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을 헤치며 옹기종기 모여있는 비둘기들을 보고 지은 단편소설 입니다.
비둘기 앨리는 오늘도 남대문 처마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앨리는 이 자리를 무척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남대문에서는 온갖 방향에서 돌진하는 차들의 부기우기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 옛 왕들의 고향인 광화문과 다양한 인간들을 만날 수 있는 서울역을 한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는 바로 이 자리는 다른 비둘기들에게 인기가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 앨리가 속해 있는 중구비둘기그룹 제5구역의 다른 비둘기들은 주로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는 골목길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버스정류장 주변을 선호했다. 이 현상은 어쩌면 그들뿐만 아니라 비둘기라는 생명체들의 일반적인 관심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직 앨리만이 남대문 처마에 남았다.
앨리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오전7시와 8시 사이로 직장인들의 출근시간 바로 전이다. 이 시간에는 길거리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아서 비행을 하기에 좋았으며, 공원에 가서 꽃향기를 맡는다고 해서 소리를 지를 어떤 인간도 없었다. 그리고 앨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해가 아직 다 뜨지 않아 공기중에 머물고 있는 어스름한 푸른빛을 보며, 게으름을 피우느라 새벽을 따라가지 못해 남겨진 차가운 공기들을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내가 비둘기 치고는 감성적인걸까 ? 앨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앨리는 이미 그룹에서는 독특 - 앨리는 독특하다고 표현을 했지만, 그녀의 그룹구성원들의 말을 빌리자면 무의미한 것에 시간을 쏟는 실패한 비둘기 - 한 개체로 인식이 되어있었고, 그래서 앨리는 종종 그룹에 일부가 되지 못했으며, 그것이 더 앨리를 자연으로 혹은 도시로 날아가게 만들었다.
그날 아침도 앨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원으로 날아갔다. 앨리는 이 공원을 일주일 전쯤 발견했는데, 인공공원이긴 하지만, 새로 만들어서 깨끗했고, 풀이 적당히 자라있어서 걸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공원에는 큰 나무가 없어서 인간들을 피해 도망갈 은신처가 없기는 했지만, 대신 키가 작은 코스모스가 있었다. 라일락처럼 연약한 보라색도 철쭉처럼 강렬한 마젠타도 아닌, 서정적인 핑크 꽃잎들을 가진 코스모스였다. 앨리는 잔디를 걸으며 코스모스 틈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종종 바람에 날리는 코스모스 사이를 탐험하며 꽃잎에 남겨진 아침 이슬을 마시면, 자신이 비둘기라는 사실은 잊고 그저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앨리는 그렇게 코스모스 사이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앨리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휙 하고 고개를 돌렸고, 갈색머리의 어떤 여자인간과 눈이 마주쳤다. 인간과 눈이 마주친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여자인간은 고개를 돌리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손을 휘휘 내젓지도 않았고, 그냥 벤치에 앉아 앨리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고 조금 피곤해보였지만, 입은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앨리는 그 여자인간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 여자인간도 앨리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앨리는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는 기분이 들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제야 앨리는 왜 그 여자인간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는지 알았다.
앨리는 꿈속에 있었고, 앨리는 그 여자인간 자신이었다.
앨리는 한번도 비둘기였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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