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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estories Dec 27. 2020

#Pay for the earth

“배송박스에 옷만 넣어주셔도 저는 괜찮으니, 최대한 비닐이라 플라스틱 부자재 없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빈티지 가게를 운영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때 받은 한 통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작은 경종을 울렸다. 


브랜드와 매장에 포장 부자재란 꽤 중요한 요소이다. 판매하는 물건 외에 무형의 이미지나 서비스를 유형화해서 고객에게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필수적이면서 효과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오픈 준비를 하면서 매장과 배송에 필요한 부자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다소 투박하더라도 친환경적인 패키지를 사용하기로 했다. 생분해 봉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택배 봉투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생분해 봉투는 분해되는데 100년 이상 소요되는 합성수지와 다르게 옥수수 젖산, 셀룰로스, 화학계 고분자 등 생분해성 소재로 만들어져, 일반쓰레기로 버릴 수 있고 매립 시 180일 이내 물과 이산화탄소로 100% 자연 분해되는 특성을 가졌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생분해 택배 봉투는 국내에서 찾기가 어려웠고, 제작하는 경우 최소수량이 몇만 장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분해 택배 봉투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직접 제작하자며 숙제로 미뤄두고, 매장에서는 될 수 있으면 가져온 가방에 물건을 담아가거나, 생분해 봉투를 판매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년 뒤, 정중하고 다정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다시 포장 부자재를 점검해 볼 때임을 상기시켰다. 


6개월 사이 생분해 택배 봉투를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생분해 택배 봉투를 사용하기로 하면서 기타 부자재 또한 변경하기로 했다. 의류용 폴리백은 습자지와 마스킹 테이프로, 뽁뽁이라 불리는 비닐 에어캡은 종이 에어캡으로, 비닐 박스테이프는 종이테이프로 대체했다. 부자재를 모두 변경하기로 하고 계산해보니 기존 포장 부자재와 대비해서 비용이 5배 정도 오르고, 포장 또한 규격화된 의류용 폴리백에 담아서 깔끔하게 하던 것에 비해 습자지로 싸서 마스킹 테이프로 마감하는 방식은 시간이 배 이상 소요된다. 눈 딱 감고 기존대로 하면 편하고, 저렴하고, 쉬웠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알았다. 숙제로 남겨뒀던 일이 해결되었는데 이 정도 비용과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편의를 추구하며 그동안 모른 척했던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생분해 택배 봉투는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것보다 강도가 약하고, 접착력도 부족하고, 사이즈도 다양하지 않았다. 고객에게 이러한 내용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포장재를 변경했다. 생각보다 많은 응원이 쏟아졌고, 습자지로 포장해서 보낸 옷은 선물 같은 느낌이 들어 좋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편의와 가격에 초점을 맞춘 상품의 발전이 이뤄진 사회에서 친환경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요가 많아지면 공급도 늘어날 테니, 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친환경적인 아이템을 더 많이 만나길 바라게 되었다. 


포장재를 변경하는 일은 내 삶에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 작은 파장은 점점 넓어져서, 나는 생활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혼자 알아보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구하기로 했다. 빈티지샵 계정을 통해 #payfortheearth 라는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했다. 환경을 위해 내가 비용을 지불한 것을 릴레이로 소개하는 이벤트였다. 평소 진행하는 이벤트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관심사가 깃든 아이템들을 보는 재미도, 의외의 아이템을 통해 깨닫는 재미도 쏠쏠했다. 장바구니 대신 에코백 사용, 유기농 채소 구매하기, 일회용 빨대 대신 스테인리스, 유리 소재 빨대 사용하기, 개인용 나무 수저 세트 지참하기, 텀블러 사용하기, 물티슈 대신 개인타월 지참하기, 플라스틱 제습제 대신 시더우드 조각을 활용한 천연 제습제 사용하기, 나무 칫솔 사용하기 등이 있었다. 빈티지 의류를 구매하는 것 또한 친환경적 선택의 하나다. 


#payfortheearth 캠페인에 함께한 귀여운 북극곰 그림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빨대를 사용하지 않게 됐다. 버려진 일회용 빨대에 찔린 바다 거북이 사진을 보고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에 반성했다는 글을 봤다. 그 사진을 보고 거북이를 불쌍해하며, 빨대를 사용하는 일상의 나와는 분리했던 것 같아 나 또한 반성했다. HEY에서 구매한 파스텔 컬러의 유리 빨대는 모양새도 예쁘고, 입에 담는 느낌도 살가워서 여름내 집에서 자주 사용했다. 카페에서 아이스 음료를 마시는 경우는 빨대 없이 받아서 입에 대고 마셨다. 자주 마시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흘리지 않고 잘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하나 더 사용하게 된 것은 나무 칫솔이다. 칫솔은 당연히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무로 만든 칫솔이 있었다. 나무 칫솔은 사용주기는 2개월로 플라스틱 칫솔의 사용주기 6개월보다는 짧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구매해서 사용해보니 사용감도 떨어지지 않았다. 나만 아는 생활의 변화지만 매일 함께하는 것들이 변하니 시각도 변하게 되었다. 정수기를 두기에는 비효율적이라 주문해서 마시던 생수도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너무 많아, 정수되는 물통을 구매했다. 편함에 초점을 맞췄던 일상의 것들이 약간의 수고로움을 동반한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진다. 


빈티지 가게의 포장재를 변경하는 사이 코로나 19가 발생하고 펜데믹이 왔다.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 전 세계가 활동을 멈추자 자연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동시에 반성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친환경적인 아이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삶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일상이 멈춘 시대를 살아가며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미디어를 통해 환경문제를 접하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나, 소비자로서는 편함을 중시하는 나, 이 이중적인 정체성에 대한 정리가 필요함을 비싼 값지불을 하며 깨닫는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며 살아가는 지금이 속히 막을 내리고, 지금 취한 것들을 자양분 삼아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길. 많은 바람이 드나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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