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떠난 곳도 섬이지만 아미도에 닿으면 냄새부터 달랐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이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아미도 첫인상으로 은은한 꽃향기, 짙은 나무 향, 에메랄드빛 바다가 주를 이룬다. 자연 그 자체라는 건데, 주말 관광객이 천 명이나 된다는 요즘 추세라면, 그 찬사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다. 배에서 가장 먼저 내린 나는 왼쪽 길로 달렸다. 집으로 가는 가장 먼 길을 택한 만큼 빨리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바다와 나란했던 길은 이제 언덕으로 이어진다. 나는 멈춰서서 숨을 골랐다. 아직 손을 타지 않은 줄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시를 피해 따서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달콤하긴 했으나 끝맛은 시금털털했다. 담임이 준 팥빵은 엄마를 위해 남겨두었으니 오늘의 첫 먹거리다. 코로나19 직전 야생화 탐사 팀을 따라나선 둘레길 투어 덕분에 내 삶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들이 말하고 보는 것이 신기해 꽃 사이트와 유튜브가 취미가 되었고 꽃 이름뿐 아니라 식물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실용성도 커서 봄이면 냉이와 쑥부쟁이 나물을 손님 밥상에 올릴 수 있었고 머위꽃 튀김, 민들레 뿌리 튀김이라는 새날펜션 시그니처도 생겼다.
이제부터는 오리나무숲, 그 사이 잎이 짙어져 터널을 이루었고 들큼 비릿한 향기는 더욱 묵직했다. 이어지는 좁은 사스레피나무 길을 따라 걸으면 드디어 벚나무 군락, 숨을 죽이고 땅을 살폈다. 장마를 겨냥한 내 예상이 맞다. 쌓여 있는 낙엽 사이에 독우산광대버섯이 세 개 올라와 있다. 그 앞에 쪼그려 앉는데 가슴이 벌렁거렸다. 지름 10cm 정도의 원뿔 모양, 끈적끈적해 보이는 둥근 갓, 흰 살과 빽빽한 주름, 뽀얗고 순결한 색깔. 하지만 죽음의 천사로 불릴 만큼의 맹독! 흰달걀버섯이나 흰우산버섯으로 착각하기 쉽다 해서 지난주엔 수산화칼륨 용액을 뿌려, 유튜브 영상처럼, 갓이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도 확인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비닐장갑을 꺼냈다. 일요일에 다시 와 보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2개를 딴 뒤 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도착하니 10시 40분, 나는 옷부터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갔다. 새날펜션 1층 방이 아니라 소씨 아저씨가 살았던 곳이라 아직도 으스스했다. 작년 가을이었다. 착남의 심부름으로 나는 그 집 현관에 들어서며 소씨 아저씨를 거듭 불렀다. 어떤 끌림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방문을 열었고, 침대에 엎드려 있는 그를 보았다. 느낌이 싸했으면서도 그의 어깨에 손을 댔다. 그 순간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그의 팔이 툭, 침대 아래로 떨어졌는데 얼음 한 조각이 내 핏줄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몇 걸음 못 가 주저앉고 말았다. 그 상태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문득 깨어나 보니 119 대원이 구급차 문을 닫고 있었고 경찰이 이장과 착남 말을 받아적고 있었다. 엄마가 버버버 울면서 동치미 국물을 내 입에 들이댔다. 시큼한 냄새가 싫었지만 나는 입을 벌렸다.
소씨 아저씨는 원인 모를 이유로 죽고 착남은 시가의 절반 값으로 그 집을 샀다. 소씨 아저씨 아들은 고마워하고 이웃들은 사람 죽은 폐가를 거뒀다고 칭찬했다니, 착남은 꿩도 알도 챙긴 셈이었다. 착남은 도배는커녕 장판도 바꾸지 않고 잠자는 방을 옮겼다. 펜션 손님을 더 받게 되었고 엄마와 나의 노동은 늘었다. 그쯤 되니 나는 그가 일부러 사람 죽은 집으로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살인자의 집>에서 뻗어나간 상상력일 수도 있겠지만, 착남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소씨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무서웠고 착남을 그 자리에 놓아보며 더욱 무서웠다.
주방 입구에 착남이 서 있다.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걸음을 옮겼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아이고, 우리 딸 왔네. 어디 함 안아보자.”
착남은 칡덩굴 같은 두 팔로 내 등을 누르며 몸을 바짝 붙였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는 동안에 젖가슴이 바짝 눌리고 다리가 뻣뻣해졌다. 그래, 이 짓도 오늘이 끝이리라, 나는 이를 악물었고 다섯을 세는 순간 풀려났다. 나는 울듯 말 듯 한 엄마 얼굴을 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착남은 뜨내기였다. 십 년 전 아미도 둘레길 공사판에 일하던 착남은 엄마와 나를 데리고 섬으로 다시 들어왔다. 배척하던 이웃들은 엄마 손을 잡고 산책하는 착남, 미장원까지 동행하고 옷을 사 입히는 착남을 보며 도끼눈을 풀었다. 착남은 이웃집의 잔고장들을 해결했고 본섬을 왕래할 때마다 노인들의 심부름을 도맡았다. 오르막을 따라 좁게 늘어서 담벼락에 벽화를 그릴 때도 100% 출석하여 이장을 흐뭇하게 했다. 특히 동백나무 벽화 아래 낙화한 듯 붉은 꽃을 흩뿌린 콘크리트 길은, 나중에 하트 모양까지 추가되어, SNS에 자주 오르는 포토존이 되었다. 그렇게 착남은 부지런하고 싹싹한데다가 장애인에 딸린 자식까지 보살피는 사람이 되어 마을 사업 회원이 되었다. 내 이름으로 간판을 올리는 것부터 생쇼였지만 주민들은 잘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보는 엄마 인상은 거의 같다. 남편에 비해 젊고 예뻐서 놀라고 농아인이라 한 번 더 놀란다. 엄마는 듣기는 조금 되는 편이나 언어 구사가 매우 힘들다. 어버버 어버버 혼자 애쓸 때는 앞뒤 정황이나 표정으로 알게 되고 간혹 수첩을 이용하기도 한다. 엄마는 텔레비전 화면마다 서비스가 제공되는 수어도 몇 개밖에 모른다.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내가 가르치려고 했으나 헛수고였다. 지능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잘한 게 있다면 과거에 나를 낳은 거, 현재는 음식을 곧잘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기능은 퇴화하는 대신 오로지 요리하는 능력만 강화되는 것 같았다. 반복의 힘인지 강압의 힘인지는 모르겠다.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몸이 망가지는 엄마는 주방에 처박혀 착남이 시키는 대로 매끼 5~30인분의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며 생선을 조린다. 엄마의 일은 거기까지다. 음식을 보기 좋게, 균등하게 차려내는 일은 착남이 한다. 주말마다 내가 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착남은 엄마를 가혹하게 다루었다. 남 앞에선 다정하다가 저깟 병신이 무슨 부인이냐 비아냥거렸고 주방과 방에서 손찌검까지 했다. 어쩌다 목소리가 부드럽다 싶을 때가 있었는데 성욕을 풀 때였다. 그때만큼은 아끼는 물건이라도 되는 듯 친근하게 부닐고 씻겨주기도 했다. 내가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를 향해 야릇하게 웃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내가 월경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 피를 봤을 때 무슨 중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던 나는 검색을 통해 몸의 변화를 알았다. 그 이후 모르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을 찾았다. 무엇이든 검색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자랐다.
엄마는 참나물을 무치고 있다. 나는 엄마의 등을 안으며 요리 진행 상황을 쓱 훑어보았다. 전기밥솥은 보온 상태였고 국솥과 조림 냄비가 약불에 올려져 있으니 일단 기본은 통과, 나는 수전에 담긴 조리도구를 설거지하고 정리한 다음 트레이 위에 도기 느낌의 플라스틱 찬기를 죽 늘어놓았다. 밤마다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을 달거나 예약 상황을 확인하기 때문에 손님 상황도 꿰고 있다. 오늘은 4팀 19명으로 각 7, 5, 4, 3명이다. 4인 1상이 기본이니 좀 성가신 편이다. 7인 팀은 2상으로 하고 나머지는 1상씩 차리고 5명 팀에게 부족한 음식은 곧바로 드리겠다는 양해를 구해야 한다. 나는 찬기를 5줄씩 늘어놓고 순서대로 김치 3종과 창난젓, 일미 무침, 깻잎지와 엄나무순 장아찌를 놓았다. 착착착,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네 덩이로 재배치된 식탁에 옮겨놓고 시계를 보니 11시 20분, 잠시 숨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가장 바쁘고 중요하다. 그때 갑작스럽게 착남이 내 허리를 감았고 나는 상체를 비틀어 벗어났다.
“커피 타임! 우리 따알, 애쓰네. 좋게 나가자. 안 그러면 저기가 힘들어.”
착남이 주방을 가리키며 능글거렸다. 건네는 커피믹스를 얼굴에 들이붓고 싶었으나, 버섯을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웃기까지 했다.
“그렇지, 플러스 원. 병신 엄마 거둬주고 공부까지 시켜주는 은혜를 알아야지. ……제대로 하자. 수틀리면 원룸 빼는 수 있어.”
나라고 가만있겠냐,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며 나는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오늘내일은 착남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엄마가 프라이팬 두 개를 놓고 김치전을 시작했고 나는 튀김가루를 풀었다. 기름이 끓기 기다리며 샐러드와 생선조림, 나물을 담아냈다. 밥은 4인용 그릇에 담고 미역국도 세팅했다. 정확하게 12시, 따뜻한 김치전과 뜨거운 튀김이 식탁에 올랐다. 1차 관문은 무사히 마쳤다.
영혼 없는 웃음을 장착한 채 팀별로 앉게 하는데 뜻밖에 숏컷녀 숍인숍 책방지기가 들어왔다.
“놀라긴, 이분들은 시 읽는 모임. 줌 3년 만에 이제야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거.”
책방지기는 일행들에게 나를 두고 정정희 님 제자이며 소설 읽기반으로 소개했다. 온라인 모임만, 그것도 얼굴 가리고 지켜보기만 했는데 회원이라니 민망했다. 고개를 꾸벅이는 나를 두고 아줌마들이 예쁘게 생겼다느니, 효녀가 따로 없다느니 한마디씩 했다. 등짝으로 식은땀이 바짝 솟았으나 나는 겸손을 섞은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얼른 손님 전체를 상대로 큰 소리로 말했다. 보나 마나 착남이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을 게 틀림없어서이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역은 마을 앞바다에서 채취한 것이고요. 생선도 마찬가지예요. 밥은 원하시는 만큼 덜어 드시면 됩니다. 맛있게 잡수시고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회와 해물은 저녁상에 나갑니다. 술안주 하시라고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튀김 더 달라는 테이블이 있었다. 나는 얼른 빈 접시를 들고 주방에 들어갔다. 책방지기 팀도 연신 맛있다고 했다. 나는 추가 반찬을 가져다주며 빠르게 물었다.
“우리 집인 줄 아셨어요? 우리 담임 샘도 회원이세요?”
“그래, 정희 님은 갑자기 본가에 일이 생겨 못 왔어. 거기도 효녀거든. 나중에……”
“따아알, 4번 테이블.”
욕설보다 더 끔찍한, 다정한 목소리였다. 책방지기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나는 독사눈 착남에게 뛰어가 김치전을 받았다. (섬의 섬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