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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Oct 30. 2018

솔직한 나의 일기

몸의 일기 - 다니엘 페나크


언젠가부터 일기를 쓰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일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끝나버렸다. 하루의 이야기를 나열하듯 적어보기도 했고,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날의 감정을 풀어 내보기도 했다. 한 때 유행했던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사용하기도 했고,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짧게나마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적기도 했다.


내게 일기는 솔직해야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일기 쓰기에 실패했다. 모두에게 공개되는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나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최소한의 사적 영역을 지키고 싶어 했다. 수기 일기를 쓰면서도, 혹시 누군가 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솔직한 나의 일상과 감정을 모두 적어내지 못했다. 솔직함을 기록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랐지만, 그런 일기를 만들어내기엔 나는 너무 부족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화자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비록 소설이긴 해도, 그는 몸을 주제로 매우 솔직하게 일기를 써나갔고, 자신의 딸에게 그 일기를 남겼다. 화자는 어릴 적, 친구들에 의해 숲 속에 있는 나무에 묶이게 된다. 정신과 몸이 분리되어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그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몸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12세부터 87세까지 이어진 그의 일기에는 사춘기 시절 처음 마주하게 되는 신체의 변화에서부터 죽음을 앞두고 나타나는 각종 질병들까지, 한 남성의 몸의 일대기가 담겨 있다. 그는 일기 속에서 오로지 ‘몸’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했다. 각각의 사건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막기 위해 일기 안에 어떠한 감정도 섞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린 시절 엄마 같은 존재였던 비올레트 아줌마, 사랑이라 새로운 세상을 선사해준 아내 모네, 탄생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해 준 아들과 딸, 그리고 손주들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는 항상 몸의 변화에 집중했다. 이들로 인해 새로 마주하게 됐던 몸에 일어난 변화들을, 매우 사적인 부분들까지 상세하게 묘사하며 일기 쓰기에 충실히 임했다. 발가벗겨진 상태만큼의 솔직함. 그의 일기 안에는 그런 솔직함이 들어 있다.


한 남성이 겪는 신체 변화를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 다니엘 페나크 역시 솔직한 사람이다. 지극히 사적이기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일기의 힘을 빌어 작가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몸의 이야기에 대해 설명한다. 독자가 그 솔직함에 경계를 풀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를 통해 소설이 아닌 진짜 일기라 믿게 하여 화자의 몸과 한 사람의 인생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내 일기에는 솔직함이 없었다. ‘기록’이라는 것 외 특정한 목적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일기를 쓰는 것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 일기 쓰기를 포기하고 난 뒤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자꾸 잊게 된다. 사진첩, 카톡방을 뒤지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미래의 나’를 독자로, 기억 회생을 목적으로, 다시 한번 솔직함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훗날 나의 자녀에게 남겨주면 안 될 정도로 솔직하게.



서평 <리딩 피플/이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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