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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Sep 03. 2018

25. 놀이생태계

아이들은 언제나 놀이를 통해 배워왔으며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왔다. Children have always learned and created places for themselves through play. 

–– Donna R. Barnes. Contemporary American psychologist 


현재 기성세대가 놀이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들이 보낸 유소년기를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만화 『짱뚱이』나 『검정고무신』에는 학령기의 어린 소년소녀가 어린 동생을 챙기면서 들로 산으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놀러 다녔던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이가 아이를 키우는 아이들의 작은 사회. 철마다 꽃과 열매가 피고 지고 열리듯 놀이생태계는 계절별로 다른 놀이가 갈마들었고 한 해 한 해 아주 어린 아이가 신참으로 들어오면 다 큰 아이는 자신들만의 세계로 떠나버렸다. 현재 40대 이상에게 익숙한 이런 풍경은 수 만 년 전부터 사람 사는 곳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다음의 인용문은 원시 부족의 생활상을 통해 수 만년 동안 작동해온 놀이생태계의 모습과 작동원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살배기들은 놀이집단에 합류한다. 그리고 사실상 아이들은 이런 놀이집단에서 양육된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놀이의 규칙을 설명하고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빼앗아 가버리거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를 어기는 아이들을 훈계한다. 그리하여 아이의 사회화는 주로 놀이집단 내에서 발생한다. ··· 처음에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아주 너그럽게 대하지만 나중에는 행동에 일정한 제약을 가한다. 아이들 집단에서 함께 놀면서 그 집단의 성원들은 무엇이 남의 화를 돋우는지,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를 학습한다. 이런 현상은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발생한다. - Eibl-Eibesfeldt, I. (1989). Human Ethology, Hawthorne, NY : Aldine de Gruyter. pp 600~601. 


놀이생태계는 가족이나 학교보다 더 오래된 문화적 환경이다. 근대적 학교가 등장한 것은 최근 몇 백 년 사이의 일이다. 귀족층을 위한 고전 시대의 학교도 넉넉하게 잡아 3000~4000년 전에 등장하였다. 그런 공식적 제도 이전에 지식의 전수나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인류학은 이 질문에 대하여 많은 힌트를 준다. 인류는  학교 제도 밖에서 문화를 학습하였다. 교육기관이 따로 없는 전통사회에서는 언어의 학습조차 놀이생태계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상당수의 원시 부족들은 3세 이전의 아이들은 언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부모들이 아기에게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 3세 이후 같은 마을의 놀이 고참들에게 언어를 배운다.  

학교보다는 훨씬 오래되긴 했지만 가족 역시 그다지 오래된 제도는 아니다.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일부일처제의 가부장 사회는 농경이 시작된 이후에 등장하였다.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위해서 밭을 깊이갈이(심경深耕)하는 농사법이 시작된 이후에 가부장제가 확립된 것이고 남성이 가지고 있는 근육의 힘이 농업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 이후다. 가부장 사회가 등장하기 이전의 수 만년 동안의 모계사회에서 씨족 내부의 놀이생태계가 가족보다 더 오래 전부터 작동하였다. 물론 놀이생태계가 학교나 가족보다 선행한 근본적인 문화적 환경이라 학교나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좀 더 과거로 돌아가서 현생인류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기 전에 수 백 만년 동안 어떤 식으로 살아 왔는지는 동물행동학의 성과를 통해 살펴 보자. 600만년 전부터 250만년 전까지 인류는 가족이란 단위를 만들 수 없었다. 20명 정도의 씨족단위로 생활해 왔으며, 이 씨족 내의 놀이생태계는 생존의 주요한 수단을 연습하고 실행하는 기능을 가진다. 유인원의 생활방식과 인류 초기의 생활사를 돌이켜 보아도 가족의 역사는 씨족이나 혈족에 비하면 매우 짧다. 침팬지나 고릴라 사회를 관찰하면 어미가 거두어 먹여야 하는 어린 유인원이 성장하여 젖을 끊게 되면 동생이 생기게 된다. 어린 유인원은 한 동안 동생과 함께 어미 곁을 맴돌지만 점점 또래집단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모친을 떠난 어린 유인원 개체는 또래집단의 놀이생태계에서 놀이를 통해 생존의 가장 중요한 기술을 연습하고 실행한다.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도 이와 유사한 성장 패턴을 가졌다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므로 <핵가족+학교>의 조합보다는 <모친+씨족+놀이생태계>의 조합 속에 삶을 꾸려왔다.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영유아를 모친이 끼고 살아야 하는 최소한도의 양육 기간이 지나면 가족보다 안정적인 씨족 같은 집단 내에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얻어야만 했다. 

수 만년 간 인류의 평균 수명은 30세 정도였다. 불과 몇 백 년 전까지 상당수의 아이들은 젖을 떼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나이가 지나서 부모를 잃었다. 어린이가 성장하여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가 제공하는 양육이 성장과 발달에 필수적이었다면 인간 사회는 대부분 붕괴하거나 정체 상태로 남기 쉬웠다. 부모가 필요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아이의 양육을 담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야만 한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부모의 양육이 자녀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도록 우리가 진화해왔다면 인류는 결코 성공적으로 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최소한의 양육 기간 후에 부모 없이도 인간 집단에서 동화되어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었다. 현대 어느 사회를 보아도 청소년들의 또래집단이 가지는 강한 구심력이 주변의 부모나 교사 같은 성인들의 영향력을 매우 쉽게 튕겨 낸다. 아이들이 스스로 앞가림이 가능한 시기가 오면 가족 보다 또래집단이 준거집단이 되게 마련이다. 

현생인류가 모습을 드러내어 살아온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아동의 사회화를 담당한 것은 바로 놀이생태계이다. 사회 집단을 이루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은 놀이생태계를 통해 집단에서 살아갈 수 있는 문화적 소양과 지식을 전달해 왔다. 인간이 다른 인간 존재와 더불어 인간일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바로 놀이생태계에서 학습되고 전수되었다. 

이를 유가철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인인지도(人人之道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논어』에서 “유어예遊於藝”라고 하였듯 고대 동양의 귀족 교육기관은 교육과 놀이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 대중을 위한 학교가 생기기 전인 17세기까지는 어린이와 성인의 놀이생태계는 분리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일과 놀이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던 놀이와 노동의 미분화 상태였기에 아동들은 성인들과 섞여 살면서 놀이를 통해 성인기의 일을 조금씩 배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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