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날이다. 오늘은 금요일, 앞으로 사흘 동안 죽도록 일해야 한다. 1교시를 마치자마자 교무실로 달려갔다. 담임은 급식도 못 먹고 가는 내가 안타까운지 조퇴허가증과 함께 빵을 주었다. 늘 그랬듯 당부도 많다.
“다른 과목은 민지가 정리해 주지? 내 수업은 글쓰기 마지막 시간이야. 새날이 너도 완성해서 메일로 제출해. 수행평가니까 시간 엄수, 일요일 자정까지.”
내 정기적인 조퇴를 두고 담임은 국어 수업 놓치는 걸 특히 속상해했다. 되는대로 갈겼던 자기소개와 적당히 행갈이 한 시를 두고 담임은 나를 볼 때마다 칭찬했다. 교실과 교무실에서 대놓고 핀잔하던 1학년 때 담임과는 달랐다. 요주의 학생을 관리하는 차원이었겠지만 기분이 우쭐거리기도 했다. 담임은 수업 시간에 다양한 글쓰기를 시켰다. 미래를 살아가는 힘이라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문법이나 비문학 읽기보다 재미있었다. 요즘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경험 이야기 쓰기를 하고 있는데 한 걸음 나아가 소설을 써도 된다고 했다.
담임은 지난 3월에 우리 집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내가 금요일마다 결석하니 책임감이 발동하였을 것이다. 섬에서 섬으로 왔네. 본섬에서 배를 타고 10분 만에 도착한 우리 동네 선착장에서 담임이 말했다. 그 순간 카페 아일랜드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내 원룸으로 가는 길에 있는 그곳은 뜻밖의 공간을 품고 있다. 숍인숍이라 했다. 양쪽 벽 선반과 중앙 테이블에 책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200권 남짓밖에 안 되었다. 서점이라 하기엔 규모가 민망했을까, 책 대부분이 앞표지가 보이도록 눕거나 서 있었다. 천천히 쳐다보고 있자니 책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특히 다섯 번째 책은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었다. 묘하게 어울리는 <살인자의 집>이라는 제목과 보라색 표지가 내 마음에 펀치를 날렸다. 몇 장 넘겨보는데 소씨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가 사람을 죽여서가 아니라 내 생애 최초로 본 시체여서 그랬을 것이다.
숍인숍처럼요? 나는 담임에게 유머러스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보일락말락 웃음만 띠고 말았다. 우리 집을 포함해 53가구가 사는 아미도는 십여 년 전부터 1박 3식 여행지로 입소문이 났다. 말 그대로 하룻밤 숙박에 세 끼 밥상을 차려주는 건데 마을 살리기 차원에서 시작한 사업이 점점 번창했다. 돈맛을 본 주민들이 집을 개조하거나 그럴싸한 펜션을 지어댔는데 그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들이 다시 섬을 찾아들기까지 2년 반이 걸렸다. 고기 잡고 밭 갈며 근근이 지내는 동안 남자들은 술에 취하고 여자들은 살이 쪘다. 집에서는 부부가 싸우고 골목에서는 이웃끼리 시비가 붙었다. 노인들은 저러다가 죽어야 정신 차리겠다며 혀를 찼다. 나는 죽으면 끝인데 어떻게 정신을 차리냐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착하고 순종적인 이미지대로 가만히 있었다.
범국가적인 위기는 누군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착남은 엄마와 나를 원 플러스 원이라 했다. 플러스로 끼여 왔으니 밥값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섬에 들어온 8살 이후로 엄마와 함께 청소와 빨래, 주방 일까지 해야 했던 내가 코로나19 덕분으로 본섬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동안 인터넷강의를 들으며 중졸 검정고시를 통과해서 다행이었다. 고사리 같은 애를 부려 먹냐는 핀잔이 신경 쓰였는지, 친딸이 아니라 그럴 거라는 뒷담이 켕겼는지, 착남은 본섬의 학교 인근에 원룸을 얻어주었다. 중학교 때처럼 배 타고 등‧하교를 했다가는 결석과 자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래보다 일 년 늦은 입학이었지만 너무도 감격스러웠던 나는 착취남의 준말로 별명을 지은 게 살짝 미안할 지경이었다.
항구마을 입구는 팽나무가 지키고 있다. 나는 차도를 건너 나무 아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학교에서 고작 10분 거리인데 숨차고 땀 났다. 모처럼 해가 나고 기온이 올라 그런지 기운도 빠졌다. 올해는 장마가 이르다고 난리더니 끝도 빠른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장마 끝자락으로 잡아두었던 나의 계획도 2주일 빨리 진행해야 했다. 여건이 따라준다면 모레, 일요일이 디데이가 될 것이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아미도 왕복표를 사고, 승선신고서를 쓰고, 대표가 일행의 신분증을 걷었다. 평소에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지만 특히 금요일 손님들은 60, 70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멋을 한껏 냈지만 하나같이 후줄근했다.
장씨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 승선할 사람들을 호명하며 줄을 세웠다. 나는 생나물과 건어물을 팔고 있는 개철 아줌마에게 고개를 숙이며 다가갔다. 맛보기용 미역귀를 씹어먹던 여자 손님이 사겠다고 하자 나는 얼른 비닐봉지에 넣어 건넸다. 공짜 배를 타려면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 한다. 예쁘게 생겼네, 딸이에요? 손님의 물음에는 웃기만 하던 개철 아줌마가 몸을 비틀며 나에게 속삭였다.
“이제 할머니인데 네 엄마라니, 젊게 봐주니 좋긴 하다.”
“어머, 드디어 아기가……”
“응, 이틀 전에. 아휴, 꼼지락꼼지락 얼마나 신비로운지.”
“와아, 축하해요.”
“고맙다, 새날아, 이 나이에도 설레는 첫 경험이 있다는 게 감사해.”
감사는 개뿔, 반발심이 생겼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어른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꽤 귀여운 아줌마다. 그때 장씨 아저씨가 말했다.
“또 개똥철학 씨부리고 있네. 새날아, 얼른 타라.”
나는 배에 오르며 선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장씨 아저씨처럼 그도 공짜 손님인 내게 손 흔들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아미도의 최연소 주민, 어른 한몫하는 일꾼이면서 공부도 잘하는 학생, 공손하고 예쁘기까지 한 아가씨라서다.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그렇게 굳어졌으니 할 수 없다. 안전장치가 되어준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