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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Oct 15. 2021

할아버지의 하소연

상속과 유언

요즘 일을 하다보면 재산 증여나 상속과 관련해서 상담을 하고자 하는 어르신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법정상속인과 그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법정상속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법정상속비율 말고 본인이 원하는 다른 내용으로 상속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채무는 어떻게 되는지,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 본인이 처한 상황과 자녀들과의 관계, 재산 상황 등에 따라 그 물음은 천차만별이다.


간략히 정리를 하자면,

1순위 법정상속인은 직계비속, 즉 자녀이다. 만약 자녀가 없다면 2순위 법정상속인인 직계존속, 부모가 상속을 하게 된다. 이 때 배우자는 1순위 및 2순위 상속인이 있을 경우 그들과 공동상속인이 되고, 1순위 또는 2순위 상속인이 모두 없다면 단독상속인이 된다. 자녀와 부모, 배우자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면 3순위 법정상속인인 형제자매가 상속인이 되고, 그마저 없다면 4순위인 4촌 이내 방계혈족이 상속을 받게 된다.

동순위 상속인들은 동일한 비율로 상속재산을 분할하여 가지게 되는데, 이 때 배우자는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보다 0.5를 더한 비율로 상속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피상속인에게 배우자와 두 자녀가 있고 상속재산 7천만원을 남겼다면, 배우자는 3천만원(3/7), 자녀들은 각 2천만원씩(2/7)의 상속재산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법에서 정한 상속비율 말고 본인이 원하는 내용으로 상속을 하고 싶다면 유언을 하면 된다.

우리 민법에서는 유언의 방식으로 5가지를 정하고 있는데,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가 그것이다. 유언은 법에서 정한 방식으로, 그 요건을 갖추어서 했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사회사업가가 100억원대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을 연세대학교에 기부한다는 내용의 자필유언서를 남겼으나 날인이 없는 바람에 그 효력이 문제가 되었고, 결국 학교가 유족들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상속재산이 많아 이를 둘러싸고 상속인들끼리 다툼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상속재산보다 채무가 많아 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심하는 경우를  나는 훨씬 많이 본다.

기본적으로 채무도 상속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이에 상속재산을 처분해 버리기라도 하면, 내 부모님의 혹은 내 자녀의 막대한 채무가 나의 채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 또는 상속포기를 하여야 한다.

한정승인은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 피상속인의 채무를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겠다는 것이고, 상속포기는 피상속인의 모든 재산과 채무를 상속받지 않겠다는 선언, 즉 법적상속인의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상속포기가 한정승인보다 그 절차가 간편하기는 하지만, 선순위상속인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게 되면 그 다음 순위 상속인들에게 채무가 순차적으로 상속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살아있을 동안에도 교류가 없어 잘 알지 못했던 조카의 자녀들에게까지 채무가 상속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순위상속인들 중 한 명은 한정승인을 하는 것이 좋다.




상담을 위해 사무실을 찾은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자마자 대뜸 나에게 물으셨다.

"아들에게 상속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할아버지의 사정은 이러했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지낸 지 몇 년이 흘렀는데 그 동안 아들과 며느리는 연락 한 통이 없었다는 것이다. 반찬 한 번 제대로 가져다 준 적이 없으며 김치나 몇 번 가져온 정도였는데 그 마저 쉬어서 맛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서운한 마음이 겹겹이 쌓이던 차에 할아버지의 마음이 돌아선 결정적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손자의 결혼식 때였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집 마련을 위해 없는 돈을 털어 3000만원을 지원해 주었고, 어떤 대가를 바라고 그 목돈을 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준 것이 있으면 그에 따른 성의를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 결혼식 당일 본인을 좀 더 챙겨주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내외는 결혼식 날 매우 바빴던 모양이다. 아버지를  살뜰하게 챙기지 못했고 식사도 아버지와 다른 친척들이 아닌 사돈과 하였으며(사돈과 식사하는게 문제인가 싶었으나 할아버지는 서운해하심) 식이 끝난 후 할아버지는 아들이 이사한 집으로 가서 구경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으나 아들은 할아버지를 바로 할아버지댁으로 모셔다 드렸다고 했다. 크게 마음이 상한 할아버지는 아들이 괘씸한 마음에 급기야 상속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본인을 낀 세대라 칭하며 하소연을 늘어놓으셨다.

자기가 젊을 때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고 부모님이 자식들을 고생해서 키워준만큼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양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다들 자기 먹고살기 바쁘고 자식은 더 이상 부모를 봉양하지 않으며 부모도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문화가 널리 퍼져서, 자신과 같은 '낀 세대'는 부모는 봉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로부터 봉양은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한탄은 꽤 오래 이어졌다.


처음보는 나에게도 이렇게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시는걸 보면 할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감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을텐데, 본인이 그 동안 아들을 애지중지 키운 것을 생각하고 그에 따른 기대를 하니까 실망감이 더 커지는 것이리라.

할아버지의 사정도 안타까웠으나 아들의 사정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할아버지께 아들과 혹시 대화는 나누어 보셨는지, 할아버지가 느끼는 서운한 감정을 아들에게 이야기해 보신 적은 있는지 여쭤보았다.

표현을 잘 하지 못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성의 특성이 할아버지에게서 언뜻 보였는데, 역시나 할아버지는 그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서운한 마음이 이토록 크게 부풀어오르기 전에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점을 서운하게 느끼셨구나. 앞으로는 좀 더 잘 해 드려야겠다.' , '아들이 요새 이러이러해서 바빴구나. 좀 이해를 해 줘야겠네.' 등의 서로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었더라면 이 정도까지 오지는 않았을텐데...안타까웠다.

Better late than never 이라고 지금이라도 아들과 대화를 해 보기를 권했으나 할아버지의 마음은 이미 완강히 닫혀 열리기 힘들어 보였다.

 할아버지께 위에서 언급했던 상속과 유언에 대한 법률지식을 알려드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어쩐지 씁쓸했다. 무엇보다 의뢰인 할아버지의 마음이 많이 다치고 외로움이 커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는데, 근처 복지관이나 양로원에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는 등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흔히 '낀 세대'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부모 부양과 자녀 돌봄을 하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세대 갈등과 문화 차이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 심리적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어르신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이것이 더 이상 개인 혹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또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회적 안전망과 인프라가 더욱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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