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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Feb 27. 2024

오늘, 하루

211209

  5시, 알람이 울린다. 주섬주섬 전화기를 찾아 시간을 확인하려 실눈이라도 떠보지만, 눈꺼풀들이 딱 붙어서 빛 한 줄기 들어올 틈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아… 눈 떠질 때 까지만 누워있자.’ 미지근한 손으로 눈두덩이를 주물주물 만져본다. 이불도 안 덮고 자는 아이의 손발은 따뜻한데, 이불 속에 꼭꼭 쌓인 내 손은 항상 미적지근하다. 겨울이 되면 신랑을 닮아 따뜻한 아이의 손이 부럽다.


  그렇다. 진짜 겨울이 되었다. 4시에 울리던 알람이 5시로 바뀐 것이 11월 중순이었던가. 해가 점점 늦게 떠오르자 내 몸도 점점 늦게 깨어 났다. 5시 반, 6시 무렵에 눈도 안 뜨고 잠결에 엄마를 부르는 아이를 조금 더 재운다는 명목 하에 한 시간 늦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다. 내 몸이 이불을 끌어 당기고 있었음을.


  일어나기는 한시간 늦게 일어나는데, 수면 시간은 훨씬 많이 줄었다. 아이를 재우면서 같이 잠들던 때는 이미 지나버렸고, 아이를 재우고 몰래 침대를 빠져나온다. 새벽에 못 다 읽은 책도 읽고, 끊임없이 채널을 바꾸는 신랑의 TV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공들여 하고 나면 11시. 어쩐지 자기는 아까운 시간이다. 또 무언가 찾아 헤맨다. ‘안 자나?’ 한 마디하고 신랑마저 자러 들어가버리면…… 너무 신난다.


  아주 낮은 소리라도 캐럴 같은 음악을 켜고,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반짝거리는 트리를 멍하게 본다. 반짝거리는게 좋다며 얄망스럽게 깜박이게 만들어 둔 트리의 꼬마 전구들이 화려하다. 음악 역시 화려하다. 빼꼼 내가 뭐하는가 싶어 신랑이 나왔다가 애꿎은 핀잔만 듣고 들어 간다. 글을 써야지 하고 준비는 해 놓지만, 어쩐지 이런 밤에는 글을 쓸 수 없다. 그렇게 책을 뒤적, 노트를 뒤적, 핸드폰을 뒤적거리다보면 어느새 12시. 5시에 일어나려면 지금이라도 들어가야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불을 끄고 들어간다. 


  아이는 패밀리사이즈 침대 한쪽을 인형들에게 내어 주고 내 베개를 베고 자고 있다. 이제 쌀 한포대 만큼이나 묵직해진 아이를 겨우 제자리에 돌려 놓지만, 얼마나 갈지. 곧 다시 내 옆에 딱 붙을 것이다.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핸드폰을 드는 순간 오늘 밤도 끝이라는 걸 알지만, 또 들고 만다. 새벽 독서실 안녕~~~


  새벽 독서실 문 여는 카톡 소리다. 눈이 번쩍 떠졌다. 그 잠깐 사이에 잠이 다시 들었나보다. 어떻게 자는 것인지 아이의 엉덩이가 내 뺨에 닿는다. ‘이러니 자도 잔 것 같지 않지.’ 어제 밤 열심히 웹툰봤던 사실은 또 까먹고 아이 탓이다. 이불에서 더 꼼지락거려봤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혼자 시작한 벽돌책 계획대로 다 읽으려면 지금은 이불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자.


  방문을 열고 나와 어제밤 나를 칭찬한다. 그 와중에도 식탁 위에 세팅은 다 해놨다. 읽고 있는 책 세권, 노트랑 패드, 독서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잠만 깨고 앉으면 된다. 세수하러 가기 전에 어제 갈아 둔 원두를 커피 메이커에 올리고 스위치를 켠다. 찬물로 세수하면 이제 잠이 깰 것이다. 잠을 깨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엄마”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안 됐다. 엉덩이라도 두드려서 더 재워야 한다. 충분히 자고 일어나지 않으면 아이는 사냥개가 된다. 평온한 아침을 위해서라도 더 재워야 한다. 실패다. 신랑 출근 준비하느라 왔다갔다하는 소리에 아이의 선잠이 깨버렸다. ‘나 잘 잤어. 엄마 잘 잤니?’ 한 마디를 남기고 문을 열고 나간다. 달랑달랑 하나 인형을 들고서. 예상과 같이 아침은 사냥터가 되어 버렸다. 세수를 하네 마네로 시작한 실랑이가 토끼 머리핀이 없다로 끝났다. 눈물 바람으로 차에 태웠지만 등원길은 즐겁다. 신호 대기 중에 눈에 보이는 간판들을 읽는다. 목소리에서부터 뿌듯함이 느껴진다. ‘엄마, 나 어쩜 이렇게 잘 알지?’ 웃을 수 밖에, 카오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고 매일 같은 곳에서 하는 같은 질문 ‘엄마, 어린이집에는 언제까지 도착해?’를 묻는다. 


  들어가지 않겠다고 드러눕던 게 일년전. 이제는 신발 정리도 혼자하고, 출석 코드 찍는 동안 저만치 달려 간다. 부쩍 더 커버린 아이가 대견하지만 낯설다. 점점 나를 닮아가는 게 무섭기도 하다. 나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데.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읽는 동안 서늘해서 발끝이 시리던 김애란의 소설 구절이 하필 이 순간 떠오른다. 떠오른 생각을 억지로 지우고, 조금 더 과장해서 경쾌하게 걷는다.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야채와 청주를 사자. 데리야끼 소스를 만들거다. ‘저녁엔 생선 구워서 데리야끼 소스를 발려 줘야지.’ 굳이 나와 다른 점을 찾아 내며 차에 오른다. 저녁엔 비릿한 생선구이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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