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쓰기 19
은행잎이 노랗게 떨어지던 계절이었다. 디지털카메라에 빠져 있었다. 고가의 렌즈를 장착하고 멋진 단풍 사진을 찍기 위해 퇴촌으로 향했다. 햇살이 막 떠오르는 아침이 빛을 찍기에는 최적이다. 낮은 집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는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햇볕을 받아 샛노랗게 빛을 내고 있었다. 감탄하며 조금 더 예쁜 모습을 찍기 위해 몸을 움직이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신다. 지나가시기를 기다린다. 할머니가 뒤돌아보신다.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 싶어 할머니를 바라봤다. “어느 엄마가 이렇게 예쁜 딸을 낳으셨을까?” 심장이 쿵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삶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인사를 받아본 일이 없다. 이 말은 언제나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아마도 내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 내 엄마를 바라봐 주는 인사여서 그랬는가 보다.
젊은 시절 내성적인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내가 못마땅하셨다. 집에 사람이 오면 들어서기도 전에, 내가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나를 돌아 보시면서 “넌 왜 인사도 안 하니?”하는 것으로 방문자에 대한 인사를 건네시곤 했다. 나는 속으로 ‘지금 막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시나?’ 번번이 시어머니는 내 인사를 가로막고는 나를 인사도 안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셨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말했을 텐데 그때는 시어른의 말씀에 토를 달지 못하는 답답이 며느리 노릇 하느라 그냥 인사가 굼뜬 새댁이 되고 말았다.
지구를 따라 걸은 세월이 오래되니 이제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사람이 보이면 인사한다. 일종의 습관이다. 젊은이다. 속으로 생각한다. 뭐지? 왜 늙은 내가 젊은 사람에게 인사를 했지? 혼자서 머쓱해진다. 상업용 공간도 아니고 주거용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 이웃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모르는 아이들이 인사를 한다.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인사 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