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좋아한다. 책이 주는 묘한 안정감과 고요한 공기, 그 사이 사각거리는 조심스러운 종이의 소음을 사랑한다. 중고생 시절 교내 도서관을 가면 책을 빌려 읽고 뒤에 간단하게 감상평과 날짜를 기재해두는 독서록이 있었는데, 내가 첫 번째 기록자면 괜한 첫 주자의 책임감으로 설레고 앞에 다른 기록이 있다면 그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이 주는 책임감은 꽤 무거운 것이어서, 나 다음으로 읽을 사람을 위해서 한 장 한 장 귀하게 넘기며 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책을 볼 때의 습관으로 남아있다.
누군가의 손을 거쳤을 빈티지 의류를 다루다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몸에 맞추기 위해 옮겨 달았을 단추의 자국이 남겨진 자리를 보게 되는 순간, 적당히 부드럽게 길든 가죽 소재의 촉감을 느끼는 순간, 살짝 보풀이 올라온 원단을 제거기로 정리하는 순간, 누군가와의 소중한 기억을 지녔을 아이템을 살피며,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기 위해 정비하는 시간은 마치 독서록을 작성하는 것처럼 상상과 책임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정비된 한 벌에 하나뿐인 특별한 옷들은 다음 주인을 만난다. 빈티지 가게를 운영하면서 빈티지를 처음 접해보는 손님들도 취향이 맞는 잘 관리된 옷을 만나면 구매를 하고, 그 후 빈티지를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이 경험이 확대된다면 해외 출장에서 본 자연스럽게 체화된 빈티지 문화를 부러워만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도 옷장을 가득 채운 옷 중 입지 않는 옷들이 꽤 있는데 낡거나 흠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 산 옷을 입느라, 예뻐서 샀는데 막상 손이 안 가서, 혹은 충동구매로 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엄마가 알면 등짝을 맞겠지만 심지어 택이 고스란히 달린 것들도 있다. 누군가 어울리는 사람이 잘 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옷들이다. 다 나 같지는 않겠지만, 주변에 물어보니 안 입지만 아까운 옷 한두 벌쯤 누구나 충동구매의 훈장처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에 팔면 되잖아.” “옷이라서 귀찮기도 하고, 뭔가 거기서는 옷을 거래하고 싶지 않아.” 친구의 말은 씨앗이 되었다. 옷은 보이는 공간이 매우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다. 중고의류라고 해도 거래를 위해서는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중요하고, 그렇게 패션을 전문으로 하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자연스럽게 구상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스터디를 해보니 해외에는 이미 패션 전문 중고거래 플랫폼이 몇 년 새 급성장하며 시장규모가 확대될 전망이고,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반년에 걸쳐 시장조사와 고객조사를 통해 사업계획을 준비했고, 기획한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투자금이 필요했다. 정부 투자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해 초기 투자금을 확보하기로 계획하고 올 상반기는 그것에 시간을 쏟았다. 삼수 끝에 합격해 투자금을 지원받아 지금은 앱을 개발하는 단계다. 처음 기획을 시작했을 때로부터 어느덧 일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코로나 19가 발생하고, 언택트가 뉴노멀인 시대가 열렸으며, 중고거래 시장은 성장의 급물살을 탔다.
투자금을 받을 때만 해도 희희낙락, 해피엔딩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종잇장처럼 가벼운 행복감에 들 떠 있었다. 앱을 기획할 때도 개발자를 통해서 구현만 되면 일의 절반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베타 버전의 뼈대가 나오고 개발이 진척될수록 진짜 일은 이제 시작이라는 강한 직감과 감당하지 못할 규모의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나를 압도한다. (왜 이런 직감은 도통 틀리지 않는가)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기술도, 자본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덜컥 일을 저질러버린 것 같다는 뒤늦은 현실 자각으로 인해 어깨가 무겁다 못해 아픈 하루하루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울타리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빈티지라는 좋은 아이템을 만나 좋아하는 것의 연결과 확장의 모든 고리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빈티지를 좋아해 자주 구매하던 사람은 그것을 판매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고, 어느새 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 없는 하루 하루는 어느 때보다 불안하지만, 스스로 만들어가는 하루를 통해 쌓이는 결과물들을 투명하게 볼 수 있어, 주어진 시간의 귀함을 깨닫고,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인 나를 온전히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이 기대되고, 우리가 만들 새로운 플랫폼도 고대한다. 바쁘고 골치 아픈 것들은 내일의 내가 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