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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tage appMaker Jul 08. 2024

이타적 유전자

일상을리뷰

이타(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의 불교 용어


1

Animal Friendship by Carl Reichert - Artvee



대학졸업 후, 사회인이 되면서부터 악설, 선설을 자문 할 때가 많았다(생각해보면 20세기에는 사유-思惟-의 방법으로 삶을 토론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목적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특성상 “개인의 이익추구”가 극대화된 곳이 “회사생활”이다. 회사 구성원들의 행동을 보면서 “인간은 악한 존재일까? 선한 존재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궁금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악 또는 선”같은 사고가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경험상 모든 인간은 문제 발생 시 (1) “생존”을 맨처음 생각하며 그 순서에 걸맞는 (2)“방법을 선택”하게된다. 그 방법에 “자신만 우선(악)”이 된 것과 “타자도 우선(선)”이 된 것이 다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인간만의 지성, 또는 감성, 영혼”을 주장하는 글에 공감하지 않는다.  어린시절에 감동깊게 보았던 프로그램이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동물의 왕국”이었다보니 “동물”들의 삶을 인간의 역사에서 학습, 모방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STEM들에게 Outlined 글쓰기는 컴퓨팅 사고방식을 체화시켜준다.


이런 점을 보면, 이기적이다 이타적이다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능을 동물학자들의 시각으로 분석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는 다는 것이 흥미로울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 사람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2


인생은 생존이다. 생존이 없는 인생은 존재할 수 없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모든 “문제”의 0 순위는 생존의 이슈에서 발생한다. (1) 살아야 하는가? (2) 말아야 하는가? (3)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Process를 거치게 된 이후에 (4) “다양한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삶의 질”이 결정된다. 그리고 “가치관”이 형성된다.


결국 “어떤 식으로 생존해왔는가?”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무관심하거나와 같은 결과물을 얻게 된다. 그리고 “어떤 식의 생존 방법”을 크게 나누다보면 (1) “나만 보고 살아왔는가?”, (2)“세상을 보고 살아왔는가?”, (3)“주인이 만든 울타리만 보고 살아왔는가?”로 분류될 수 있다.


경험상 가장 많은 불만과 우울함을 말하는 사람은 (1) “나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로 되어 있기에 세상의 모든 결정에 불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이유는 세상이 자신의 의지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3


가끔 자신의 영역에서 강한 신념을 가지고 타자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보게된다. 대부분 (1)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나를 떠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은
내가 모르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 세상의 중심이 나


겉으로는 타자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속으론 자신의 무능과 나약함을 미화시키고 있다. 이런 삶이 쓰는 글의 특징은 “자신을 증명”하려는 것에 지면을 모두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세상이치를 자신의 감성의 잣대로 말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세상을 말하며 “이타적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타적”이라는 말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


4


다시 돌아가서, 삶에 문제가 있다면 염세적이거나 타자 비판적일 수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오래가면 “나머지 인생”마저 망가진다. 그러므로 조금 더 현명해지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타자 비판의 일상화”는
너님이  혼자 능력으로
살 수 없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생존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세상의 중심을 내가 아닌 우리로 바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포함된다.


“생존”을 위해 타자를 아끼다보면 본성까지 변할 수 있다(나이들어 연쇄긍정마를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이들어 먹물 인사이트를 뿜뿜대면서 “너님보다 우월한 나”를 외치며 “선생짓” 하는 것보다 “입은 닫고 지갑을 여는 현명함”을 체화한다면 그 행위자체가 즐거워질 수 있다.


그것이 “이타적 행위”이다.


위의 글은 “분명”

늙어가는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취향이 감정이 되고 감정이 태도가 되며 다름을 무시한다면”

내 자신을 “단디 할 때”가 된 것이다.


DMX - Party Up (Up In Here) (Enhanced Video, Edited)


(뜬금포) 전세계 힙합 매니아들에게 목사임을 숨겼던 Bro~ DMX.  배반감을 느꼈지만 다름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의 힙합이 가스펠 필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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