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름다운 와이너리와 먹지 못한 점심, 알지 못한 진심

켈로나 미션힐 와이너리 & 퀘일스 게이트

by 정그루


어제 밴프에서 마지막으로 레이크 루이스와 모레인을 보고 5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켈로나 부근 피치 랜드에 밤에 도착했다. 잠시 쉬고 오늘도 5시간 넘는 운전 길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운전은 그가 다 도맡아 하는 중이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그래도 기왕 켈로나에 왔으니 와이너리 구경을 안 하고 갈 순 없지. 사실 와이너리 가려고 일부러 돌아오는 길을 켈로나로 정했다. 그리고 한 군데에서는 포도밭 구경하면서 점심 식사도 하기로 예약도 해 놨지. 물론 못 먹고 돌아왔지만. 그 사연은 아래에 차차...



SE-d1d3a59e-dda9-47be-87f7-38e96916ee2f.jpg?type=w1


높은 산이 끝없이 이어지는 밴프 쪽 로키산맥과 달리 켈로나는 낮은 산이 있다. 작년에 불이 나서 그런지 듬성듬성한 부분도 보여 안타까웠다.


SE-0c6326b6-5e12-465e-916e-5e8408398f21.jpg?type=w1


SE-f526db33-b2b1-4dfd-869e-168e2419c310.jpg?type=w1


먼저 구경할 곳은 미션 힐 와이너리. (Mission Hill Winery)


풍경이 아름다워 킬로나 와이너리 관광, 하면 이곳이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와인 맛은 이 동네 와이너리 중 최고는 아니라고~ 하더라. 어쨌든 규모는 크고 아주 잘 꾸며놓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진입로마저 아름다웠다.)


SE-b3841237-836f-4e65-95d8-86a958643129.jpg?type=w1
SE-3a3a69c6-6b68-4a14-9903-56753dc1509a.jpg?type=w1
SE-b481973c-8e01-4aa2-bc3d-a4823e51477f.jpg?type=w1


어떤 사람들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조형물이었다.



SE-fa7eb055-a755-434a-bd0d-9eb79d416805.jpg?type=w1
SE-779b1e6f-1b2b-4ff0-a5e0-2512b2e180ed.jpg?type=w1


포도밭을 맘대로 휘젓고 다닐 수는 없다. 와이너리 투어는 별도로 해야 할 듯했다. 슬쩍 구경만 하고 이동하기로 했다.



SE-26604e88-940c-44e1-82b9-c360bc8743da.jpg?type=w1


이것이 미션힐 하면 딱 떠오르는 랜드마크인 종탑(?)이다. 기념사진을 이리저리 찍으려는데 한국 분들이 단체로 들어오시면서 열심히 계속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진 못했다..


SE-2ff8ab3f-81a2-4dbc-8711-f5441b953c73.jpg?type=w1
SE-43b41603-b593-4cd6-a8bf-db7807850ab0.jpg?type=w1



아름다웠던 풍경에 시끄러운 소리들이 더해지자 감흥은 떨어지고 더 있고 싶은 마음도 빠르게 사라졌다. 그 와중에 그래도 사진은 여기저기 제법 남겨서 다행이다.


미션힐 와이너리에 오면 내가 사진을 찍은 부분까지는 와인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구경할 수 있다. 입구 쪽에 직원들이 와인을 들고 있어 시음을 할 수 있으니(유료) 술이 강하시면 한 잔 드시면서 풍경을 즐기고 다음 와이너리로 가도 좋을 것 같다.


SE-ea0e1efc-0d8f-4eac-829f-6bcb0b923511.jpg?type=w1


SE-70632fcf-802e-4efc-bfa9-c3832007b01d.jpg?type=w1


이곳의 평화롭고 쨍쨍한 풍경도 퍽 마음에 든다.



SE-6b1ad5cf-9de1-4cb0-8283-44a82dfa8c96.jpg?type=w1


대충 한 바퀴 둘러봤고... 주변은 시끄럽고... 하니 다음 장소로 얼른 옮겨가기로 한다.



SE-d136f91d-5954-44d2-acc4-10a30498ebc7.jpg?type=w1



SE-0da130eb-717f-49cc-b3d8-00071c2e814f.jpg?type=w1


이곳이 기대를 가장 많이 했던 퀘일스 게이트 와이너리의 입구이다.


사실 가 보고 싶은 와이너리도 두세 군데 더 있었고 켈로나 다운타운에서도 들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몇천 킬로를 운전하고 오늘도 다섯 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할, 어제 잠을 설쳐 매우 피곤해 보이는 그를 위해 (라고 쓰고 본인도 피곤하다고 읽으면 됨) 이곳까지만 구경하기로 했다. 이곳이 와인도 아주 맛있고 점심이 그렇게 가격도 좋고 맛도 있다고 구글 후기가 아주 좋길래 캐나다 여행 오기 전에 메일로 예약을 해 두었다.


SE-6b43b32e-f637-47e6-a6d2-7bf38cb3a5ca.jpg?type=w1


이곳은 미션힐 같은 랜드마크는 없고, 식당 건물과 와인 판매 건물, 그리고 아래쪽에 이렇게 포도밭으로 되어 있다. 건물 안을 구경하고 바깥을 한 바퀴 산책할 수 있다. 햇빛이 쨍쨍한 이곳에서 포도가 맛있게 익고 있는 것만 같다.


SE-2c348b0a-c3ef-451e-89e8-5b9e8d5065d5.jpg?type=w1


해가 쨍쨍해서 눈이 좀 부시고 날도 좀 더웠는데 이렇게 시원한 상태에서 사진으로 풍경을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 이래서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나보다.


SE-0a1cf5fd-3d9a-4cfb-a72a-b510401dd702.jpg?type=w1



SE-0426862c-005a-438f-a4b7-9271c8e3d001.jpg?type=w1


바깥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와인 판매하는 곳에 가 보기로 했다.


SE-83b98a2b-4a91-4ab5-ba60-9ec3f8a761bd.jpg?type=w1


SE-1cf96d24-9741-4569-a109-969755755153.jpg?type=w1


와인들이 종류별로 잘 진열되어 있고, 특별한 와인의 경우는 따로 설명도 써 두어서 좋았다.


SE-1c4807e5-e4dc-496c-9629-a0505320c2ec.jpg?type=w1
SE-963e266b-14fd-4c09-82af-5420c40c6277.jpg?type=w1



테이스팅도 가능해서, 손님들 대여섯 명은 오크통 탁자 위에 여러 가지 와인을 두고 시음하고 있었다. 나도 시음을 해 볼까 싶었는데, 이따 식당에 가니 그곳에서 음식이랑 같이 먹으면 될 것 같아서 굳이 시음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까 여러 종류를 시음해 보고 마음에 드는 와인을 기억했다가 식사할 때 곁들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거나하게 취해버리거나 배탈이 났을 가능성도 있지만. (나는 이상하게 어떤 와인을 먹으면 괜찮고 어떤 와인을 먹으면 배가 크게 탈이 난다.)



기념품으로 어떤 와인을 사 가야 할지도 고민이고, 이따 식당에서 무슨 와인을 먹을지도 고민이고, 식당에는 와인이 어느 정도나 구비되어 있는지 몰라 직원에게 질문을 했다. 처음에 직원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설명하는 와중, 저쪽에서 그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이야기를 잘 마치고 그에게 가서 동태를 살펴보니, 왜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을 직원에게 다시 물어보냐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신혼여행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상황에서 다툰 적이 있다. 나의 경우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고, 변수가 있든 상대가 못 알아듣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부딪치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인 반면, 그는 뭔가 내가 이상한 질문(?)을 해서 상대 반응이 좋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 그 상황을 매우 스트레스받아 했다. 다른 사람에게 바보같이 보이는 것이 싫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낯선 외국에서 초등학교때부터 몇십 년간 살며 인종차별도 겪고 많은 일도 겪었을 테니 그만의 민감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불과 불의 만남 같아서, 직원하고 이야기를 잘 마치고 온 나에게 불쾌한 기색을 끼치는 그에게 나 또한 바로 화가 났다. 빈정거리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나서, 그렇게 부끄러우면 그냥 따로 구경을 하자고 했고, 그는 알겠다며 구경을 조금 하더니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SE-4e174fca-e03f-43a0-902f-c01ff85e6896.jpg?type=w1


사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이것저것 천천히 구석구석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그 점에서는 따로 구경하기로 하기를 잘 했다. 쫓기는 기분 없이 천천히 구경을 했다. 와인 말고도 곁들이는 음식이나 꿀 등을 많이 판매하고 있어 재미있었다.


SE-9d9da6cf-59bf-45d2-8dca-699ef121fccf.jpg?type=w1


구경을 마치고 바깥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왜 내가 내 생각을 가지고 하는 행동을 다른 사람한테 지적을 받아야 하는 건가. 왜 기분 좋게 여행을 와서 다른 사람 앞에서 큰 소리를 들어야 하나. 내가 판단력이 부족하거나 마냥 푼수인 스타일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할 걸 왜 뭐라고 할까. 가게에는 사람들이 하하 호호 하면서 기분 좋게 들어가는데, 왜 나는 이렇게 참담한 기분으로 앉아있는 걸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이성적인 부분도 많지만 감성적인 부분도 많으며, 감정기복도 꽤나 있구나, 소위 말하는 '드라마 퀸'인 부분도 있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렇다. 그래도 속상하잖아!)



SE-a193e309-c64d-491f-99b9-7137aee552f8.jpg?type=w1


아무래도 그냥 집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 기분으로 뭘 먹고 싶지도 않고... 또 무슨 말을 듣고 싶지도 않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밥을 먹고 싶진 않았다. 본인도 먹고 싶지 않아서 어디론가 간 걸거고... 애초에 여기 예약할 때도 심드렁해 보였다. 별로 먹고 싶지도 않겠지. 혼자 앉아서 퀘일스게이트 식당에 예약 취소와 사과 문자를 보냈다.



바깥을 둘러봐도 그는 없었다. 바깥을 둘러봐도 그는 없었다. 차에 갔더니 그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차에 타서 벨트를 맸다.



"엥, 밥 먹으러 안 가?"



"응, 그냥 가자."



"... 왜? 나 네가 따로 보자길래 기다리고 있었는데. 밥 먹으러 가자."



"... 그냥 가자."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그는 후회하지 않겠냐고 몇 번 물었고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 말했다. 그리고 차는 출발했다.



SE-b3181c5f-6fd4-42c0-a117-e06f7956318a.jpg?type=w1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 뭐가 문제냐고 말다툼을 했다. (차 안이라서 도망갈 수도 없다) 오랜 싸움 끝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내가 질문을 한 이유 와 직원의 반응 - 와이너리 안에 있는 가게라고 해서 판매용 와인을 다 구비하지 않음, 점원도 나에게 못되게 굴지 않았고 와이너리에는 일부 와인만 들어있긴 하지만 충분히 괜찮은 와인들을 잘 두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말해줬음 - 을 듣고는 자기가 오해해서 화가 났다고 말을 했다. 내 배우자가 실없는 이야기를 물어보고 상대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이 싫다고 했다. (이전에 가구박람회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음) 그리고 사실 따로 구경을 하자고 하고 나서는 차에서 게임을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있었다고, 화가 난 상태도 아니었다고.


나의 경우에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나름의 생각과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므로 나를 존중해 주었으면 하고, 설사 내가 누군가에게 실없는 질문을 하든, 상대가 반응이 좋지 않든 내가 그것에 전혀 타격이 없으며 내 궁금증을 해소하면 되는 것이니 그것이 싫다고 나를 보채거나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가장 싫다는 점을 말했다. 나에게는 존중과 따뜻함이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입장과 마음이 이해되었을 때는 이미 퀘일스게이트에서 한 시간 넘게 운전을 이미 해 버린 상황이어서 다시 식당에 갈 수는 없었다.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퀘일스케이트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그리고 난 후회했다. 난 화가 나고 속상하면 무언가 할 의지와 의욕을 다 상실해 버리는데, 이때는 그냥 화가 나더라도 일단 식당에 가서 궁금했던 음식을 먹었던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알고 보니 그도 사실 이 식사를 무척 기대했었다고 했다.



'그루님, 안녕하세요. 알겠습니다. 모시지 못하게 되어 아쉽군요. 다음 기회에 꼭 들러주세요.'


SE-b6562587-2582-4ebb-9bc1-ea2210dcd6d8.jpg?type=w1


우리의 밥은? 어쩌겠는가. 이제 돌아가는 길에 맛있는 가게는 없다. 가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먹어야 한다. 지나가다 보이는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그래도 궁금했던 '웬디스' 음식도 먹어 보고 캐나다를 떠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시골 가게라 그런지 또 백인들밖에 없고 또 우리를 약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약간 무서워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시끌시끌하게 이야기를 해서 좀 긴장했다.


SE-012cc45a-6768-46cb-b984-9c5a1e94e999.jpg?type=w1


후회와 화해의 햄버거를 먹고, 인터넷 연결이 될 때는 박명수 라디오 성대모사를 틀었다가, 신나는 음악을 틀면서 졸음과 싸우며 운전을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더 달려서야 삼촌 숙모 댁에 도착했다. 이렇게 서부 로키산맥 밴프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번 여행에서 서로 티격태격하고 많이도 싸웠는데, 그 덕에 결혼생활 2년 만에 드디어 스스로와 서로를 더 이해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싸움의 빈도가 매우 줄었다. 연인을 알아보려면 같이 여행을 가라더니, 우리의 경우에도 해당하는 말인가 싶다.


쉬고 나서, 바로 다음 날에 우리는 또 여행을 가야 한다.

keyword
이전 11화켈로나 슈퍼호스트 에어비앤비의 아름다움과 동상이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