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과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딩 피플 Apr 11. 2019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옥상에서 만나요 - 정세랑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고민에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이고 어쭙잖은 위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며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다는 그럴싸한 글도 넘쳐난다. 여기서 포인트는 내 경우엔 그런 어쭙잖은 글들을 보고 공감 받는다는 생각에 실제로 우는 경우가 허다한데, 울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상황 또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을 참이었다. 무슨 책이든 읽고 싶었지만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매일 다짐하는 노디너를 실패할 확률만큼 다정한 함정에 넘어갈 게 뻔해서 읽고 싶지 않았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그런 부분에서 ‘옥상에서 만나요’는 확실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언뜻 보면 일상인 것 같지만 한 가지씩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명의 남편을 소환하는 고대 주술을 썼더니 절망을 빨아먹는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든지, 곶감만 조심하면 되는 언데드 같은 뱀파이어의 얘기라든지. 그러한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어렸을 적 나도 언젠간 선택받으면 변신해서 세상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던 것처럼, 이 이야기들도 실제로 어디선가 일어난 듯한 환상을 심어준다. 귀에서 과자가 자라나는 「해피쿠키이어」 에피소드에서의 화자는 다른 한국인이 혹여라도 볼 수 있으니 여자친구를 끝까지 이름이 아닌 여자친구라고 표현한다. 비현실적인 소재들로 현실을 보여준다.


앞뒤가 잘린 듯한 느낌에 단편집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정세랑의 글의 경우 모두 다른 이야기임에도 서로 닿아 있다는 느낌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많은 에피소드는 누군가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무도 상황에 매달리지 않는다. 속으론 얼마나 더 많은 생각들을 삼킬까 싶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담담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말하지 않는다면 겉면만 보이기 나름이니 나는 그들을 창틀 안에서만 볼 뿐이란 것도 안다.


그렇기에 그토록 밀어내던 어쭙잖은 위로 대신 확실한 위로가 있다. 너무 현실적이지 않고, 비현실적이지 않으며 회의적이지 않고 긍정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은 위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속삭이는게 외롭고 버거울 때가 있다. 그저 가장 괜찮은 위로는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거나 혹은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것임에 확신이 선다. 다른 가치관이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그냥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뼘 안에 있다면 성공한 삶이렸다. 나는 언젠간 옥상에서 비가 들지 않는 가장 안쪽의 에어컨 실외기의 안쪽을 들여다보며, 모든 사랑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니 다들, 옥상에서 만나요.


Photo by Alexander Popov on Unsplash
서평<리플/임서미>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우리는 혼자가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