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핑크 도어(Pink Door)
시애틀 맛집 검색하면 나오는 곳이고 한국 분들의 만족 후기가 많은 곳이었다.
다행히 캐나다에서 시애틀 오는 길에 예약을 성공해서 자리 걱정 없이 가는 길이었다.
반대쪽 클램 차우더 맛집에서 클램 차우더와 게살 랩을 맛있게 먹고 바로 또 먹으러 가는 길이다. 먹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 이 여행을 이끌고 있다. 그중 하나는 물론 나다. 기쁘기 그지없다.
(작은 골목에 있어 주차는 안 된다. 주차는 앞쪽 마켓 주차장(솔직히 불가) 또는 반대쪽 길에 있는 비싼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셔라.)
길 가다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문이다. 내비게이션을 안 켜고 갔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다.
벽밖에 없는데, 싶은 곳에 덩그러니 작은 문이 있다. 그리고 그 문을 열면...
아주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다.
보이는 쪽에서 햇빛이 보이는 듯한 먼 쪽에는 파티오가 있었고(손님이 가득했음), 거기서 미로처럼 오른쪽으로 더 들어가면 또 다른 식사 장소가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나무색 테이블에는 아무 손님도 앉히지 않고 있었다.
3시 예약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자리가 없는지 시간을 중시하는 가게인지 기다리라고 해서 좀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 뭔가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쪽에 자리가 아주 많이 남아 있어서였는데, 나중에 안쪽에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 길에 보니 거의 모든 자리가 만석이었다.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장소인가 보다, 생각했다.
해가 잘 들어오는 내부에는 한가로이 식사를 즐기는 가족 단위 사람들이 많았는데, 연한 파란색으로 칠해진 벽과 내부를 찍지 못해 아쉽다. 나는 분명 블로거이자 글을 쓸 사람이었지만 낯도 많이 가리고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는 게 두렵다.
내 기억으로는 서버가 지나치게 친절한 말투로 주문을 받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일등 공신은 구글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지도로 이곳저곳을 잘 안내해 주었고, 여차하면 이렇게 편안하게 한글로 메뉴판을 보여주니 말이다.
후기를 열심히 보면서, 또 끌리는 음식을 모두 모두 골랐다. 나와 마음이 같은 친구가 한 명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카프레제 샐러드와 브루스게타, 봉골레, 그리고 맛있다고 점원에게 추천을 받은 흰 생선 요리, 리가토니 앤 마마 미트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뭐였지.
사람 다섯에 메뉴 여섯 개라서 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물어보니 브루스게타는 딱 네 조각이라고 하니 간에 기별도 안 갈 게 뻔했다. 나중엔 많이 주문한 우리한테 고마워할 거다.
식전 빵으로 나온 하드 빵. 빵도 올리브 오일도 신선하고 맛있었다. 기본 메뉴마저 맛있다니 예감이 좋았다.
문제의(?) 브루스게타
한 사람당 한 개 먹으면~ 애걔걔!
여러 재료가 올라간 것도 아니고 사실 달랑(?) 토마토가 들어간 비주얼인데도 신선함이 입안으로 가득 전해져 왔다. "잘 익은 유기농 여름 토마토"라더니. 색상부터 내가 보던 토마토 색이 아니었고(노랑, 주황, 빨간색이 섞여 있음) 맛도 조금 더 독특하고 맛있었던 기억이다. 상큼함이 입에 가득해지는 느낌.
그 맛있는 토마토랑 모짜렐라 치즈랑 샐러드로 먹으면 어떻게 안 맛있어요
역시 이 샐러드도 아주 맛이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가 이 가게의 토마토였다. 하하.
점원이 이거 왜 맛있다고 추천했는지 잘 모르겠더라. 비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흰 살 생선과 곁들이라고 나온 소스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맛이 없다고 살짝 동의를 구해보려고 했는데 나 빼고 다른 가족 두 명은 맘에 들어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봉골레! 나에겐 가장 맛있었던 메뉴이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면이 얼마 없다는 점... 한 사람당 두 포크 정도는 먹었을까?
뭐가 맛있는 메뉴인지는 어느 메뉴가 가장 빨리 사라지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메뉴도 금세 없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저 리가토니라고 하는 구멍이 뚫린 파스타를 이전까지는 그리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는데, 이곳의 리가토니는 쫄깃하고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건 도대체 뭐였을까?
사람의 기억이란 정말 간사한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그와 이야기를 잠깐 나누어 보았더니, 우리 모두 이 가게가 그저 그랬던 것 같다고 결론을 내고 나도 그런 방향으로 글을 열심히(?) 썼다. 근데 혹시나 해서 구글 지도에 내가 남긴 평점을 보러 갔더니... 무려 5점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신선하고 맛있었고요, 쫄깃했고요, 생선은 별로였어요... 라니. 역시 사람은 써야 한다. 써서 기억을 남겨놔야 한다. 구글 지도에라도 뭔가 남겨놓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자연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사람이 만든 경이로운 문화를 보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좋아할 것이다. 나도 그런 것들을 다 좋아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즐기는 와중에도 입을 심심하게 하지 않아야 여행이 더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다. 기왕이면 맛있는 걸 배부르게.
맛있긴 했지만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로(충분히 배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저녁을 더 맛있는 걸 먹어보기로 했다. 이 부근에 해산물 가게가 무척 많던데. 오래간만에 랍스터 이런 호화 음식을 좀 먹어보는 걸까? 남몰래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어떤 메뉴든 괜찮다는 평온한 표정을 연기했다. 다 같이 후기를 서칭 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해산물 가게가 나오다가, 다른 평범한 가게가 후보로 등장했고, 나는 이러다가 갑각류를 못 먹어보고 갈까 봐 손에 땀을 쥐었다. 휴. 다행히 다시 갑각류 가게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제 저녁까지 몇 시간 동안 호텔에서 기다렸다가 나가면 된다. 나는 금세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