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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Aug 29. 2018

퇴사자와 해고자를 대하는 회사의 자세

회사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인지라, 처음 입사했을 때 인상이 어떤가만큼이나 헤어질 때 떠나는 방법과 뒷모습도 굉장히 중요하다. 몇 년을 알고 함께 일했는데 끝이 엉망이면 그 몇 년간 쌓아온 좋은 인상과 기억도 정말 한 순간에 망쳐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 회사는 퇴사자에 대해 쉬쉬하고, 독일 회사는 퇴사자의 이별을 돕는다

그동안 거쳐갔던 회사들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이별엔 아쉬움이 남았다. 거창했던 입사와 너무 상반되는 분위기 탓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한국 회사는 입사 환영식은 화려하게 2차, 3차까지 회식을 해가며 치러주는 반면 퇴사는 아주 조심스럽다. '누가 퇴사한다더라~'라는 소문이 다른 직원들의 사기를 꺾을 수도 있고 퇴사 이유가 루머로 떠돌며 사내에 좋지 않은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는 대체적으로 떠나는 이의 이야기를 감춘다. 회사 차원에서 퇴사 예정자를 공공연하게 알리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퇴사자 본인이 스스로 주변인들에게 개별적으로 이메일이나 쪽지를 보내 퇴사를 알리고 인사를 나눈다. 뮌헨 법인에서 함께 근무하던 독일인 직원들은 이런 한국 기업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같은 법인 사무실의 직원들끼리만이라도 케이크를 먹으면서 작별 파티를 해 주기로 약속했었다. 


독일 회사에서는 직원의 퇴사가 결정되면 1개월 전쯤 퇴사자 명단을 인사팀이나 같은 팀의 직원 중 하나가 보통 해당 팀과 관련 부서에 공지한다. 메일에는 직원이 퇴사하고 어디로 가는지, 그 직원이 근무하는 동안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냈는지 명시하고 이에 감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이 그 직원에게 작별 카드나 선물을 준비해 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공식적인 메일을 보내지는 않더라도 퇴사자와 남은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조촐한 송별회를 연다. 이 작은 파티에서는 해당 직원의 상사가 그동안 퇴사자가 회사를 위해 기여한 일들을 고마워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함께 케이크와 샴페인을 즐기며 서로의 인연을 기념한다. 마치 생일처럼 누군가의 마지막 자리를 함께 축하해주는 것이 언제나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국 회사는 해고자에 대해 광고하고, 독일 회사는 쉬쉬한다. 

자발적인 퇴사가 아니라 해고를 당하는 경우에도 각 기업의 대응 방식은 많이 다르다. 내가 근무했던 한국 회사들은 잘못을 저지른 직원을 전사적으로 알리곤 했다. 이메일이나 사내 게시판에 공고를 올리는 방식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이런 이유로 징계를 받았으니 남은 직원들도 앞으로 이를 교훈으로 삼고 조심해라' 하는 깊은 뜻이었다. 한 회사에서는 해고자가 있을 경우 이름 자체는 익명 처리를 하지만 해고 사유만은 꽤나 자세히 공유하며 경각심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익명 처리를 하더라도 어떤 부서의 오XX과장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형식적인 것일 뿐, 실은 대놓고 해고 광고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뮌헨 법인에서는 사실 더 놀라운 사례가 있었다. 당시 나를 포함한 현지 직원들 모두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독일에 있는 주재원 한 명이 해고를 당했을 때였다. 저지른 실수가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인 데다 주재원의 단독 실수라기보다 본사 인사팀의 책임도 함께 엮여 있는 사안이라 징계 수위가 해고까지 가리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무척 어수선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회사는 전사 게시판 공지와 이메일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해당 직원 이름과 해고 사유를 모두 기재하여 공유했다. 친절하게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 3개 국어로 번역하여 해외 법인 직원들에게도 뿌렸다. 해고된 직원은 사유가 부당하다며 회사에 소송을 걸었고, 이에 회사는 다시 한번 이 직원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제는 회사를 고소까지 했으므로 용서할 수 없다며 앞으로 이 소송이 남은 직원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도록 회사가 승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2차 공지까지 했다. 독일 직원들은 이는 유럽에선 완전히 불법이라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해고자에 대해 별도 공지를 하지 않는다. 입사 시와 재직 중에 여러 가지 사내 교육을 통해 어떤 행동들이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주의를 줄 뿐이다. 업무 성과가 부실하여 해고되는 경우는 그저 퇴사자와 똑같이 안내한다. 공금 횡령을 엄청나게 하는 등 미디어에 보도될만한 큰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대부분 직원들은 누가 무엇 때문에 해고되었는지 모르고 넘어간다. 해고 자체가 징계이기 때문에 행여나 제3자에게 알려짐으로써 가중 징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함도 있고, 당사자 동의 없이 알리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상사는 떠나려는 직원의 발목을 붙잡거나 미안함 또는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사직서를 내면 상사의 처음 반응은 보통 이렇다. 

"아니 여태 잘해왔는데 갑자기 왜!"

"회사가 하필 가장 바쁠 때 네가 나가면 어떡하니.."

"어떤 게 불만이야? 이번만 잘 참고 넘기면 내년에 연봉 올려 줄게"

"1년만 더하면 승진할 텐데 직급이라도 올리고 나가야지"

"내가 널 여태까지 어떻게 키웠는데.."

"다른데 가봤자 다 비슷해. 회사는 다니던 데가 원래 제일 좋은 거야. 다시 생각해봐..." 


정 많고 좋은 상사들은 직원을 떠나보내기 싫어 발목을 붙잡고, 악덕한 상사는 그 업무들을 본인이 떠맡게 될까 봐 또 새로운 직원을 뽑아서 가르칠 생각을 하니 까마득해서 발목을 붙잡는다. 그만둔다는 직원이 일을 아주 못하지 않는 이상은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며 만류한다. 더 이상 붙잡아도 안 된다는 판단이 들 때 좋은 상사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인수인계를 잘 부탁한다고 토닥 거려 줄테고, 그렇지 않은 상사는 새로 직원을 뽑고 인수인계가 완벽히 될 때까지는 못 보낸다며 으름장을 놓을 테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선 퇴사하는 직원에게 추천서를 써주는 문화도 거의 없는 모양이다. 떠나는 직원까지 챙길 시간도 없고, 본인 더 잘 살자고 회사와 동료를 떠나는 놈이 뭐가 예쁘다고 추천서를 써주나 하는 상사의 마음. 어쩐지 퇴사자는 그만둔다는 말을 꺼내기도 무척 어렵지만, 사무실을 떠나는 날까지 눈치가 보인다. 


독일 상사는 떠나려는 직원의 더 큰 성장을 축복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독일에서 그만둔다고 하면 상사는 "아, 그렇게 결정했구나. 혹시 괜찮다면 왜 떠나려고 하는지 알려줄래?"라고 묻는다. 이는 원하지 않으면 그만두는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가장 흔한 이유는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고 독일 직원들은 딱히 이를 숨기려고 하지는 않는다. 더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하면 상사는 이내 수긍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본인도 직장인으로서 좋은 기회가 있으면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인수인계를 빌미로 직원을 붙잡을 수도 없다. 대게 회사는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의 퇴사 통보 기간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어 그 기간 동안 인수인계를 마무리 지으면 된다. 물론 떠나는 직원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개인마다 다를 테지만 내 직간접적 경험에 따르면 퇴사자를 대하는 상사의 태도는 확실히 독일이 훨씬 따뜻했다. 적어도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나간다는 죄책감은 느끼지 않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와 상사들도 독일처럼 쿨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직원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언제 어디서 또 만날 지 모르는 인연, 마치 연인을 보내 주듯이 배려있게 보내 준다면 또 만났을 때 훨씬 더 반갑고 좋지 않을까. '잘 보내 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간의 나쁜 기억들이 어느 정도는 잊히지 않나도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도 퇴사 시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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