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알고 너를 알고 타협하는 과정
밴쿠버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최소 한 군데 이상씩 관광을 했다. 그와 내가 알람도 맞춰두지 않고 되는대로 일어나며 게으른 면모를 십분 보여드렸음에도, 삼촌 숙모께서 긴 하루를 이용해 매일 내가 새로운 곳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것이다. 체력에 부칠 정도로 알차고 좋았다. 그런데 넘치게 좋았음에도 중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 여행의 주체가 그가 아니고 삼촌 숙모인가?
(난 아무 생각 없어도 넌 그러지 마~)
자기가 살던 곳이라고 같이 왔는데 이렇게 나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없나?
왜 이렇게 어디 가자는 말도 없이 늦잠을 자나?
(난 늦잠 자도 넌 늦잠 자지 마, baby~)
차 뒤에 편안히 앉아서 어딘가 다녀오기만 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해할까?
삼촌과 숙모께서도 비척비척 오후 늦게 일어난 우리를 어딘가라도 데려가 주시면서 그에게 한 마디. 그럼, 그는 ‘우리 엄청나게 놀러 다니고 있지 않냐'라고 하고, 그럼 우리는 ‘네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가자고 하고 일찍 일어나고 해야지'라고 했고, 그럼 그는 다시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디 안 다니냐, 많이 다니지 않느냐'라고 응수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3주 하고 4일 정도 있는 이 귀중한 시간을 그는 왜 (내 기준에서) 소극적으로 보낸 걸까? 그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내가 그의 생각과 사정을 이해한 건 여행 중반쯤 되어서의 이야기. 같은 일정으로 캐나다에 왔다는 점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다른 상태여서 그랬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럼, 우리가 여행 초반부터 삐걱거렸던 이유에 대해 고찰해 보겠다. 나의 고찰이 너무도 다른 사람들끼리 여행을 계획했거나 다녀와서 힘드셨던 분에게 참고 내지는 공감이 된다면 기쁘겠다. 사실 공감이 안 되셔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여행 초반 여행객으로서 한껏 들떠있던 나와 달리 그는 이번 여행 자체가 자기 세상에 6년 만에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여행이라기보다는 고향 방문에 가까운 마음으로 밴쿠버에 입국했다. 그동안 못 봤고 이번에 한국에 돌아가면 언제 볼 지 모르는 친구들을 만나고, 친척들과 함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상상했다. 반면 나에게 이번 여행은 향후 몇 년간 여행을 가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의 도파민을 얻고 오고 싶은, 크게 마음먹고 떠나는 여행 그 자체였다. 30대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여행에 임하니 그 무게와 의미 부여가 상당할 수밖에. 3주 하고 4일의 시간 동안 캐나다 동부를 다 훑고 뉴욕까지 간 다음 밴쿠버에 돌아와 이틀 정도만 쉬고 밴프 여행을 간다는 게 첫 번째 여행 계획 브리핑이었으니 말 다했다.
체력적으로, 시간상으로 매우 무리한 일정임을 통감하고 밴쿠버와 밴프 여행으로 여행을 현실적으로 만들었는데, 여행의 환상과 의미 부여, 기대치를 내려놓고 그의 추억여행을 돕겠다고 생각하며 편안하고 안정적인 여행을 예상했다가, 동부를 못 간 것에 대해 화가 폭발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의 피 같은 여행을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으로 너무 많이 할애한 것도 가슴으론 수긍했는데 머리가 싫다는 건지 머리론 수긍했는데 가슴이 싫다는 건지 둘 다 싫다는 건지 아무튼 싫었다. 나는 아무리 봐도 순교자적인 사랑을 하고는 못 배기는 타입인 것이다. 그러니 밴쿠버만 여행하는 것에 대해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해도, 하루 이틀 계속해서 그저 누워만 있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상황이 답답하고 또 남편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이 마음이 안정을 찾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위에서 여행의 의미라는 주제 밑에 이야기를 썼지만, 사실 일부 내용은 이 ‘에너지' 이야기로 연결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애초에 새로운 것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군데 가는 것을 좋아하고, 예외의 상황이 와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며, 혹시라도 아프더라도 정해진 일정은 해내고야 마는 스타일이다. 반면에 그는 변수와 위험, 예외에 민감하고 새로운 곳에 가면 한껏 긴장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금방 체력을 잃고 만다. 애초에 에너지 수준 자체도 내가 매우 높은 편이고. 그러니 그는 두려움 없이 여행을 계획하고 또 이곳저곳 다니는 내가 부러우면서도, 나로 인해 거의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초과하며 같이 다니고 있는 것이다(둘이 동시에 행복하기 어려운 두 사람이 만났음에 유감을 표할 수밖에). 내가 그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이끌지 않는 점을 아쉬워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여러 곳을 다녔는데, 가끔은 나도 그게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가 있었다. 내가 피곤할 정도면 그는 거의 그로기상태라는 건데.
그러니까 계속 ‘어쨌든 여행을 다녔잖아'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계속했구나,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그리고 나와 달리 그는 여행 일정 중간에 삼촌, 사촌, 때론 친구와 운동을, 다녔던 것도 뒤늦게 기억난다. 무리 많이 했네.
그에겐 이번 여행 기간 모두가 여행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약 일주일 정도 예정된 밴프 국립공원을 가는 것이었다. 같은 서부이지만 밴쿠버에서 가려면 편도 1,300km가 넘어 보통은 밴쿠버에서 비행기로 이동을 한 후 렌터카를 빌려 가는 곳인데, 그는 ‘밴프는 그 가는 길 자체가 아름다워 자동차여행으로 꼭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편도로 하루에 운전을 11시간 넘게 하는 일정이 두 번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밴프 국립공원과 그 주변 관광도 모두 차를 계속 운전해서 다녀야 한다. 그러니 그의 논리는 가장 중요한 “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그전에 무리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밴쿠버는 별로 볼 게 없지만(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입니다.) 밴프는 절대 놓치면 안 되니까. 나는 애초에 힘든 일정을 수행하여도 아플 것이란 선택지는 없고, 아파도 우리가 계획한 것은 모두 할 것이라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자랑스러운 K-여행객이었으므로 처음엔 이 말이 무슨 나약한 소리인가 싶었다. 그리고 설사 밴쿠버에서 너무나 여행을 많이 해서 피곤해서 여행에 차질이 생긴다면 어떤가? 나는 다 이해할 수 있다………………………….
아, 솔직히 얘기하면, 아니다.
분명 이해하면서도 속상해할 것이다.
아마 그는 속상해할 나를 꿰뚫어 본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분명 많은 것을 보는 것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마냥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삼촌 숙모 댁에 머무는 것 자체가 폐라는 생각에 미안한 감정이 있었고, 그래서 자동차를 빌리는 것에도 저어하는 마음이 생겼다 했다. 자신 때문에 삼촌 숙모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삼자인 내 눈에는 우리가 차를 빌리지 않음으로써 삼촌 숙모가 우리를 태워서 여행을 다니셔야 했으므로 차라리 차를 빌려서 우리 둘이 여행을 다녀왔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삼촌 숙모께서 우리랑 같이 여행 다니시는 게 더 피곤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에서도 짧은 거리도 차를 발처럼 사용해서 다니는 그는 캐나다에서 발이 묶인 느낌으로 주도성을 잃고 한국에서처럼 잠을 충분히 자는 행복한 내향인으로서의 포지션을 잡은 것이다.
상대의 상황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나 혼자 내가 원하는 걸 모두 한다고 해도 기쁘지 않다. 힘든 사람 억지로 데리고 모든 곳을 다닌다고 해도 기쁘지 않다. 둘 다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왔고 가능한 일정은 같이 하는 것이 좋다는 전제하에서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피곤한 것까진 어쩔 수 없다 - 그가 피곤한 경우에는 삼촌 숙모와 같이 나가거나 나 혼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가 친구와 운동 가는 일정일 때는 그의 친구 내외가 같이 놀아주시기도 했다. 어딘가 여행을 같이 가서 그가 아주 피곤하다면 벤치에 앉아 있도록 하고 나는 모든 상점을 다 구경한 후 돌아온다.
그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같이 한다 - 덕분에 그의 친구와 같이 캐나다 마라탕도 먹어 보고, 방 탈출도 가고, 치즈케이크 맛집도 가고, 그랜빌 아일랜드라는 관광지에 놀러 갔다 왔다.
“여행"의 임무는 충실히 완수하기로 한다 - 그는 밴프국립공원에 “여행"을 가느라 거의 4,0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하였지만, 피곤하다는 티를 내지 않았고, 가고 싶었던 곳을 모두 가고 산에도 올랐으며, 밤 10시까지 일정을 소화했다.
“발"을 잃지 않는다 - 밴프 국립공원에 다녀온 다음에 삼촌께서는 바로 차를 반납하고 본인의 차를 사용하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또 발이 묶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돈을 더 내고서라도 렌터카를 여행 끝까지 빌리기로 했다.
(때로는 믿기 어렵지만) 내가 항상 정답이 아니다!
상대방을 나에 맞추어 바꾸려고 하지 말자!
이해할 수 있으면 이해하자!
이해할 수 없다면 타협하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서로 소통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