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원 복도는 어두웠다. 텅 빈 강의실마다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그중 한 강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을 뿐이니까. 노트북을 꺼내 타닥타닥 문서 작업을 했다. 나는 검은색 슬리브리스에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고 검은색 샌들을 신은 차림이었다. 다리를 꼬고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글쓰기에 집중했다.
2. 회사였다. 나는 넷플릭스 한국 지사에 다니고 있었다. 다음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어떤 게 좋을까, 팀원들과 아이데이션을 했다. 그러다 전화가 걸려와서 나는 회사 복도로 나갔다. 앞서의 대학원 복도처럼 회사의 복도도 어두웠다. 짙고 푸르스름한 어둠이라면 무서웠을 텐데, 갈색의 부드러운 어둠이었다. 여보세요. 전화 속 여성은 병원이라고 했다. 나는 부드러운 갈색의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유럽식의 고풍스럽고 으리으리한 대연회장으로 통했다. 높다란 연회장은 3층까지 이어져 있었고 나는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분주했다. 그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차례로 훑은 뒤 옆을 보니 다시 앞서의 대학원 강의실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요? 나는 전화 속 목소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전화 속 여성은 현재 우리 엄마가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전화기를 붙잡지 않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엄마 상태가 너무 심각하고 증세가 급박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전에 보호자인 나에게 전화를 한 거라 했다. 병원이 어딘데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안산이라고 했다. 그럼 일단 연회장에 있다가 병원에서 전화를 주면 바로 병원으로 이동하겠다고 했다. 지금 내가 서울에 있는 게 아니니 오히려 더 빨리 병원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엄마가 병원 침대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그래놓고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일을 해야 하잖아.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잖아. 팀원에게만 맡길 순 없지. 팀원은 무슨 죄야. 그래, 마냥 엄마만 생각할 순 없어. 병원에 계시다니 병원 사람들이 잘 돌봐주겠지. 일단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자. 거기서 기다리자.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과 일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지만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3. 집으로 돌아왔다. 잠이 든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쯤 됐을까. 막 깨어난 나는 남편에게 엄마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원에선 아직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가 아픈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병원에서 전화를 줄 테니 그때 오라고 해서... 라고 말끝을 흐렸다. 남편은 당장 옷을 입으라고, 씻지도 말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럼 회사는? 학교는? 내가 묻자 남편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선 일과 학교, 책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법이라 했다. 그건 우리 엄마라고.
나는 엄마를 후순위로 미뤘다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펑펑 울며 옷을 끌어다 입었다. 혹시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오늘 까만 옷을 입고 병원에 갈까. 하늘색 반팔티를 입다 말고 다시 까만색의 옷들을 끌어다 입으며 지금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이 상황에서 벌써 엄마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거냐, 라는 힐난과 만약을 대비해 철저하자는 거지, 라는 변호의 감정이 속에서 맞불을 놓고 있었다.
4. 그럼 학교는? 내가 묻자 남편이 대답한다. 응? 그럼 학교는? 학교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쥐어짜 말해본다. 남편은 아예 돌아누워 대답을 안 한다. 아. 거긴 학교가 아니지, 회사지, 그래. 회사... 회사는? 남편이 또 응? 되묻는다. 회사는 어떡해? 남편이 대체 무슨 소릴 하냐는 듯 아무 대답이 없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모든 게 꿈이었구나. 뺨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흐른다. 볼이 뜨겁다. 오늘은 정말 회사에 못 갈 것 같아. 그 소릴 들은 남편이 다시 내쪽으로 돌아누워 등을 도닥인다. 나는 이마에 축 늘어진 한쪽 팔을 올리는 체하며 남편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나는 지금 마감 중이다. 마감 중에 휴가를 낼 순 없는 노릇. 꿈에서처럼, 2018년 5월의 그날처럼, 나는 다시 또 회사로 돌아가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엄마를 뒤로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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