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글자 에세이쓰기 18
영하의 날씨는 맵차다. 어린 시절 영하의 날씨는 물동이 속의 물이 겹겹이 얼어붙던 풍경이다. 윗목에 떠 놓은 자리끼마저도 살얼음이 생기던 풍경이다. 논 위에서 앉은뱅이 썰매를 타던 풍경이다. 온 동네 꼬맹이들이 모두 모였다. 오빠가 있는 아이들은 맵시 나게 깎은 썰매를 탔고, 오빠가 없는 우리는 나무판자에 철사를 엮어 겨우 형태만 갖춘 썰매를 탔다. 썰매 꼬챙이는 송곳을 사용했다. 썰매가 논의 일이라면 눈썰매는 밭의 일이었다. 비스듬한 언덕을 이루고 있던 감자밭 위로 쌓인 눈 위에 비료 포대만 있으면 한나절 배가 고프도록 놀 수 있는 눈썰매장이 되었다. 이런 일들은 영하의 날씨에만 가능했고 온 동네 꼬맹이들이 모두 모여들어야 재미났다. 어른들은 한 귀퉁이에 솔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 불 속에서 까맣게 익은 감자를 꺼내먹던 우리 얼굴은 숯검정이 되었다. 어묵이나 떡볶이는 없던 풍경이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영하의 날씨는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여름 더위는 그럭저럭 참을 수 있는데 겨울 추위는 여간해선 참을 수 없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의 행동반경은 줄어들기 시작해서 영하의 날씨가 되면 외출을 삼가는 편이다. 은퇴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긴 하다. 작은 아이를 낳고부터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는 때가 있었다. 한기가 들면 영하의 날씨에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온몸이 달달 떨렸다. 겨울에 한기가 들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수년 후에 몸이 회복하면서 한기는 잠잠해졌다.
영하의 날씨에 눈이 내리면 겁난다. 그날 아침. 둔탁한 소리를 내며 렉스턴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개울 속으로 처박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은 다치지 않고 차만 폐차했다. 트라우마는 잠재의식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영하는 수은주로만 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의 마음도 영하로 얼어붙는 때가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거듭되는 배신으로 마음은 황폐해지고 송곳으로도 뚫을 수 없을 만큼 꽁꽁 얼어붙는 것이다. 영하의 날씨를 녹이는 것은 햇볕이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