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로키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크게 아쉬운 것 없을 정도로 원하던 것을 거의 다 봤다.
오전 8시쯤부터 레이크 루이스와 모레인을 딱 다 보고 나오니 날씨가 구리구리해지면서 좀 추워졌다.
그리고 엄청 배고파졌다.
레이크루이스 주변에 휴게소처럼 작은 간이 주차장과 가게가 있는 곳이 보여 잠시 들르기로 했다.
레이크 루이스를 보고 춥고 배고파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한국 관광차량들도 많이 멈춰있는 걸 보니 제휴라도 했나 싶었다.
여러 가게 중에 나의 선택은 뜨끈한 라멘. 라멘 외에도 이것저것 아시아스러운 것을 파니 잘 됐다 싶었다.
안타깝게도 한국 단체 관광객들과 같은 시간에 이곳에 와서, 가게 내부에는 자리가 없었다. 고민하다 그냥 차에서 먹기로 하고 긴 줄을 섰다. 빠릿빠릿하고 빠른 사람들이 많은 한국에서 와서 그런 건지, 직원이 두어 명쯤 아파서 오늘 병가를 냈는지, 줄은 도무지 줄 기세가 아니었다. 주문을 받고, 주문을 받은 사람이 주문을 받다가 요리를 준비하는 그런 비효율의 파티랄까. 주문하려는 줄도 길고, 음식을 받는 줄도 꽤 길었다. 물론 우리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음식이 조금씩 나오고 있던 차, 한국 분 두 분이 주문받는 사람에게로 가서 서툰 영어로 조금은 퉁명스럽게 무언갈 물었다. 우리가 더 먼저 주문했는데 다른 사람 것이 먼저 나왔다는 투였다. 가게의 대응도 퉁명스러웠다. 그렇게 다시 그분들은 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주문을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에 갔다 나오니 음식 두 개를 들고 그가 나와있었다. 차에 들어가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녹였다. 평범한 라멘 한 그릇이었는데도 순간 몸이 풀리는 기분이 참 좋았다. 음식 맛이야 뭐, 휴게소 음식 맛 정도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묘하게 그의 심기가 조금은 안 좋아 보였다. 왜 그러지? 아직 추워서 그런가?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런가?
그 이유는 맨 마지막에...
밴프 여행의 마지막 식사로는 좀 조촐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배를 채우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안녕 밴프, 레이크 루이스~~
올 때는 밴쿠버에서 골든이라는 도시를 들러서 왔지만, 돌아갈 때는 '켈로나'라는 도시를 일부러 들러서 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날에도 새로운 곳을 보고 말겠다는 나의 의지의 발현이었다. 켈로나는 와인 산지로 유명해서 포도밭도 구경할 수 있고, 와인도 구매할 수 있고, 엄청 맛있는 식사도 판다고 했다. 주변에 동물 보는 데도 있고, 펄프 픽션 콘셉트 카페도 있고, 엄청 맛있는 브런치 집도 있다고 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아주 예뻐 보이는 곳을 잡았다.
444km만 ... 가면 된다...
5시간 걸려서...
이 산을 보라고 고된 매드맥스 차 운전을 해 주고 있는 그를 생각해서라도 바깥풍경을 열심히 봤다. 정확히 말하면 왜 사진 안 찍냐고 물어볼 때마다 감탄을 자동으로 발사하며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가늠이 안 되게 높은 산, 내가 아래에 섰다면 개미만 하게 보일 산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이런 곳에 살던 사람들은 당연히 신을 믿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당연히 겸손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잠시나마 미약한 존재로서 겸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돌아가는 길에 에메랄드 레이크도 지나갔다. 다시 한번 들렀다 가겠냐고 그가 물었지만 이제는 괜찮겠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돌아가는 여정에도 아름다운 경치가 계속됐다. 이런 재미있는 길도 있었는데, 내가 사진을 조금만 잘 찍을 줄 알면 멋진 모습이 담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그렇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양쪽으로 이렇게 높은 산이 계속되다 보니 인터넷은 당연히 잘 안된다. 미리 구글 오프라인 지도를 여러 번 저장해 와서 다행히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갑자기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가, 그래서 우리 차 창에 붙었던 수많은 벌레의 잔해들을 씻어가 주곤,
다시 맑아지고, 또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곤 했다. 로드트립의 묘미를 알 것 같던 시간이었다. 물론 오프라인 저장해 둔 내 노래 선곡이 운전자의 취향에 맞지 않아 운전자가 졸음에 빠질 위기가 여러 번 있었지만.
빙하에서 유래된 우유를 끼얹은 것 같은 탁하고 쨍하고 아름다운 호수들만 많이 봤었는데, 얼마 정도 이동하고 났더니 이렇게 내가 평소에 보던 물빛이 보인다.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지도를 보니 사회 교과서에서나 보던 완전히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길이 놓여있었다. 끝없는 산을 보면서 왔더니 이번에는 끝없이 길쭉하고 평온하고 아름다운 강을 보면서 간다. 다섯 시가 되어 가니 아직은 쨍쨍해도 해의 색이 조금은 변한 느낌이다.
이제 로키의 장엄함은 조금 없어지고, 평온한 시골 풍경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의 연료도 떨어졌다.
차 연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지간한 데서 밥 먹는 것보다 A&W에서 밥 먹는 것이 만족도가 높다. 나는 처음 A&W에서 먹었던 맛있는 버거를 찾아 이날도 그 버거를 찾아 주문했는데, 아무래도 이 버거가 아닌 것 같았다. (근데 또 지금 와서 사진을 보니까 맞는 것 같다. 왜 맨 처음 먹은 그날이 유별나게 더 맛있었을까?) 항상 주문하고 있는 양파튀김을 주문했는데, 체인점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양파튀김은 다른 곳과 달리 매우 강한 시즈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따로 주는 디핑 소스도 없었다. 참! 시골(?) 이어서 그런지 모두가 백인이었고 우리의 등장이 다소 신기한 듯 사람들이 흘깃거리는 것 같았다.
오랜 운전과 차 안에서의 이동으로 지친 우리는 서로 티격태격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밴프와 켈로나가 시차가 한 시간 있어서, 도착 시간을 에어비앤비 주인들에게 알리는 데 혼선이 좀 있었다. 인터넷이 잘 안 터지기도 했고.
이제는 록키의 모습도 오간데 없고, 시골의 모습보다는 왠지 사막 같은 느낌을 주는 길이 나왔다. 레이싱 게임이라 치면 지금이 한 세 번째 맵을 운전하는 것 같다.
로키랑 다른 의미로 광활하고 멋있었다. 새로운 풍경이 나와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왼편의 아름다운 강이 킬로나의 대표 강이다. 저 강을 건너 계속 가야 켈로나인데, 켈로나 부근에 와서 숙소 주소로 내비게이션을 바꾸자 이상하게 우리 내비는 다른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알고 보니 우리 숙소는 켈로나가 아니라, 켈로나에 바로 붙은 옆 동네 '피치 랜드'였던 것.
다 도착한 줄 알았다가 운전이 20분 이상 늘어나 버려 당혹스러웠지만, 내비게이션이 이끈 곳은 강이 한눈에 보이는 괜찮아 보이는 집들이 모여있는 동네였다. 그리고 그중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숙소 후기와 켈로나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P.S.
알고 보니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국분들은 본인들의 메뉴가 나오지 않은 것 같자 항의를 했지만 알고 보니 그런 상황도 아니었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직원이 뻔히 동양인들(한국인들)이 다 와 있는 걸 알면서도 "F***ing Koreans!"라고 읊조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문하면서 "Yo, not all Koreans are like that."(맞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남.) 이라고 말해줬다고. 직원이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고 했다. 한국인을 욕하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상황을 잘 모르고, 의사소통도 안 되면서 항의를 한 모습이 그가 보기엔 안 좋아 보였나 보다. 한 마디를 첨언하며 그는 말을 마쳤다.
"난 나대는 사람들이 너무 싫어!"
당시 상황으로부터 며칠 지나서야 들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