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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Oct 05. 2024

4. 학부모와의 상담

특수하지만 특수하지않은 특수교육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3월은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배정받은 반에 새로운 아이들 그리고 새로운 업무까지... 다행히 운 좋게 담임이 아니라 교과 교사가 되면 조금 덜 바쁘지만 그런 경험은 교직생활에서 딱 1번 있었다. 특수학교에서 남교사의 경우 학교 특성상 담임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이제는 어느 정도 내려놓고 지내는 것 같다.

특수학교는 일반학교와 다르게 매 학기 시작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개별학생들의 IEP(Indivisualized Education Plan)라는 것을 작성한다. 일반학교에는 없는 제도인데 개별학생마다 특성에 맞게 개별화된 교육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이 것에 대해선 추후 자세하게 쓸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학생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아야 하는데 보통 새 학기 전 인수인계 시 전 담임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경우가 있고 학부모 상담 때 보호자로부터 정보를 얻는 경우가 있다. 정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학생과 담임 사이에 라포를 빠르게 형성할 수 있고 바쁜 3월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학부모 상담은 일반학교에서도 그렇겠지만 새 학기 업무 중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특수학교에서는 상담은 보통 학생상담보다 학부모 상담이 주를 이룬다. 매 학기마다 상담을 하는 것 이외에도 학교 생활과 관련하여 수시로 상담이 이루어진다. 처음 담임이 되었을 때 선배교사들께서 해준 조언이 있는데 학부모 상담은 가급적 30분을 넘겨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30분 이내에 짧고 임팩트 있게 끝내야지 너무 오래 하면 하소연이 많아져 지친다는 것이었다. 업무도 많은 시기에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학부모와 상담을 해야 하기에 지친다는 것이었다. 초기엔 이 말을 명심하고 상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조금씩 경력이 쌓이고 시간 관리하는 능력, 다음 날 수업에 지장이 안 되는 선에서 시간을 조정해 가며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상담을 한 시간 이상씩 하지는 않았다. 새 학기라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어느 정도는 '마음의 벽'이 있어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해동안 지내면서 그것을 조금씩 낮춰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던 것 같다.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면 보통 학생에 대한 간략한 정보로부터 시작해서 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학교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부모님들의 요청사항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그런데 이 상담 과정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가느냐가 한 해동안 학부모님과 관계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소위 '오버'를 하면 마음의 벽이 더 높아질뿐더러 이야기를 잘하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내기도 했고, 잘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도 자주 연락도 하고 나중에는 안부도 묻는 사이로 진전되기도 했다. 그만큼 상담에서 담임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신중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그동안 담임을 하면서 만난 학부모님들을 보면 대체로 '강성'의 학부모님들과 상호관의 '신뢰'를 형성한 학부모님 그리고 '무관심'한 학부모님들로 나눠졌다.

'강성'의 학부모님들은 대체로 마음의 벽이 높은 편이었고 교사에 대한 신뢰는 낮은 편이었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말씀하시는 것 중 하나가 '전 담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좋은 내용보다 불만 사항이 더 많은 편인데 이런 것들이 쌓여 신뢰가 낮아진 것일 아닐까 싶다. 혹은 학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담임의 태도도 '강성'의 성향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전 담임으로부터 학생에 대한 정보, 학부모에 대한 정보 등을 듣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참고만 할 뿐 내가 직접 경험한 뒤에 학생과 학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교사의 교직관이나 일련의 사건 등으로 인해 생긴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상담 때 꼭 해드리는 이야기 중 하나가 'OO 이에 대해선 백지상태로 시작합니다. 그러니 학부모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라는 것이다. 올 한 해 나대로 경험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기에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강성'의 학부모를 만나 끝까지 벽을 허물지 못하고 끝난 경우도 있었지만 좋은 관계로 끝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처음 담임을 했을 때 나는 기간제 교사 신분이었다. 그 소문이 우리 반 학부모들 사이에 퍼졌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한 학부모님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담임을 바꿔달라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만큼 학부모님들도 기간제 교사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는 있는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이 기간제 교사의 경우 1년만 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고 하니 자기 자식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담임을 시작했고 학부모 상담 때 '강성'의 학부모님께 한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학부모님들은 저의 또 다른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을 키우시면서 어떤 성향인지, 장점이 뭔지, 단점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해 동안 생활에 관해서는 학부모님들께 배우는 자세로 지낼 것입니다. 단, 수업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부분도 이야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수업에 대해선 저희가 더 전문가고 교육과정에 따라 진행되니 참견 안 하셨으면 합니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떠오르는 상담 내용이다. 내가 학부모님께 잘 말한 것인지 아니면 예의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생활적인 부분에서는 나 보다 뛰어난 부분이 많았기에 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업을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교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학부모님과 등하교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한 해가 마무리 될 때에는 좋은 관계로 인사를 했고 담임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학부모님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배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학부모님들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분이며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단, 교사의 권한을 침범한다든지,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경우는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때에 결국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님도 만족하는 한 해를 보낼 수 있다.

학부모님 모두와 '신뢰'의 관계가 형성이 되면 정말 한 해가 수월하게 학급이 운영된다. 즉각적인 피드백과 협의 사항이 이루어지고 학교에서 난처한 일이 생겼을 때도 대부분 이해해주시고 오히려 격려와 위로를 해주시기도 한다. 이런 학부모님들은 정말 감사하다. 반면 '신뢰'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는데 초기엔 '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이야기해 주시고 항상 믿어 주시는 학부모님 계셨다. 당시 나는 학생들 알림장에 매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기록해서 가정으로 보냈다.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 위주로 기록했던 것 같다. 그런데 2학기가 넘어가면서 이 학부모님께서 다른 학부모님께 하소연을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일 알림장에 자기 아이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만 써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애가 매일 학교에서 사고만 치는 그런 애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차' 싶었다. 좋은 의도로 그저 사실 기반으로 써줬던 그 일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다음 해부터는 이 일을 하지 않았다. 다만 상담 신청이 들어오면 아주 자세히 이야기해 줄 뿐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무관심'한 학부모님들도 꽤 많이 계신다. 일반학교는 모르겠으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많이 힘드신 경우가 많았다. 한부모 가정도 있고, 일을 하시는 경우 자식들을 잘 못 챙기시는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엔 상담을 해도 정말 빨리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담임교사에게 '위임'하는 식으로 끝이 난다. 학기 중에도 필요한 서류 등을 보내면 보지도 않고 회신되는 경우도 많고 전화도 어렵다. 이런 경우엔 딱히 답이 없다. 학부모님들께서도 힘드시기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서명을 받아야 하는 서류는 문자를 남기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오는 편이고 나머지 생활에서는 학생을 더 신경 써줘야 한다. 학교에서라도 신경을 써줘야 집에서 부모님들이 조금은 편하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매년 느끼는 거지만 학교 생활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교사의 입장에선 업무는 계속 늘어나고 학생들은 점점 중증화 되고 그 가운데 학부모님들은 교사를 믿지 않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회의감을 느끼는 교사도 늘어나고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들의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누구의 잘못일까를 생각해 보면 답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점점 심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계속 서로 불신하며 안 좋게 지낼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러다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학생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서로 이야기하며 풀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상담이 중요하고 상담에서도 서로 경청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경청을 하다 보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면 신뢰가 조금은 형성될 수도 있다. 교사나 학부모 모두에게 힘든 일이지만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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