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의 맛 10화

맛있는 그림 그리기

그림의 떡

by Becky

인생에서 가장 배고픈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 바로 전 4교시.”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이었던 탓인지 아니면 그저 그때의 감성일 뿐인지 모르겠지만 4교시만 되면 그렇게 배가 고팠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급식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시설이 있기는 했지만 야간자율학습하는 학생들이 석식을 먹을 때나 매점에서 간식을 사서 먹을 때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대신급식차가 교실 앞까지 왔다.


몇몇 친구들은 매달 받는 급식표를 주간으로 잘라 책상에 붙여놓거나 코팅해서 책갈피처럼 사용하며 오늘의 점심 메뉴를 확인했다. 기억하기로는 반찬이 세 가지 나오면 그중 한 가지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소시지볶음이나 핫도그, 크로켓 같은 자극적이고 맛 좋은 음식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매주 수요일은 스파게티와 수프, 모닝빵이 자주 나왔다. 급식표에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형광펜을 칠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급식표를 받으면 수요일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형광펜을 칠했던 것 같다. 가끔 수요일이 공휴일인 날이 껴있으면 세상이 무너질듯 소리 지르기도 했다.


12시 20분이 점심시간이면 12시 10분부터 급식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복도로 들어선다.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날 음식 냄새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복도고 교실이고 가득 찬다. 급식차가 올 시간이 되면 반 전체에 긴장감이 흘렀다. 선생님까지도 술렁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빨리 끝내고 싶으면 잘 들어”라며 장난과 진담이 섞인 말을 자주했다. 물론 씨알도안 먹혔지만.


이미 다리 한 짝은 책상 밖으로 나가 있거나 선생님 모르게 뒷문으로 가 줄을 서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제각각이었다. 밥에 는 별로 관심 없는 친구도 있었고, 가장 먼저 먹겠다며 열정을 불 태우는친구도있었다. 나는간이콩알만해서선생님에게혼날까봐 묵묵히 그날 메뉴를 상상하며 교과서에 낙서하길 즐겼다. 스파게티가 나오는 날이면 식판을 그리고 소스를 먼저 그린 후 소스 옆으로 면발을 그렸다. 수프에는 파슬리가 살짝 뿌려진 것 같은 네모난 점을 몇 개 그리고 주먹만큼 작고 동그란 모닝빵 하나를 옆에 그렸다. 또 핑킹가위로 자른 듯 지그재그 모양의 피클, 1인용 딸기잼까지 그리면 화룡점정! 물론 낙서하다가 걸리는 날에는 “넌 그림까지 그리냐?!” 날벼락이 떨어지곤 했다.


그리는 것만으로도 참 맛있다. 식판에 급식을 받을 때도 일부러 내가 그린 그림과 최대한 비슷하게 담아 먹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음식은 맛으로만 즐기는 게 아니라는 걸 아주 사소한 기회에 조금 알게 됐달까. 가끔 그림으로 보는 요리책이나 음식 그림이 많이 삽입된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나 배가 고파진다. 지금은 당장 먹을 수 없으니 한번 그려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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