거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상처 입고 있다고 말할 때 -

해줄 수 있는 위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나쁜 놈. 꼭 벌 받을 거야. 우리 오래 살면서 그놈 망하는 거 같이 봐요.”     

같은 서툰 위로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해줄 수가 없다.

내가 경험해봐서 안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은 쉽게 사라지는 않을 것이고, 기분도 그리  나아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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