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게 된 순간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어버이날 같은 거, 없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내게 말했다.
밥도 잘 먹고, 기분 좋게 용돈도 드리고, 쇼핑도 했는데.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시는 걸까?
이유를 여쭤보니 어버이날이란 게 괜히 있어서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부모란 그런 존재인 걸까?
평생 자식을 위해 살면서도 작은 호사 하나 누리는 것도
자식에게 미안해지고 마음이 짠해지는 그런 존재.
나는 그런 엄마, 아빠를 볼 때마다 수시로 눈물 버튼이 눌려진다.
부모님의 나이 듦이 곧 나를 키워낸 희생의 결과물 같아서.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는 나를
유일하게 울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부모님이다.
어버이날이라 아빠의 신발을 사러 들린 매장에서
아빠의 발이 가장 작은 사이즈란 사실에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다.
어릴 땐 그렇게 커 보이던 아빠였는데.
이제 맞는 신발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나이가 드니까 발도 작아지나 봐"
아빠도, 나도 서로 그 말에 동의하며 웃으면서도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운 좋게 신발 끈을 조금 꽉 조여 매면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샀고,
헛걸음이 아니라 기분이 좋아진 나는 슬며시 아빠의 팔짱을 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빠와 함께 걸을 땐 팔짱을 끼고,
엄마와 함께 걸을 땐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고,
또 두 분을 만날 땐, 다정하게 안아본다.
너무 고맙고, 사랑하고, 미안하고, 안쓰러운데.
이 모든 감정을 말로 전하기엔 쑥스럽고,
또 말로는 다 담을 수 있는 표현이 없어서,
대신 꾹꾹 누르고 눌러 소소한 스킨십으로 그 마음을 전해 본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목석처럼 가만히 있으시던 엄마, 아빠도
이젠 으레 자연스럽게 서로 안고 등을 토닥이고,
손을 잡고 팔짱을 끼며 체온을 느낀다.
그렇게 작아진 엄마, 아빠의 몸을 느끼고,
또 내가 얼마나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지 마음으로 전한다.
엄마, 아빠의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슬퍼하는 순간에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테니까.
엄마는 어버이날이 없었으면 좋겠다지만
나는 무슨무슨 날이 더 자주 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핑계 삼아서 엄마, 아빠와 좋은 곳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소처럼 벌어 모은 용돈이라고 드리면서 생색도 낼 수 있게.
그래서 더 많이 안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사진 찍기 싫다는 엄마, 아빠의 사진을 찍으며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담으며 지금을 기록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의 소중한 시간 전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