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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estories Jan 03. 2021

올해의 문장

한 해를 반절쯤 살고, 중반에 들어서면 항상 그 해의 슬로건이 생긴다. 남은 해의 반절은 그 문장을 되뇌며 산다. 그 문장이란 실수를 막기 위한 것일 때도 있고, 자신을 스스로 격려하기 위한 것일 때도 있다. 어떤 방향이더라도 나에겐 한해를 꼬박 잘 살아내기 위한 생존 비법이자 마법의 주문 같은 거다.


작년과 올해는 같은 문장이 나를 지배했다. 창업하면서 시작하는 모든 선택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새로운 것이었고, 그래서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마다 우려와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회사에서 구성원으로 한 부분을 담당하며 일을 하는 것과 자영업자로 일을 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작은 규모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하기에 보장되지 않은 결과를 두고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보지 않으면 실패라는 결과도 없는 것이기에 창업하고 계속 다른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진행하고, 작은 성공도 실패도 맛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와 우리를 지켜 준 올해의 문장은 “내일의 내가 다 해 줄 거야.”이다. 


2019년 가을, 빈티지 가게에서 플리마켓을 기획했다. 아직 우리 브랜드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과연 손님이 올까, 아니 과연 판매자들은 모일까, 준비 단계부터 걱정이 많았다. 빈티지 가게와 함께 운영하는 와인바의 공간이 넓고, 루프톱을 사용할 수 있어 그곳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육층 건물이라는 점,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작은 규모의 개인 브랜드를 운영하는 셀러를 모집하고, 우리가 주최해서 플리마켓을 알리기로 했다. 공신력 없는 작은 빈티지 가게에서 올린 공지였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판매자분이 지원을 했고, 유리 공예품, 뜨개 장식품, 애완동물 장난감, 액세서리 등 손으로 만드는 다양한 아이템이 주를 이뤘다. 사전에 행사도면도 그리고, 판매자들에게는 판매 부스 안내 및 행사 내용을 공지하고, 고객 모집을 위해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홍보도 진행했다. 당일에는 루프톱 이용을 위해 선루프를 대여해서 올리고, 평소와 다르게 공간을 꾸미고, 배치도 완료하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웰컴 드링크인 샹그리아도 준비했다. 다행히 날씨도 좋고, 손님들과 지인들이 많이 찾아주어 북적이는 행사로 마무리하며 준비의 걱정을 보람으로 바꾸며 마무리한 하루였다. 


자영업의 좋은 점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으면 마음껏 피울 수 있고,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하던 일만 계속해도 상관없다. 나태에 관한 결과와는 별개로 시간과 도전에 대한 영역은 소속이 스스로 적을 두고 있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래서 그것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울 것 같은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장을 불러낸다. “내일의 내가 다 해줄 거야.” 마법의 문장을 외친 뒤 일단 일을 저질러버리고, 되돌이킬 수 없게 시작해버리는 거다. 고되고 험해도 하루하루의 내가 그 고됨을 나눠서 처리하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마무리되어있다. 시작 전의 막막했던 주저함은 온데간데없이 그 일은 하지 않았으면 몹시 후회했을 좋은 경험으로 남는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추를 재는 동안 포기가 게으름을 타고 손쉽게 마음에 번질 때, 나는 이 다소 무책임한 문장을 활용한다. 커다란 벽처럼 보였던 일이 잘게 부서진 조각이 되어 그 조각을 지고 줄지어 걸어가는 일개미 같은 내일의 나’들’을 상상한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는다. 나 혼자 오롯이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렇게 내일의 나에게 편을 들어 달라고 하는 거다. 지금의 무게를 줄이고, 내일에 기대는 방법은 크고 작은 일을 해낼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빈티지 가게를 열고, 쇼룸 두 곳을 꾸리고, 플리마켓 세 차례 진행하고, 출장을 다녀오고, 크고 작은 이벤트를 진행했다. 오늘과 같은 내일은 없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보내기 위해 어제의 도전을 짊어진 오늘의 나로 살며 쌓아가는 삶은 작은 하루를 쌓아 만드는 것치고 꽤 재미있다. 앞으로 얼마나 이 문장을 많이 외칠지 가늠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언제든 주문을 걸 준비는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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