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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Dec 19. 2024

핀란드에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헬싱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가득입니다.

12월의 헬싱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다.


헬싱키에 도착하고 이튿날에는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헬싱키는 한국보다 7시간이 늦었다. 한국 오전 11시는 헬싱키는 오전 4시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마음먹고 해야 될까 말까 하던 새벽 4시 기상이 여기서는 쉬웠다. (그리고 저녁 7시만 되면 잠이 쏟아진다..)


눈을 뜨고 한 일은 잠깐의 명상이었다. 마음이 불안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백수가 이래도 되는 걸까, 도대체 이 나이에 무슨 글을 쓰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아픈 엄마도 생각나고 떨어져 가는 통장 잔고도 생각나고, 따뜻했던 월급 생각도 났다. 나는 과연 이 모든 불안을 뒤로하고 쓰고 싶던 글을 완성하고 앞으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안되면 어쩌지?’


무섭다. 하지만 되돌아갈 곳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소망이 깊은 사람은 되돌아갈 곳이 없다. 그래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썼다. 부끄러운 글이라도 어쩌랴. 쓸 수밖에 없는 것을.


4시간 남짓 글을 썼을까. 오전 9시가 되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글을 쓰러 핀란드를 가겠다는 이 미친 계획에 짝꿍이 함께 했기에 할 일 없는 짝꿍을 위해서 오늘은 동네 마실을 나가기로 했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VR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버거킹 하나와 슈퍼마켓 2개 정도가 다라고나 할까. 그래도 5층 이상은 없는 낮은 북유럽 풍의 아파트와 하얀 눈이 어우러져 풍경이 어여뻤다.


핀란드에서 가장 어여쁜 것은 아이들이다. 추운 겨울에도 눈으로 소꿉놀이를 즐기는 꼬마, 엄마 손을 잡고 썰매를 끌고 가는 꼬마, 형은 썰매를 끌고 더 어린 동생은 썰매를 타고 있는 귀여운 꼬꼬마들이 단조로운 풍경에 색감을 더한다.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며 동네를 한 바퀴 빙 도니 배가 고파왔다. 가장 만만 한 것이 버거킹이라 생각해 버거킹에 들렸다. 무시무시한 핀란드 물가지만 그래도 햄버거는 쌀 것이라는 기대로. 하지만 비쌌다.. 핀란드 물가가 비싸도 한국보다 조금 더 비싼 수준이라는 것이 슬픈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비싼 밥을 잘도 사 먹으면서 핀란드에서는 사치인 것만 같아 햄버거 세트를 한 개만 사들고 오늘 저녁부터는 ‘내가 바로 요리사!’가 되겠다고 당당히 선언해 본다. 그래도… 식재료는 싸겠지.


동네 마실과 햄버거 하나를 천천히 먹어도 아직 오전 11시였다. 겨울의 핀란드는 해가 뜨는 시간이 딱 6시간 정도이다. 귀하디 귀한 시간들이고 절호의 기회 같은 순간들이다. 해가 뜨는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험을 나가는 용사가 칼을 차듯 결연한 의지로 지갑을 외투 안쪽에 단단히 집어넣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헬싱키 시내를 나가보리라.


헬싱키 역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시간 부자인 백수들에게는 적당한 거리였다. 헬싱키는 서울과 비교하면 한가하고 여유로웠다. 일단 사람이 서울보다 없어 시골 같은 분위기다. 그래도 어디에나 직장인은 있는 법. 점심시간인지 삼삼 오오 직장인들이 나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헬싱키의 대낮은 하늘에 해가 떠 있어도 꼭 저녁 같은 느낌이었다. 구름이 많기도 했고 맑은 하늘이라고 해도 히말라야에서처럼 해가 쨍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스름한 빛들에 싸인 도시는 새벽녘의 바다처럼 반짝였다. 동네 도서관도 들려보고 도대체 무슨 가게들이 있는지 쇼윈도를 유심히 보면서 걸었다.


그렇게 걸어서 헬싱키 대성당에 도착했다. 새하얗고 커다란 대성당의 첫인상은 단정한 느낌이었다. 헬싱키 역사라도 좀 알아둘 것을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맑은 수녀님 같은 대성당의 단정한 모습에 심취해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대성당 앞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장이 열려 있었다. 작은 나무집 하나하나에는 크리스마스 용품을 팔고 있었다. 초콜릿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고 엽서나 털양말을 팔기도 했다.


헬싱키의 시내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50년대 재즈풍의 캐럴이 흘러나오고 오렌지색 조명이 곳곳에 달려 있었다. 상점들은 모두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하고 아이들은 우주복 같은 방한 복을 입고 그 앞에서 신기한 듯 트리를 구경했다.


핀란드 헬싱키는 볼 것이 없어서 짧게 머문다고들 하는데 임시 정착민인 나에게는 재미있기만 한 도시였다. 춥지만 따뜻한 도시 헬싱키. 그리고 한 달 동안의 글쓰기와 여행. 어떤 한 달을 보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잘 적응 중이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파란 하늘과 눈. 헬싱키 중앙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들이었다.
어스름한 빛과 눈, 핀란드의 건물들이 어여뻤다.
오후 2시쯤인데 저녁과 같은 날씨. 눈이 부시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짝반짝 빛난다.
헬싱키 대성당.
헬싱키 대성당의 내부. 내부도 깨끗하고 단정한 느낌이었다.
헬싱키 대성당 앞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오두막 같은 가판대에서는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낮게 깔리는 캐럴까지 더해져 따뜻한 분위기였다.
꼬꼬마들. 우주복 방한복이 너무 귀엽다; 트리 앞에서 떠나지 못해서 너무 귀여웠다.
헬싱키 시내는 크리스마스 전구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멀리서 찍은 꼬마. 소꿉놀이 장난감들을 한가득 가지고 나와서 아침 일찍부터 소꿉놀이 중이다.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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