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의 맛
콩에 대한 불호를 주장했던 지난 행적을 돌이켜 보니 남사스럽다. “맛있는 콩이 왜 싫어?”라는 질문에 무심코 “NO!”를 외쳐왔지만 사실 “콩이 왜 맛있냐” 되레 큰소리 칠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다. 콩을 싫어 하지만 여름만 되면 엄마가 직접 콩을 갈아서 짜낸 콩물에 소금 한 꼬집 넣은,조금 텁텁하지만 달곰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맴돌아 자주 군침을 다신다. 콩을 싫어해도 콩국수는 좋아하고, 연두부는 찾아서도 먹는다. 이쯤 되면 콩을 싫어한다기보다 어린이 입맛이라 그렇다는 변명을 슬그머니 꺼내본다.
밍밍한 국물에 소금 반 숟가락 넣고 휘휘 저어 들이켜면 속을 든든히 채울 수 있고,얼음 동동 띄워 먹으면‘더위여 물럿거라!’ 맞서 싸울 수 있는 음식이라고 말하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그건 콩물의 힘이다. 두유와 색은 같은데 두유는 아니고, 두부 맛이 나는데 두부는 아닌 오묘한 콩물. 이 콩물에 삶은 소면을 담가 몇 젓가락 후루룩 넘기면 보양식이랍시고 삼계탕, 오리 백숙 먹는 것보다 백만 배 낫다. 이 사실을 20대 후반 들어서야 깨달았다니. 그간 여름에 난 뭘 먹고 다닌건지.
무더웠던 재작년 여름, 평일에는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더위를 피했지만 주말이면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며 에어컨을 틀어달라 시위했다. 그날도 좌우로 돌아가는 거실 선풍기 앞에 누워 돌아가는 선풍기 머리를 따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뒹굴뒹굴 굴러 다녔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게 되자 어느날 김치냉장고에 기대어 마늘을 까던 엄마는 내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들고 있던 마늘 한 덩이를 내게 던졌다. 비폭력 시위, 무력 진압의 현장에서 최대한 빨리 그 지역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끼얹고 나오면 시원하다나 뭐라나. 어쨌든 마늘로 얻어맞기만 하고 아무 성과 없이 강아지와 거실 바닥을 뒹굴고 있을 때, 엄마가 옥상에서 물에 잔뜩 불은 콩을 한 대야 가지고 내려왔다.
더운 것도 짜증 나는데, 콩이라니. 이미 마늘 폭탄을 맞은 뒤라 먹진 않더라도 거들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 곁에 다가갔다. 진득한 콩물을 얻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콩물 짜는 법을 설명 하긴 쉽다. 하나, 콩을 불린다. 둘, 불린 콩을 간다. 셋, 간 콩을 힘껏 짠다. 그러면 끝! 하지만 콩을 불리는 시간은 물론 간 콩을 헝겊에 담아 힘껏 짜내는 과정도 시간과 체력을 크게 할애해야 하는과정이니 좀 처럼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엄마가 믹서기에 갈아낸 콩을 헝겊에 퍼담아 쥐어 짜면서 벌크업 팔뚝을 얻었다. 대신 땀이 흥건하다 못해 옷이 홀딱 젖을 만큼 많이 흘러 갈증이 났다.
그렇게 한 대야의 콩을 짜서 얻어 낸 콩물은 고작해야 1.5리터 패트병 일곱 통이 전부였다. 남은 콩 건더기는 잘 모아뒀다 비지찌개를 해먹으면 되는데, 어마어마한 건더기 때문에 한 달 가량 식탁에 오르게 마련이다. 노동 후의 만찬은 이 세상 무엇보다 맛있지. 제 아무리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땀을 뻘뻘 흘려 얻은 음식은 귀하다. 콩국수의 맛을 알게 됐으면서도, 음식점에서는 그 맛을 느끼기 어려워 사 먹지는 않는다. 직접 해먹어야만 먹고 싶은 음식이랄까. 혼자 살게 된다면 아마 여름만 되면 엄마에게 콩물, 콩물 노래를 불러 얻어낸 콩물에 얼음 동동 띄워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켜겠지. 그래도 어쩌면 혼자서 해 먹어야만 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을 위해 체력 단
련이라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