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행복은 내가 선택하는 것
몰라서 손해 보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었다. 다 먹고 나서 신나게 후기를 올렸는데 '여기는 00가 맛있고 00세트가 더 좋아요.'와 같은 후기를 볼 때의 기분 같은 걸 느끼고 싶지 않았다.
기왕이면 맛있고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신선했으면 해서 해산물 가게 네 군데 정도 후기를 보고 또 봤다. 두어 군데 정도는 별로인 것 같다는 직감이 왔지만 확신까지는 오지 않았다. 그때 일행이 별로라고 제쳤던 곳 중 하나로 가자는 연락이 왔다.
생각이 많은 내가 가진 작은 장점은 희망회로도 열심히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가졌던 직감을 열심히 털어버리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채우기로 했다. 별로라는 의심을 계속 가지고 소중한 저녁식사를 망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걱정거리를 해소해야 한다. 무슨 메뉴를 어떻게 주문해야 야무지게 먹을 수 있을지. 뾰족한 답은 모르겠지만 그중에서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메뉴 맨 위에 써져 있는 콤보는 별로입니다. 걔네 그거 쓸데없는(?) 것들 채워놓은 거예요. 단품을 주문해야 합니다. 뭘 주문했냐면...”
나의 욕심의 단점이라면 집요함 내지는 날카로움이 살짝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뭘 주문해야 하는지는 까먹어 버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대표메뉴는 안 된다, 까지만 어설프게 기억한 채로 가게로 향했다.
The Crab Pot Seattle
1301 Alaskan Way Pier 57, 1305 Alaskan Wy, Seattle, WA 98101 미국
캐나다의 주차요금도 나에겐 부담스러웠는데 미국에 비하니 상식적인 기분이다. 여긴 ‘모두의 주차장’ 어플도 없다. 주차비로 한 번에 만 원 이만 원은 우스운 이곳. 빌딩도 부럽지만 주차장을 운영할 그 땅을 가진 사람도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서민적인? 미국 시골 바닷가 가게 같은 인상의 가게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도 우리 말고는 다들 바깥공기를 직접 쐴 수 있는 파티오에 가득가득 앉아 있었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실내가 얼마나 편한데요!
드디어 주문의 순간. 위에 생각해 둔 딱 그대로 일행 모두에게 이야기를 했다.
"대표 메뉴 말고 다른 게 진짜래요!"
지금 생각해 봐도 설득력이 부족한 마무리였지만 그들 안에 내재된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조금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게 아니라 그냥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준 걸 수도 있겠다.) 그래서 스페셜티 메뉴 말고 내가 봤던 단품인 크랩 콤보로 주문하기로 했다. (아니, 근데 지금 와서 보니 크랩 콤보 말고 "시푸드 마켓"을 시키라는 얘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래서 크랩 콤보 중 도대체 뭘 주문할지는 안 알아봤지 않던가. 고민하다가(물론 가격대 때문에도 고민했고) 두 가지를 섞어 주문하기로 했다.
왼쪽의 메뉴가 사람들이 많이 시키는 메뉴 같았고 내가 인터넷에서 더 낫다고 본 것은 오른쪽의 Crab Combos였던 듯하다. 왼쪽을 대강 보니 소시지도 나오고 연어도 나오고 홍합이나 굴도 있어서 다양성은 있을 것 같다.
내 기억에는 크랩 콤보 중에서 제일 아래 것 반에(점보스노 등등) + 세 번째 메뉴(스노크랩&던지네스 크랩)로 반 주문했던 것 같다!
크게 기억에 남지 않은 빵이지만 와구와구 먹었을 거란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곳의 특징: 나무망치로 갑각류를 내리쳐서 살 발라먹기!
샤이닝의 주인공 뺨치는 표정 지으면서 찍은 명작 사진인데 그냥 올리기도 눈 부분만 올리는 것도 흉측해서 모자이크로 대신하기로 한다.
버터가 듬뿍 담긴 소스를 나누어주는데 장류에 익숙해진 한국인에게는 밍숭 한 소스일 뿐이었다.
와 르 르~(BGM: Colde - 와르르)
사정없이 망치로 갑각류를 깨서 발라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겉에는 나에게는 조금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양념이 가득 묻어있었다. 옥수수는 우리나라처럼 쫀득하지 않은 초당옥수수나 캔 옥수수 같은 그런 푸석한 맛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메뉴가 더 비쌌는데 그래서 그런가 네 번째 메뉴로 나온 게가 확실히 더 맛있었다. 넷이 먹었는데 총 네 개 주문했고 풍족하게 먹은 것 같다. 구황작물 감자도 넣어주는 센스.
'이 날도 먼저 가게를 다녀간 사람들의 친절한 후기 덕분에 나름 만족스러운 옵션을 선택하고 와서 기분이 좋았다',라고 쓰고 마무리하려다 혹시나 내가 남긴 후기는 없었던가 싶어 구글 지도에 들어가 보았다. 단품 시키세요, 글 보고 또 흡족. 하지만 홍합이랑 해산물 가득 담긴 사진 보고는 아차. 돈 아끼지 말고 알래스카 킹크랩 드세요, 후기 보고는 아차!, 한국인들만 알아볼 수 있는 외계어로 한꿁인이라써안쬭자릴줧엉욝 이라고 쓰여 있는 글을 보고 아차!(안쪽 자리는 우리 선택이 아니었던가?), 틻빭으려고꽈잉칞젏해요, 보고 또 아차!
결국 완전한 후회 없는 선택이란 없다. 아쉬운 경험 속에서도 즐겁게 기억할 점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만족해 놓고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며 아차, 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농담.) 그럴 땐 잠시 아차, 하고 또 금세 좋았던 기억으로 마무리하는 게 최선이자 최고라 생각한다.
관람차 바로 옆에 있는 정겨운 식당에서 맛있고 귀한 갑각류를 탕탕 내리쳐서 먹을 수 있어 낭만적인 기억을 남긴다. 다 먹고 나오니 해는 이미 저물고, 어두워진 길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짧은 하루의 여행이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나마 회상해 본다. 그리고 그 맛있는 게를 먹을 때 깊은 잠에 빠져 모두를 탄식케 하던 어린이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잠에서 깨서 관람차를 보곤 관람차에 타고 싶다고 한 덕분에, 관람차에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거기서도 작은 해프닝은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