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Dec 02. 2024

[상흔] 상처받은 나는 어떻게 상처주는 나가 되었나?

나는 그가 좋았다.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던 성격도,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던 시선도, 12개들이 생수 박스를 양 어깨에 들쳐메고 내 자취방까지 옮겨주었던 덩치도 다 좋았다. 그와의 섹스도 좋았다. 첫 경험에서 임신중절까지 섹스에 이런저런 안 좋은 기억이 있던 나는, 섹스가 이리도 정다운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를 만나고 처음 알게 되었다. 그와 모텔을 갈 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원래는 모텔에 가면 왠지 모르게 죄 짓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보고 걷던 나였다. 하지만 그와 모텔을 갈 때는 묘하게 당당한 마음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지금 이것이 나에게 ‘옳은’ 행위라는 확신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모텔에 있을 때는 모텔방이 꼭 우리 둘의 집 같았다. 음습하고 우울한 모텔방에 어느 화목한 가족의 저녁 식사 같은 따뜻함이 피어오르곤 했다. 그와 모텔을 나서면 온몸과 마음이 따끈따끈해져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또 헤어지기 아쉬워서 근처 분식집에 들러 뜨끈한 우동 한 그릇을 나눠먹으며 다시 웃음꽃을 피웠다. 참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분명 그렇게 사랑으로 가득 차 있던 시간이 있었다.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말고 그 어떤 것도 들어올 틈이 없던 시간이 있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 그와 함께 있으면 과거에 대한 기억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완벽히 가리워졌다. 그런 것들보다 지금 내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그의 집중한 표정이, 그리고 스틱을 쥐고 있는 그의 다부진 손이 훨씬 더 의미있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 틈은 생겼다. 아니 어쩌면 틈이 생겨 시간이 흐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와 섹스를 하던 중이었다. 자취방 노트북 모니터가 갑자기 켜졌다. 불꺼진 방에 파란 불빛이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장 우울했던 시절 그 불꺼진 방의 파란 불빛이 떠올라서. 나는 그의 위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무너져내렸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안아 주었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사랑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그날 그 방에는 눈물밖에 없었으니까. 그날 나는 그와 함께하지 않았다. 그날 내가 함께했던 것은, 불꺼진 방에 홀로 있던 과거의 나였다. 그런 나를 안아주며 그는 외롭지 않았을까? 그날 불꺼진 방에 홀로 있던 건 바로 그였을 테니까.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선물처럼 찾아온 사랑을 조금씩 좀먹어 들어갔다. 나는 그를 외롭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상처도 주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모텔방에서 즐겁게 놀고 있을 때였다. 그와 침대에 누워 섹스를 하는 듯 마는 듯 하며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갑자기 머뭇대며 할말이 있다고 했다. “뭔데?” “나 아까 전에 살짝 나왔던 것 같아.”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을 분명히 보았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 말을 먼저 꺼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실수’가 전혀 고의적이지도 전혀 무책임하지도 않은, 진짜 ‘실수’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까지 나한테 이러면 어떡해!”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옷을 입고 모텔방을 뛰쳐 나와버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서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허겁지겁 따라나온 그는 나를 겨우 진정시켜 카페에 앉혀놓고는 혼자 사후피임약을 사왔다.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한 동안 나와 섹스를 하며 사정을 어려워했다. 나의 상처가 그의 몸에 옮겨 붙어버린 것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이별을 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이 두 장면은 그에게 미안한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왜 그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일까?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아팠던 그 상처의 기억을 혹여나 되풀이할까봐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내가 두려워했던 상처의 기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임신중절 수술을 하며 온몸으로 체감한 폭력의 기억이었다. 아무리 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해도, 내 몸에 찾아온 작은 따뜻함을 내 손으로 잘라낸 일은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다른 하나는 상처받은 채로 홀로 남겨졌던 소외의 기억이었다. 남자친구 없이 혼자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던 기억, 수술을 받은 뒤 모텔방에서 혼자 마음 시려했던 기억,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 불꺼진 방에서 혼자 울었던 기억, 엄마에게 영영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불안을 전이받은 기억. 그 모든 기억이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상처받은 채 혼자가 되었다’는 기억은 ‘상처 받았다’는 기억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였으니까. 폭력과 소외, 그 두 가지 상처의 기억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다시는 그런 수술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다시는 상처받은 채 홀로 남겨지고 싶지도 않았다.



“너까지 나한테 이러면 어떡해!” 그래서 소리지른 것이었다. 같은 상처를 다시 받게될까 봐 두려워서. 사실 그 정도 ‘실수’에 사후피임약까지 먹었으면 과거의 상처를 되풀이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화가 나고 서러웠다. 그가 나에게 상처주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단 걸, 오히려 그는 의도치 않게 날 상처입혔을까봐 미리 걱정하고 미안해하기까지 했단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요동치는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그’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첫 번째 남자. 나는 ‘나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첫 번째 남자’가 나에게 똑같은 상처를 줄까봐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었다. “너까지 나한테 이러면 어떡해!” 그것은 ‘너는 나에게 상처주어서는 안돼!’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나의 마음은 ‘나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첫 번째 남자’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입히게 된다. 애석하게도 그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건 너무 때늦은 뒤의 일이었다.


‘너는 나에게 상처주어서는 안돼!’라는 마음만큼 ‘너는 나를 버려서는 안돼!’라는 마음 역시 있었다. 그것은 홀로 남겨졌던 소외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의 간절한 구조요청을 엄마가 외면했다고 느낀 뒤,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는데, 세상에 나를 안아줄 타인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다가온 것이 바로 그였다. 그는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엄마도 보듬어주지 않았던 나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타인으로부터 처음 받아본 사랑의 기억은 너무나 달콤했다. 나는 그런 기적같은 일이 내 삶에 다시 일어날 리 없다고 속단했다. 그래서 그가 영원히 내 곁에 있었으면 했다. 다시는 홀로 남겨진 채 상처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문제였을 테다. 나는 그가 좋아서 내 곁에 있길 바란 것이 아니었다(그 이유도 있었지만 그건 부수적인 이유였다). 그가 나를 안아주었기에 내 곁에 있길 바란 것이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그가 나를 안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을 거란 의미이기도 했다. ‘너는 나를 버려서는 안돼!’라고 외치던 내가 사실은 가장 먼저 그를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상처받은 나’는 점점 ‘상처주는 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와 십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시간의 후반부에 나는 꽤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그는 우울해하는 나를 보며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나는 힘들어하는 그를 보며 별로 미안해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긴 시간 지속된 관계의 관성으로 인해, 그가 나의 어두운 면을 보듬어주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덧 그는 나에게 어떤 순간에도 나를 버리지 않을, 아니 버려서는 안될 존재로 둔갑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그리고 나 때문에 점점 어두워져가는 표정을 별 다른 죄책감 없이 외면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런 나에게 그가 지쳐 잠시 거리를 둘 때는 그에게 화를 내거나 서운해하기까지 했다. 그마저 나를 버리면 다시 홀로 남겨질까봐 너무나도 불안했기 때문에. 그가 나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 날, 온몸을 엄습했던 불안감이 기억난다. 나는 나에게서 겨우 숨쉴 틈을 찾아 혼자 쉬고 있던 그를 몰래 찾아갔다. 그는 나를 보고 차마 화를 내지도 못해 절망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난 다시 한번 상처받았다. ‘상처받은 나’는 이리도 이기적이었다.


나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은 시간이 증명해주었다. 그는 서른을 넘어 때늦은 사춘기를 맞이했다. 그는 늘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이해했던 그의 온화한 성정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부모로부터 강요받아온 ‘장남’과 ‘오빠’의 역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도 갓난쟁이였던 시절부터 늘 연년생 동생을 먼저 챙기고 양보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억울해했다. ‘오빠’ 역할을 집어 치우자 그는 ‘동생’ 아니 ‘아들’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내면에 자신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모두 거대한 볼링공으로 밀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아빠’ 같은 남자를 원했듯, 그 역시 그를 무조건적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엄마’ 같은 여자를 원하고 있단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는 사춘기 소년이 되어 자잘한 사고를 치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나는 흔들리는 그를 보며 당황했다. 그의 떨림에 가슴 깊이 공감하여 같이 떨린 것이 아니었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그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우리 관계 역시 흔들릴까봐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당황과 불안은 그의 떨림과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결국 우리는 불협화음을 남긴 채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를 안아주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를 먼저 버린 건 나였다. 그렇게 ‘너에게 버림받은 나’는 ‘너를 버리는 나’가 되었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건, 그가 먼저 나를 보듬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더 이상 나를 보듬어주지 않자 그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렸던 것이다.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날 엄마에게 마음이 닫혀버렸던 건, 엄마가 더 이상 나를 보듬어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나를 보듬어주는 사람만 사랑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서적 거래이지 사랑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와 이별 뒤에 그의 인생 영화라던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와 함께했을 때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지 않았던 영화다.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해주지 않았는지, 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작은 꿈이 무엇이었지, 또 그에게 나의 임신중절 같은 어두운 상처는 없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적어도 그는 나의 가장 아픈 상처 하나는 치유해주었는데.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또 서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은 뒤, 이제야 그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를 사랑하지 않고 ‘너와의 관계’를 사랑해서, ‘외로운 너’를 보지 못하고 ‘홀로 되지 않을 나’만 바라봐서 진심으로 미안하다. 너의 작은 상처 하나 치유해주지 못하고 훨씬 큰 상처만 잔뜩 주고 떠나서 진심으로 미안하다.



만일 그때 내가 처음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그를 보듬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때 내가 바닥에서 엉엉 울며 소리치던 엄마를 보듬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때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음 속에 훅 들어온 한 사람을 그저 먼저 보듬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때 내가 누군가를 더 잘 보듬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랑받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랑을 해라.” 언젠가 존경하는 나의 스승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사랑받는 것을 전제로 한 사랑은 불안하다. 온 마음이 ‘내가 사랑받는 것’에만 쏠려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은 사랑받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요동치고 사랑받는 느낌이 들 때만 안도하는 변덕스러운 사랑이다. 그런 변덕스러운 사랑은, 받는 이 역시 불안하게 만든다. 사랑받는 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그 사랑은 증발해버릴 테니까. 그래서 사랑받는 것을 전제로 한 사랑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네가 가장 괴롭고 힘들고 외로운 순간, 즉 네가 사랑이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그 사랑은 사라져버릴 테니까. 이제 나는 그런 변덕스럽고 잔인한 사랑은 그만하고 싶다.


나는 선물처럼 찾아온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 사랑이 우연히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듯, 어느 날 우연히 과분한 사랑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나는 우연히 찾아온 그 과분한 사랑을 소중히 대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랑을 떠나보냈다. 사랑을 떠나보낸 뒤 다시는 이런 우연한 행복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까봐 불안하기도 했다. 그 시절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에는 우연한 불행과 우연한 행복만큼 필연적 불행과 필연적 행복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이기적인 행동을 반복하면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필연적 불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 행복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사랑받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사랑 아닐까?


준비하지 않는 기다림과 준비하는 기다림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에서 과실이 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이 준비하지 않는 기다림이다. 반면에 매일 땅을 일구고 물을 주며 키운 작물에 과실이 맺히길 기다라는 것은 준비하는 기다림이다. 준비하는 기다림은 불안하지 않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과실이 맺힐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준비하며 기다린 끝에 맺은 과실은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이나 큰 기쁨을 주지 않을까? 나를 그저 내보인 채 누구인지 모를, 하지만 언젠가 나타날 것이 확실한 그 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 너를 그저 보듬은 채 언제일지 모를, 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것이 확실한 그 한 사랑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준비하는 기다림이다. ‘그’가 더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받은 사랑을 돌려주어야겠다. ‘그‘가 더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먼저 사랑하고 기다려야겠다. 사랑받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은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해주어서 고마워.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