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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낡은 기억

첫 월급의 행방

by 지야 Apr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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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이거  열려. 어떻게  고칠까?”


“뭔데?”


“아이리버 오디오.”


신랑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이 구겨진다. 그럴만도 하다. 이게 언제적 물건인가. 13-4년은 족히 된 물건이다. 친정에서부터 신혼집으로 따라오더니 두번의 이사 끝에도 살아남은 물건이다. 그럼에도 기판의 고장인지, 아님 하드웨어의 고장인지 CD 들어가는 덱이 열리지 않는다.


“그냥 버려라. 더 좋은 거도 많이 나오는데 새거 하나 사고.”


사실 버렸어도 진작에 버려야 할 물건이었다. 이사오면서 신랑이 야심차게 구입한 스피커가 거실에 버티고 있었고, 성능 좋은 이어폰도 신랑과 나 각기 하나씩 있다. 가지고 있는 전자기기 중 스피커가 없는 건 하나도 없다. 이 오디오를 마지막으로 작동시킨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고 끼고 있는 이유는 하나이다.


내 첫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2009년 첫 직장을 구했다. 아직까지도 유명한 프랜차이즈 학원의 중등부 국어강사였다. 월급은 120만원, 내 손에 쥐어지는 돈은 소득세 3.3%를 뗀 116만원이었다. 돈 있으면 쓰는 게 일인 나를 아는 엄마는 월급에서 80만원을 적금으로 넣어버렸다. 씀씀이 늘어난 건 다시 돌릴 수 없다는 간단한 이유였고, 나도 동의했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한달에 36만원. 직전까지 받던 용돈의 두배 가까운 돈이었으니 적다는 생각도 안했다.


용돈 통장에 36만원이 찍힌 걸 본 순간 오디오를 샀다. 통장에 찍힌 돈의 반쯤을 지불해야하는 가격이었다. 하얀색 바디와 아이팟 도킹, 당시에는 생소했던 블루투스 기능까지 겸한 제품이었다. 배경음악을 켜 놓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시간을 보냈다. 밤 11시에 퇴근하면 오디오를 켤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오전 11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기까지 3시간,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CD 한 장에 행복해지는 시간이었다. 기분이 상쾌한 어떤 날은 눈 뜨자부터 윤도현밴드를 들었고, 비가 와서 찌뿌둥한 날엔 성시경을 들었다. 그 중 제일 많이 들었던 음반은 조성모 리메이크 음반이었다. 3평이 될까한 작은 내 방에 울리는 가느다라한 미성은 어쩐지 그 시절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겨울바람 소리로 시작하는 가시나무의 노래는 어느 계절이건 쨍하게 맑은 겨울하늘의 시린 바람을 내 방까지 데려다 줬다. 어디로 흐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미래와 나의 꿈과 계획을 제 것인 양 이뤄가던 당시의 남자친구, 제 살 깎아먹어가며 버티던 수많은 수업들 속에서 ‘내 속에~’로 시작하는 가수의 말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된다.”


몇 시간을 뚱땅거리던 신랑이 자신만만하게 전원버튼을 누르고 CD덱을 열었다. 뚱땅거리는 동안 버리니 마니하며 중얼거린 건 기억나지 않는지 칭찬을 바라는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짜? 어? 진짜네.”


굴러다니는 CD를 넣고 플레이버튼을 누르자 어울리지 않게 웅장한 행진곡이 나온다. 굴러다니던게 의욕없을 때 처방용으로 듣던 행진곡 모음집 CD였나보다. 골골대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울리는 트럼본 소리에 신랑과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무슨 취향이 저따구고?”


신랑의 기막혀하는 웃음 소리에 더 크게 웃었다. 내 첫 월급의 흔적은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지난주 아이의 잠자리 독립 장기 프로젝트를 위해 방안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신랑이 쓰던 방을 서재 겸 교실로 빼앗았다. 원통해 하던 신랑과 달리 간만에 생긴 내 방에 조금 신 났다. 아이방에 있던 낮은 책장 두 개를 옮기고, 창가에 붙어 있던 6인용 식탁을 방 한가운데로 옮겼다. 짝 안맞는 의자 네 개까지 들이고 나니 내도록 원하던 서재 모습 비슷했다. 골방의 문을 열어두면 내 책장들과 한 공간이 되기까지... 아이 책을 낮은 책장에 꽂고 수업용 교재며, 내 책들을 그위에 꽂았다. 다음날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데, 아뿔싸 배경음악이 빠졌다.


쪽방 한 쪽에서 먼지와 함께 낡아가고 있던 흰색 오디오가 책장 위에 놓였다. 그럴사했다. 전원 버튼은 잘 눌러지지 않았고, 리모콘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전원을 켜고 휴대폰과 블루투스를 연결했다. 뚜껑만 열면 연결되는 이어폰과 달리 한참을 뱅글뱅글 돌아도 연결되지 않는다. 겨우 연결이 됐을까? 스피커에서 낮은 지직거림이 들린다. 볼륨을 올려도 사이사이에 걸리는 잡음이 신경쓰였다. 올해 아니 이달을 넘기지 못하겠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신랑 저거 이제 버릴래.”


“왜? 평생끼고 살거처럼 굴더니.”


“잡음이 심하다.”


“막귀인 니 귀에 그 정도면 버려야지. 오래도 가지고 있었다.”


장식으로라도 가지고 있고 싶은 심정이 없는 건 아니다. 저 오디오는 내가 성인으로서, 온전한 1인분의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는 증거였으니까. 스피커에서 흐르던 음악에, 라디오 소리에 위로받던 청춘의 기억이었으니까.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신랑은 ‘미련’이라고 하지만, 미련보다는 기억이자 추억이다. 36만원의 반을 덜어서 오디오를 샀던 그 호기로움. 여름 저녁 땀흘리며 낑낑대던 저따구였던 내 취향. 그런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니까. 그래도 이제는 버릴거다. 쪽방 선반에 쌓여 먼지먹고 있는 처지보다 낫지 않겠는가. 마땅한 스피커를 다시 만날때까지 배경음악은 휴대폰 내장스피커로 들어야겠다. 하긴, 매일 듣는 핑크퐁 동요만 아니면 뭘 들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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