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의 맛 12화

날것의 맛을 아시나요?

제주 해녀의집, 물회

by Becky

날것이 좋다. 회는 물론이고 문화까지도 말이다. 간장이나 소금을 찍어 입에 넣으면 쫄깃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회 한점을 위해서, 외부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아 불편하거나 모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 먼 길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제주를 좋아한다. 불필요한 관광지 개발, 도로 확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안타깝지만 내륙에서 느낄 수 없는 풍경과 먹거리에 둘러싸여 있노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특히 날것을 사랑하는 내게 ‘해녀의집’은 마음의 안식처랄까.


내게 바다 날것의 진정한 비린 맛을 알려준 건 제주도 성산 쪽에 있는 해녀의 집이다. 제주바닷가를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꽤 유명한 가게는 흰 전지나 비닐을 테이블에 뒤집어씌워 놓고 장사한다. 손님이 많은 만큼 테이블 정리를 빨리하기 위해서인 줄은 알지만이미 그곳에서는 ‘날문화’를 즐길 수 없다는 생각에 뒷걸음 치게 된다. 성산에 갔던 당시에도 딱히 해녀의집에 가겠다고 마음 먹은 건 아니었다. 성산일출봉 근처 숙소에서 눈에 보이면 아무데나 들어가자는 심보로 무작정 해안도로를 걷다가 아주 작고 허름한 해녀의 집을 발견한 것이었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길을 오로지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라이트에만 의지해 걷다가 만난 음식점이었기에, ‘날문화고 뭐고 잘 모르겠고 일단 들어가자’는 마음이 앞섰다. 대단한 음식을 파는 곳도 아니었다. 개불이나 멍게, 해삼 등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모둠해산물,해산물을 넣고 끓인 라면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일단 모둠해산물과올레한병을시켰다. 매화처럼붉은 비단멍게, 꼬들꼬들하고 색이 짙은 해삼, 붉고 끈적한 개불, 얇게 썰었지만 살이 단단한 전복, 방금 삶은 듯 따뜻한 소라 등이 상추 위에 차곡차곡 쌓여 한 접시 가득 나왔다. 쌉싸래한 와사비 조금 묻혀 간장에 찍은 후 꼬들꼬들한 해삼 한 점,주황 불빛 주위를 나는파리 몇 마리 손으로 쫓아가며 소주 한 잔, 간이 의자에서 부채질하다 까무룩 잠든 할망이 틀어 둔 라디오 소리와 파도 소리 그리고 칠흑 같던 바깥. 술도 술이지만 분위기에 취했던 날. 그 두 시간의 낭만을 충분히 즐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날이었다.


해산물 덕에 주정뱅이 인생의 제2막을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선한 해산물을 찾아 다녔지만,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차선책이 물회였다. 그 만큼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없다면 해산물이 들어간 맛있는 음식을 먹겠노라. 한치, 오징어, 광어, 연어 같은 회가 들어간 것 말고 완전히 해산물만 가득해 젓가락질만으로도 부족함없는, 찬 육수 덕에 해산물 살이 단단해져서 씹는 맛이 한층 풍부한, 소면 풀어 먹으면 달곰한 맛이 스며들어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싶은 물회. 날이 점점 더워지는 요즘에 더욱 간절해지는 차였는데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물회를 먹으러 가야겠다. 어쩌면 운이 좋게 또 다른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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