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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일기장 Oct 06. 2018

[단편 소설] 송어 축제

위선과 속임이 가득한 버거운 삶 속에서 난 한마리 송어처럼 버티고 있었다

 

 

 날렵한 산세를 포근히 감싼 겨울 빛. 하얀 눈을 머리에 잔뜩 이고 있는 길쭉한 전나무들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평화가 저절로 찾아올만한 풍경이었다.

 원래는 상원사에 가서 예불을 드리는 게 목적이었다. 조카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업보 때문인지 등창으로 고생을 하던 세조(世祖)가 목욕하러 왔다가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그 곳. 

 멀리 보이는 전나무 숲과는 사뭇 다르게, 쌓인 눈이 듬성듬성 녹아 지저분해보이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둘러 돌다리를 건넜다. 

 아이는 먹이를 앞에 둔 강아지마냥 발목까지 들어차는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어, 저기 저기.”

 손으로 가리킨 곳은 작은 바위들이 꽉 들어찬 널따란 계곡이었다. 강추위에 얼음이 꽁꽁 언 덕분에 하얀 눈밭으로 변해있었다. 

 “그래, 가자.”

 엄마가 더 신이 나서 가파른 둔덕을 한걸음에 내려갔다. 아이가 뒤따랐다. 앞서던 엄마가 무엇인가 발견한 듯 갑자기 멈춰서며 소리 질렀다.

 “우와, 여기 물 흐른다. 여기 와 봐.”

 계곡이 계단처럼 층을 진 그곳엔, 침대처럼 계곡을 덮었던 얼음판과 그 위를 덮은 눈밭이 끝나고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차디찬 물이 한낮의 햇빛 속에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엄마가 부르니, 아이가 신이 나서 뛰어갔다.

 “조심해! 얼음 깨진다.”

 불현 듯 불길한 생각이 든 아빠는 ‘나까지 저기 가면 진짜 얼음이 깨질지 몰라’라고 생각하며 멀리서 소리쳤다.

 “어, 엄마.”

 아빠의 불길한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의 두 다리가 얼음판 밑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악, 안돼.”

 아이 바로 옆에 있던 엄마의 두 다리도 쑥 빠졌다.

 그제서야 아빠는 자신이 빠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급하게 뛰어갔다.

 다행히 물은 깊지 않았다. 상반신을 얼음판에 기댄 아이를 먼저 끄집어내고, 넘어져 있던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아이 먼저 얼음판 위로 올린 뒤, 엄마에게 다가가 일어서는 걸 도왔다.

 아빠는 생각했다.

 ‘오늘, 참 운도 되게 없네. 요새 내게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어.’

 우울함이 다시 찾아왔다. 그의 머릿속엔 얼마 전 직속상관인 김 상무에게 들었던 얘기가 다시 떠올랐다. 

 “지난번 투자 건이 문제가 됐네. 아마도 석 달 정직이나 일 년 감봉 처분 받을 것 같아 미리 알려주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근무시간이 두 시간이나 더 남아있었음에도 회사를 뛰쳐나와 집으로 왔다. 

 ‘승진에서 또 밀리겠구나.’

 문자로 소식을 미리 들은 아내는 현관에서 그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아내 품에 안겨 오 분 넘게 울고 나서야 그는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 가슴 속에 억울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쉽지 않은 치유의 첫발을 내딛은 게 상원사 행(行)이었다. 마음의 평화를 찾으러 온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봉변을 당한 셈이었다.

 엄마와 아이의 신발이 흠뻑 젖어 있었다. 급하게 차로 돌아와선 신발을 벗기고 히터를 틀었다. 엄마에겐 갈아 신을 구두가 차 안에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문제였다.

 “어쩌지 여보?”

 “다시 상원사로 갈 순 없으니, 일단 아이 신발을 사러 갑시다.”

 아빠가 빠르게 결론을 냈다. 서울 집으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상원사 입구까지 와서 경내 구경을 못한다는 건 여기까지 온 시간과 정성이 아까운 일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도 어딘가는 들러야했다. 아이 신발은 필요했다.

 절 진입로에 있는 입장료 징수소로 차를 몰았다.

 “아이 신발이 젖어서요. 가까운데 신발 가게가 있나요?”

 “이 길로 쭉 가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10분 정도 들어가면 진부 읍내 나와요. 거기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는 차를 가쁘게 몰았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마음이 급했다.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큰 마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뛰어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당최 신발 같은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옆 계산대 직원과 한창 농담을 주고받던 한 계산원에게 물었다.

 “요 문 나가자마자 왼쪽 골목으로 나가면 신발가게가 서 너 군데 있어요.”

 억지로 서울말을 쓰는 듯한, 강원도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급한 아빠는 한달음에 뛰었다. 골목을 두 번 돌자 길 건너에 신발가게가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한 바퀴 둘러봤다. 딱 봐도 ‘메이커’는 없었다. 추운 데서 뛰어다녀야한다는 생각에 따듯한 털 부츠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인상 좋아보이는 주인 아줌마가 세 켤레를 골라 나왔다.

 “요거, 요거, 요거 세 종류 있어요.”

  3만 5000원, 2만원, 1만 5000원. 딱 봐도 3만 5000원짜리는 좋아보였다. 

 “한 짝씩 갖고 가서 아이에게 신겨 봐도 될까요.”

 행여나 두 짝 다 들고 가면, 가게 주인이 도둑으로 의심할까봐 아빠는 한 짝씩, 모두 세 짝의 신발을 들고 차로 왔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는 세 짝을 하나하나 신어봤다.

 “아빠, 이게 제일 편해. 따뜻하고.”

 아빠는 아이가 참 기가 막히게 좋은 걸 알아맞힌다고 생각했다. 가게로 돌아와 3만 5000원을 지갑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현금이 몇 장 안 남게 됐다.

 “혹시, 요 앞에 송어축제 오셨어요?”

 “네? 송어축제요? 여기서 그런 거 하나요?”

 “저기 보이는 아파트 넘어 강가에서 송어 축제하는데… 그거 때문에 신발 사러 오신 거 아니에요?”

 “어 몰랐는데요. 저 아파트 앞에요?”

 “네, 바로 앞이에요.”

 가게 통유리창 너머 멀리에 한 동짜리 아파트가 보였다. 시골 아파트 치곤 꽤나 높아보였다.

 계산을 마치고 나머지 한 짝의 신발을 들고 차로 돌아왔다. 송어축제 소식을 들은 엄마와 아이는 상원사로 가는 대신 송어 축제장을 가자고 했다.

 ‘추울 텐데.’

 아빠의 머릿속엔, 자기 신발은 그냥 운동화고, 엄마가 갈아 신은 신발은 구두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발이 무척 시려 울 텐데.’

 하지만 할 수 없었다. 기대에 가득 찬 초롱초롱한 아이의 두 눈을 보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얼음물에 빠지게 한, 물론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과가 나빴기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엄마의 미안함도 씻을 겸.

 “가자. 그래, 가자.”


 축제장 멀리서부터 음악소리가 들렸다. 

 ‘송어를 정신없게 해서 낚시에 잘 걸리게 하려는 건가.’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정신없는 건 사람들이었다. 축구장 열 개 보다도 넓은 송어잡이 빙판 옆에 눈썰매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음악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삼사 분 가량 걸어가니 송어축제장 입구였다. 오후 두시. 문 닫기 세 시간 전이어서 그런지 입구는 한적했다. 축제장 입구에서 생각보다 비싼 입장 티켓 세 장과 함께 마치 장난감 같은 낚시 도구 두 셋트를 샀다. 

 ‘이걸로 잡힐까.’

 이미 늦은 의심이었다. 아이는 일 미터 간격으로, 국그릇 크기만한 구멍을 뚫은 얼음판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수백 아니 수천 개의 구멍 위에, 수백 아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조잡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작은 구멍을 바라보며 위아래로 낚싯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사람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 속, 공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기계공이 떠올랐다.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모른 채 같은 일을 쉼없이 반복하며 ‘사람이지만, 기계처럼 변한’ 기계공들 말이다. 아빠는 회사에 다시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참, 한국 사람들 부지런해. 뭐가 있다고 노는 것도 이처럼 전투적일까.”

 엄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한마디 했다.

 ‘사람이 몰려 있는 곳이 잘 잡히는 곳이겠지?’

 나름대로 추론한 아빠는 얼음판과 둔덕이 맞닿아 있는 쪽으로 갔다. 구멍 하나마다 사람들이 한명씩 빽빽이 서 있었다. 간신히 빈 구멍 두개를 찾았다. 하나는 아빠 것, 그리고 하나는 아이 것. 구멍 위쪽이 살짝 얼어있었지만 낚싯대 손잡이 부분으로 툭툭 쳐서 깼다.

 송어 잡이는, 바보같은 오랜 기다림이었다. 낚싯대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챔질을 오륙초 단위로 반복했다. 끝이 없는 도돌이표였다. 팔을 들었다 내렸다할수록, 의식은 점점 안개처럼 흐릿해졌다. 무의식 속에 같은 움직임을 계속 했다. 아빠는 마음이 편해졌다. 일주일째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던 ‘정직, 감봉’이란 단어가 챔질과 함께 희미해져 갔다.

 “아빠, 아빠도 안 잡혀?”

 아무 생각이 없는 아빠에게 의식을 돌아오게 한 건, 아이의 바닥난 인내심이었다. 아이는 참지 못하고 십분 간격으로 낚싯대를 들고 이 구멍 저 구멍으로 옮겨 다녔다. 

 도대체 이 두꺼운 얼음판 밑에 송어가 있기나 할까 하는 의심이 드는 찰나.

 “잡았다, 앗싸. 오, 이것 봐.”

 십 미터 떨어진 곳 얼음판 위에서 어른 팔뚝만한 송어가 퍼덕거리고 있었다. 다시 그 작은 얼음구멍으로 돌아가려는 듯, 송어의 생애 마지막 몸부림은 처절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송어를 낚아 챈 ‘운 좋은’ 관광객은 스마트폰으로 마치 송어가 사랑스런 강아지라도 되는 냥 애지중지 안으며 사진을 찍은 후 비닐 주머니에 송어를 넣었다. 그리고 다시 낚싯대를 들고 구멍으로 향했다.

 호기심이 생긴 아빠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참으로 ‘운 나쁜’ 송어였다. 낚시 바늘이 꽂힌 곳은 입이 아닌 꼬리쪽 지느러미였던 것 같다. 입쪽은 아주 깔끔한 대신 꼬리 지느러미가 반이 넘게 찢겨 있었다.

 추운 강 물 속에서 몸을 녹이려 숨가쁘게 움직이다가, 아뿔사, 허리 한번 잘못 틀었더니 위아래로 움직이던 낚시 바늘에 꼬리가 그만 탁하고 꽂힌 게 아닐까.

 ‘네 운명이 참 얄궂네. 쎄라비(C’est la vie – 그게 인생이다라는 프랑스말).’

 아빠의 머릿속엔 송어의 파닥거림과 쎄라비라는 단어가 반복해 떠올랐다. 다시 손으로는 챔질을 시작했다. 

 ‘무의미하다. 무의미해. 제발 운 나쁜 놈, 한 놈만 걸려라.’

 십 여분이 채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야, 나도 잡았다!”

 인생 참 요상하다. 주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똑같이 수 만번의 챔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아까 그 송어를 낚은 관광객 옆자리에 있던 친구가 가져갔다.

 부러운 듯한 수백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슬금슬금 낚싯줄을 감아올린 후 ‘운 좋은’ 그 사람들이 있는 곳 옆 구멍들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빠는 그래도 지금 있는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어차피 운이 나쁜 요즘, 나보다 더 운 나쁜 송어가 지나가다 걸린다면 그건 ‘인생 반전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는, 지겨워하긴 해도, 지치지는 않았다. 춥냐고 물어보는 아빠 엄마의 물음에도 괜찮다는 대답만 했다. 얼굴이 창백해져 진짜 추워보이는 데도.

 두 시간이 지났다. 

 ‘공부를 저 집념으로 했으면.’

 아빠는 또 쓸데없이 아이와 공부를 연결시켜 생각했다. 십분 책상 앞에 앉아있다 늘 뛰쳐나오는 아이의 평소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신나게 놀러 온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보, 안되겠어. 이제, 가자. 너무 추워.”

 엄마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얘기했다. 

 “안 돼, 엄마. 나 한 마리는 잡아야 해. 안 돼. 절대 안 돼.”

 아이의 집념은 대단했다. 아빠는 그냥 가기가 미안했다. 

 “저기 실내 낚시터 있는데 한 번 더 가 봐요.”

 엄마도 아빠처럼 그냥 가기 미안하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실내 낚시터 입구에 들어서자 아까보다는 덜 장난감 같은, 제법 모양을 갖춘 낚싯대가 줄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이거 들고 가셔서, 저기 가서 낚시하시면 돼요.”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그 좋은 인상과 사뭇 다르게 성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안내를 했다.


 아뿔사.

 유치원 아이들이 물놀이할 만한, 비닐로 만든 임시 수조에 송어들이 떼를 지어 몰려 다니고 있었다. 손님을 ‘낚기 위해’ 대충 만든 것 같은 실내 낚시터였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송어 떼는 약속이나 한 듯 요리저리 스무 개의 낚싯바늘을 피해갔다. 열 평 남짓한 수조가 송어 떼에게는 오대천 만큼 넓었나보다. 

 물 반, 고기 반.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수조는 무척 비좁았다. 하지만, 죽기위해 들어온 수조 속에서 송어가 필사의 삶을 연명하려 헤엄치기엔 충분히 널찍했다.

 송어 떼가 우르르 몰려다닐 때면 수면 위에 무지개 같은 파장이 수십 겹씩 넘실 거렸다. 축제라도 즐기듯 송어 떼는 수조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일분동안에도 예닐곱 번씩은 몰려다녔다. 함께 모여 신나는 춤을 추는 듯 했다.

 도대체 이 엉성하게 만든 비닐 수조 낚시터에서, 낚시꾼의 아이큐를 비웃으며 살살 피해 다니는 송어가 잡히긴 할까 하는 의심을 하는 찰나.

 “와, 아빠. 아빠.”

 한 계집아이가 자기 팔 길이만큼 큰 송어가 걸린 낚싯대를 잡고 쩔쩔매고 있었다. 서너 살 되는 동생은 언니의 흥분에 놀랐는지, 아니면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가 불쌍했는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아이 아빠가 잽싸게 낚싯대를 넘겨받았다. 반원을 그린 채 휘어진 낚싯대를 힘껏 들어올리고, 낚싯줄을 손으로 잡아당긴 후, 파닥거리는 송어를 수조 밖으로 내팽개쳤다. 송어는 어리숙한 인간에 잡힌 게 분 했는  지, 시멘트 바닥 위에서 한참동안 온몸 비틀기를 했다. 파닥거림이 심해질수록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끄억끄억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최후의 몸부림을 하고 있는 시멘트 바닥 위 송어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수조 안 송어 떼들은 아까의 그 평화로운 유영을 반복하고 있었다. 묘한 대조였다. 

 송어를 낚아 챈 ‘운 좋은’ 계집아이가 땅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송어 앞으로 다가와, 차마 송어를 들지는 못한 채, 아빠가 든 카메라 앞에서 손가락 브이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다.

 가만 보니 참으로 ‘운 나쁜’ 송어였다. 낚시 바늘이 꽂힌 곳은 입이 아닌 등쪽 지느러미였다. 

 친구들과 신나게 떼 지어 몰려다니다, 낚싯대가 자기 몸 쪽을 스쳐 지나간 것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 바로 저거다.’

 아빠는 깨달았다. 

 ‘인생은 요령이라던데…’

 이후 아빠의 낚싯대는, 미끼로 물고기 입을 낚아채야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망각한 채, 송어의 입이 아닌 꼬리 쪽을 향했다. 아빠는 송어들의 꼬리 지느러미를 향한 필사의 챔질을 수백번 반복했다.

 “어, 아빠, 어!”

 아빠의 낚싯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순간, 낚싯대가 한번 크게 휘청했다. 그러나 아빠가 미쳐 손 쓸 틈도 없이 낚싯대는 다시 일자로 펴졌다. 몸을 세게 비튼 송어가 몸 어딘가에 박혔던 낚싯바늘을 빼내고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아, 진짜 운이 없네.’

 아빠는 생각했다. 요즘 내게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지만 이내 떨쳐냈다. 머리가 점점 아파왔다.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다시 낚시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래 잡자. 잡자.’

 대학입학시험에서 수학문제를 받아든 수험생 마냥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데만 몰입했다. 수조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찰했다. 아까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별별 놈들이 다 눈에 들어왔다. 

 등과 배 쪽 지느러미가 모두 뜯겨나가 낚싯바늘이 꽂힐 만한 곳이 별로 없어 수조 밑바닥에 가만 서 있는 놈. 누군가에게서 필사의 탈출을 했는 지 꼬리 지느러미가 여러 겹으로 갈라진 채 헤엄치는 놈까지. 

  ‘송어의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군.’

 축제를 즐기는 것 같던 송어 떼가 갑자기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빠는 송어 한 마리라도 잡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의 눈빛을 본 후 낚시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집중하자, 집중하자.’

 순간 입에 플라스틱 미끼와 낚싯바늘을 함께 물고 있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힘이 좋아 낚싯줄은 끊어 냈지만 미끼와 낚싯바늘은 미처 끊지 못해 입 주변에 그대로 꽂은 채 여생을 살게 된 녀석이었나 보다.

 ‘미안하다.’

 아빠는 낚싯대를 슬금슬금 내려 낚싯바늘이 녀석의 입에 꽂힌 미끼에 걸리게끔 조정했다. 

 ‘이제 됐다. 됐어.’

 어이차, 아빠가 낚싯대를 휙 들어올리는 순간 낚싯대는 다시 한번 크게 휘청거렸다. 아이는 아빠가 송어를 잡은 줄 알았는 지 소리를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이젠 다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 때. 

 툭. 아빠의 낚싯바늘은 원래 그 송어의 입에 꽂혀있던 미끼와 낚싯바늘을 빼 준 모양이었다. 낚싯대 끝에 미끼와 낚싯바늘이 걸려 있었다. 자유로워진 송어는 친구들 사이로 숨어들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송어 떼가 만드는 무지개 모양 물결이 더 커보였다. 

 ‘참, 운도 무지하게 좋은 놈이군. 죽음의 기로에서 벗어난 녀석은 친구들과 신나게 축제를 즐기겠지.’

 아빠는 갑자기 송어를 놓친 게 다행이라는, 아이에게는 미안하고 스스로에게도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운이 없지만. 송어 한 마리는 살렸네. 계속 걸리지 말고 잘 살아라.’

 그러고도 한 시간이 지났다. 

 엄마가 낚싯대를 넘겨받았고, 잠시 뒤 다시 아이가 낚싯대를 잡았다. 옆 자리 사람들이 두 마리의 ‘운 나쁜’ 송어를 더 잡을 동안, 아빠와 엄마와 아이가 차례차례 시도한 낚시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실망이 가득한 채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면서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애초에 들어올 때 성의 없이 안내했던 그 아저씨가 세 사람을 멈춰 세웠다.

 “잠깐만요. 한 마리도 못 잡았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저씨는 갑자기 뜰채를 들고 수조로 향하더니, 커다란 송어 한 마리를 단 몇 초 만에 뜰채에 잡아들고 왔다.

 “자 사진 찍으세요.”

 아저씨가 뜰채에 있는 파닥거리는 송어를, 아빠가 들고 있는 투명 비닐봉지에 넣으려는 순간, 아이는 뜰채 옆에서 사진찍기 포즈를 취했다. 세상 다 가진 듯한 기쁜 웃음을 지으며.

 “자 둘 다 웃어요. 아빠도 좀 웃어 봐요.”

 엄마가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아이와의 멋진 사진을 위해 손가락 브이를 그린 아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못 잡은 아쉬움을 안고 돌아갈 일은 없겠구나.’

 그러다 갑자기 걱정이 됐다. 생선요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손질을 해본 적 없는 아빠였다. 팔뚝만한 송어를 보니, 더 손질할 자신이 없었다.

 “이거 어디서 요리해주는 데 있나요?”

 엄마가, 아까는 성의 없어 보였지만 이제는 꽤나 성의있게 답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 축제장 입구 건물에서 손질도 다 해주고, 구워도 줍니다. 거기로 가시면 돼요.”

 아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미끌미끌 빙판으로 변한 눈길을 넘어지지도 않으며 한달음에 내달렸다. 아빠는 송어가 담긴 비닐봉투를 든 채, 아이를 놓칠 새라 종종 걸음을 했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알싸한 소주 냄새, 그리고 다소 역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송어를 손질하는 곳이었다.


 십 여분을 넘게 기다려 순서가 왔다. 비늘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른, 수염이 텁수룩한 아저씨가 아빠가 건네준 비닐봉투에서 송어를 꺼냈다. 찰나의 순간 아빠는 얼어붙었다.

 ‘어, 저 놈 입주변이 크게 뜯겨있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애써 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쎄라비, 쎄라비, 쎄라비.’

 번호표를 받아들고, 엄마가 미리 자리를 잡아둔 탁자로 빠르게 걸어왔다. 또다시 십 여분을 넘게 기다려야했다.

 아빠는 더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생각을 멈추려고 하면 할수록 입이 뜯긴 송어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아빠는 아까부터 하지 않으려 했던 생각이 ‘잡힌 송어가 마치 내 신세와 같다’는 생각이란 걸 문득 깨달았다.

 겨울비가 마치 여름장마처럼 유리창을 세차게 때리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어김없이 가족이 모두 잠든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 여느 때처럼 엘리베이터 안에서 늘 보던 무표정한 윗집 남자를 만나 목례를 했다. 

 비는 거셌다. 빗물이 들치지 않게 이리저리 우산을 돌려막는 한편으로, 미처 배수로로 빠져나가지 못해 인도위에 생긴 작은 물 웅덩이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간신히 물 웅덩이 몇 개를 피해 한숨을 돌리는데, 신발 안이 무척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5년전 생일 때 선물받은 구두가 기어이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양말은 흠뻑 젖었고, 집으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아까웠고, 저 멀리 버스가 오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새벽 버스는 한가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 뒷자리에 앉아 구두를 벗었다. 뒷굽이 반쯤 떨어져 나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뒷굽 안쪽은 고무가 꽉 찬 게 아니라 빌딩안 기둥처럼 몇 개의 지지대가 있고 나머지는 비어있는 형태였다. 

 ‘그래서 뒷굽이 떨어져 나간 것인가. 튼튼한 줄 알았는데.’

 불현듯 마음 속 한쪽에서 스스로도 이해 못할 배신감이 느껴졌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배신감.

 회사 1층 편의점에서 새 양말을 사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김 상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발이 축축해서 영 찜찜한 느낌을 안고 김 상무 방에 들어갔다. 김 상무는 두 장짜리 서류를 던지듯 건넸다. 종이 속에 빽빽한 숫자와 그래프를 찬찬히 내려읽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망했다’란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다 운이 나쁘면 그런 일도 생기는 거야.”

 사실 문제가 된 투자 건은 육 개월 전 김 상무 지시로 진행된 거였다. 

 김 상무 아래 세 개의 팀 가운데 제1팀장이었던 자신은 “문제 소지가 있다”며 투자 집행 전에 두 번 정도 반대했었다. 명색이 팀장이었지만 팀원들은 자신을 따라오지 않았다. 

 팀원 모두가 회사에서 잘 나가는 김 상무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예스맨들이었다. 벌써 몇 년째 우르르 몰려다니는 송어 떼처럼 김 상무의 입만 쳐다봤다. 김 상무를 선두로 한 무지개 모양 물결은 점점 커지고 세졌다. 그 물결 속에서 모두가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듯 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만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투자 건에 대해 두 번째 반대를 한 회의가 끝난 직후 김 상무가 방으로 호출했었다.

 “자네, 회의 때마다 번번이 날 망신 줄 생각인가. 너무 심한 거 아냐. 회사 오래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나 보지?”

 김 상무가 눈을 희번덕거리자 ‘더는 반대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미한 공포가 느껴졌다. 

 그런데 며칠 후 직원이 올린 결재서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투자건의 최종 기안자가 김 상무가 아닌 자신으로 돼 있었다. 부하 직원에게 물어보니 당연한 듯 ‘김 상무 지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잘못됐다 생각했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더 항의했다가는 완전히 ‘아웃’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나 혼자 또 반대해봤자 어차피 다른 팀장을 동원해서도 관철시킬 사람이니까. 그리고 문제가 안 생길 확률이 훨씬 높지 않나. 괜찮을거야. 이런 거 한 두 번 해보나.’

 아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 녀석이 클 때까지는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다. ‘잘 나가는’ 김 상무에게 찍히면 회사를 계속 다니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비겁하다 생각했지만 ‘쎄라비’였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아야할 일이 일어났다. 일 년에도 수 백 건이 올라가는 투자 건 가운데 문제가 터지는 건은 서 너 개가 되지 않는다. 하필 자신이 최종 기안자인 이번 건이 그 희박한 확률 속에 낙점된 것이다. 

  입에 낚싯바늘이 꽂힌 채 하루하루 아등바등 버티며 살아왔지만, 결국은 수많은 송어들 가운데 혼자만 뜰채에 잡힌 바로 그 송어처럼.

 건물 안에 가득한 소주 냄새와 기름 냄새가 더 역하게 느껴졌다. 

 ‘빨리 나가고 싶다.’

 냄새 때문인지, 답답한 마음 때문인지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그 때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칠백이십구 번 손님. 칠백이십구 번 손님.”


 아저씨가 건네준 팔뚝만한 크기의 쿠킹 호일을 받아들었다. 분명히 저 안에 아까 그 송어가 들어있으리라. 

 아빠는 호일을 열고 그 송어가 맞는 지 확인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굴뚝같이 일었다. 하지만 실제 호일을 열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애써 생각을 피했다. 

 꺄르륵 꺄르륵 신나하는 아이와 함께 호일에 싼 송어를 들고 구이터로 갔다. 군고구마 장수가 리어카에 싣고 다니는, 쇠 드럼통으로 만든 군고구마 구이통에서 착안해 만든 것 같은 송어 구이통이 있었다. 

 세로로 삼미터 가량 이어진 철판 구이통에는 수십 개의 원형뚜껑이, ‘집합 오분전’ 군인마냥 나름의 번호를 갖고 차례차례 도열해 있었다. 뚜껑을 열면 오육십 센티미터 길이의 길쭉한 서랍같은 철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어를 담은 쿠킹 호일이 들어갈 자리였다. 

 구이터 아저씨는 분주히 구멍을 열어 익은 송어를 꺼내고, 안 익은 송어를 집어넣었다. 구멍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손길이 쉴 틈이 없었다. 호일에 싼 송어를 건네자 아저씨는 익숙한 솜씨로 호일을 철판 안에 정렬시켰다. 

 “이십오 분 기다렸다 오세요.”

 자리로 돌아온 아이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몇분 지났는 지 물어보기를 거의 일분 간격으로 했다. 아이의 조급함에 아빠의 참을성도 사라질 즈음, 어느덧 이십오 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자, 가지러 가자.”

 구이통에 분필로 ‘117’이라고 써 있는 구멍에서 쿠킹 호일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고소한 냄새가 새어나왔다. 구이통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쿠킹 호일을 신문지 위에 올리고, 신문지 양쪽 끝을 들어 올려 아빠에게 건넸다. 

 “뜨거우니까 신문지 끝만 잡으시고, 호일 열 때는 꼭 나무젓가락으로 여세요.”

 아빠는 들고 오는 내내, 쿠킹 호일을 열 때 절대 쳐다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빠에게 잡혔다가 운 좋게 도망갔지만, 마지막 축제를 즐기고 결국은 운 나쁘게 다시 뜰채에 잡힌 그 놈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놈을 보면 마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문지를 내려놓고, 젓가락으로 쿠킹 호일을 신문지 한 가운데로 옮겼다. 

 “당신이 좀 열어봐요. 나 이런 거 무서워.”

 엄마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빠는 몇초 동안 망설였다. 괜히 젓가락이 깨끗한 지 살피기도 하고, 쿠킹 호일 끝을 만져 뜨거운 지 안 뜨거운 지 살피기도 했다. 

 ‘어차피, 마주치게 될 거. 그냥 내가 열자.’

 입이 바짝 마를 정도로 긴장이 됐다. 젓가락으로 쿠킹 호일을, 딱봐도 두터워 보이는, 몸통 쪽부터 열었다. 그리고 얇아 보이는 꼬리 쪽을 열었다. 이제 마지막. 머리 쪽을 열 차례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열까말까 망설임이 길어졌다. 그 놈이라면 숨이 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났다.

 ‘에라 모르겠다.’

 머리 쪽 쿠킹 호일을 열었다. 찰나의 순간, 아빠는 ‘흐흐흐’ 실소(失笑)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송어를 손질하는 아저씨가 내장을 다 바르고, 머리마저 아예 떼 낸 채 호일을 싼 것이었다. 애초부터 쿠킹 호일 속에 송어 머리는 없었다. ‘아까 그 놈’이 잡힌 것인지는 이제 미궁에 빠졌다. 부처님만이 아시리라.

 급기야 아빠는 아까 손질하는 곳에서 송어를 호일에 싸서 넘겨줄 때도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송어 입 주변은 멀쩡했어. 그냥 잘못 본 거야. 그 놈은 지금 수조 안에서 잘 헤엄치고 있을 거야.’

 입이 뚫린 송어를 보면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영원히 떨쳐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그 놈이 아니라 다른 놈이야.’

 잡생각을 하는 동안 아이가 호일에 손을 댔던 모양이다.

 “앗 뜨거, 엄마, 엄마!”

 엄마가 재빨리 휴지에 물을 적셔 아이 손가락을 둘러쌌다. 다행히 화상을 입진 않았다. 아빠는 현실로 돌아왔다.

 “엄마, 이제 괜찮아. 나 이거 먹을래.”

 아빠는 송어를 반으로 가르기 위해 마치 종이 옷을 입은 듯한 두꺼운 송어 껍질을 헤쳤다. 참빛처럼 가지런하면서도 빽빽한 가시가 드러났다. 생각보다는 쉽게 발라졌다. 연어 훈제구이처럼 주황과 분홍을 섞은 듯한 빛깔의 송어 속살이 드러났다. 아이는 처음 먹는 송어 맛에 감탄을 했다. 

 “아빠 이거 너무 맛있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 최고야, 최고!”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보니, 아빠는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역한 소주 냄새와 기름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꼬리지느러미 쪽, 지방과 살이 섞여 있어 잘 뜯어지지도 않는 분홍빛 속살까지 젓가락질을 했다. 이내 껍질과 가시만 남았다. 엄마는 젓가락을 들지도 않은 채 잘 먹는 아이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기만 했다.

 “맛있어? 오늘 우연히 여기 왔는데, 정말 잘 왔네. 재미있었지?”

  엄마가 묻자 아이는 신명난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송어 미식이 끝났을 때는 발갛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주차장까지 수백 미터를 걸어야했다. 오대천변을 온통 뒤덮은 눈에, 노을빛이 반사돼 세상이 주황색으로 변해 있었다. 무엇이든 자신의 색깔로 덮어버리는 노을 빛. 

 아빠는 젊었을 적에 그 노을빛을 즐기려 일부러 차를 끌고 한 시간 넘게 달려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를 찾곤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두물머리의 평온한 풍경을 뒤덮은 주황색은 왠지 모를 포근함을 안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노을빛을 보면 눈이 아팠다. 세상을 온통 자기 것으로 가지려는 욕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생기를 느끼게 하는 여름날의 볏 잎도, 지고지순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겨울날의 순백한 눈밭도, 노을빛에는 속수무책으로 자기 스스로의 색을 넘겨주고 말았다. 

 ‘세상엔 노을빛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

 아빠의 생각이 다시 어두워지려는 순간, 어느새 주차장 입구가 나타났다. 아빠는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자동차 문을 열었다. 운전대를 만지니 고드름에서 느끼는 것 같은 극한의 냉기가 전해졌다. 한참을 히터를 돌리고 나서야 겨우 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여보, 우리 상원사 갈까?”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내내 한마디도 말하지 않던 엄마가 불쑥 말을 꺼냈다. 상원사 아래 주차장 입구에서 빙판이 깨져 신발이 젖고, 아이 신발 사러 나갔다가 송어 축제까지 온 오늘의 여정을 다시 원래의 목적지인 상원사로 마무리 짓고 싶었나보다.

 “늦었는데…괜찮겠어?”

 “가고 싶어. 오늘 못 돌아가면 하룻밤 근처에서 잤다가 내일 아침 일찍 집에 가지 뭐. 자기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어?”

 “그래, 가자.”

  아까 왔던 길을 되짚어 십여 분 남짓 달리니 다시 상원사 아래 주차장이 나왔다. 오늘의 여정이 출발한 그 곳.

 산 속에는 노을이 짙게 깔렸다. 노을은 눈 덮인 계곡의 바위뿐만 아니라, 푸르다 못해 검었던 전나무 숲마저도 더 짙은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조금 걷다보니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소나무 몇 그루가 보였다. 하늘로 놓인 사다리마냥 쭉쭉 뻗은 전나무와 달리, 굵은 몸통이 옆으로 휘었다가 다시 위로 향하다 끝부분에 가서는 삐딱하니 기울어져 하늘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어디서 본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군.’ 

 취미로 수묵화를 그리던 아버지가 이십여 년 전 그린 그림 속 소나무와 꼭 닮아 있었다. 그림 속 소나무 옆에 있던 아버지의 휘호가 떠올랐다.

 ‘시비열래신권(是非閱來身倦, 갖은 일을 겪고 몸은 지쳤고) 영욕견후심공(榮辱遣後心空, 영욕을 버린 뒤라 마음은 비었다)’

 “이걸 왜 소나무 그림에 쓰셨어요?”

 “휘어진 둥치 속에 얼마나 많은 곡절이 있을까 싶어서.”

 그림 속 소나무는 마치 아버지의 삶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한창나이에 육이오를 겪어 키가 무척 작았던 아버지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듯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됐지만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할 말은 하는’ 공무원으로 분류된 게 화근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지방근무만 전전했다. 외로움을 달래려 하루 소주 두병으로 저녁을 대신한 삶을 몇 년 지속하다 결국 간경화가 생겨 십년이 넘는 투병을 했다. 그래도 투병중에 귀의한 종교의 힘으로 심공(心空)할 수 있었다. 당시 기준에도 비교적 젊은, 백발이 채 내리기도 전인 쉰다섯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소나무 그림은 아버지가 남아있는 힘을 모두 쏟아 부어서 그린 마지막 작품이었다.

 지금은 어머니 댁에 걸려있는 소나무 그림을 볼 때마다 추억 속 아버지가 응원을 보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나무에 얽힌 추억을 되 뇌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보니 어느덧 산중턱에 있는 상원사에 다다랐다. 얼음장같은 찬바람이 불어 머릿속을 쨍하고 때렸다. 함께 들려오는 풍경소리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던 엄마가 아이 대신 아빠의 손을 꽉 잡았다.  

 “무슨 생각해?”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났어.”

 “다음주에 아버님 산소갈까?”

 “그래야겠어.”

 “여보,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빙판 깨질 땐 아찔했는데, 다 송어축제서 즐기라고 그러신 듯 싶어. 결국에 여기 온 게 다 부처님 뜻 아닐까.”

 노을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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