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트 볼라뇨의『아메리카의 나치문학』 리뷰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 같은 나치문학과 파시즘에 대해 다뤘다는 점에서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나치의 소년 친위대였던 귄터 그라스처럼 이 소설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 역시 소설 소재와 맞닿아 있는 삶을 살았다. 파쇼정부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목격했고 수감되기도 했으니까. 『게걸음으로』의 나치즘이 네오나치즘으로 얼굴을 바꾸고 인터넷 시대에도 지속되는 것처럼 볼라뇨가 만든 31명의 파시스트 작가들 중 2029년이 사망년도인 몇 명을 보면 극우 파시즘의 어떤 우스꽝스러운 꾸준함(?)을 가늠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끝장내야 하나? 나치들은 왜 그렇게 오래 살지? 헤스를 봐라. 자살하지 않았다면 백수를 누렸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장수하게 하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거의 불멸의 존재로 만드는 걸까? 그들이 흘린 피 때문일까? '책'의 비행 때문일까? 아니면 의식의 도약 때문일까? (pp 141~142)
이 책의 제목처럼 1996년작인 이 소설은 부록으로 「괴물들을 위한 에필로그」까지 달아 마치 작가사전처럼 보이지만, ‘아메리카’와 ‘나치’의 그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현실성을 배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어떤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의미 있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가 갖는 의미를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도 가져간다. 모든 것은 허구이지만 그것은 현실을 반영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시즘을 향한 볼라뇨의 사르카즘은 유효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200여 권의 가짜 책과 110여 명의 가짜 인물들은 눈물 나게 한심하고 처참하리만치 웃기다. 예를 들어 에델미라 톰슨 데 멘딜루세에 대한 볼라뇨의 평을 보자. 에델미라 톰슨 데 멘딜루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류사회의 귀부인으로 목가적이며 종교적인 시와 에세이를 쓰는 이였다.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글을 쓴 적은 드물었으나 오히려 정치적으로 공허하고 무뇌의 글을 썼다고 한다. 에델미라 톰슨 데 멘딜루세가 영예의 극우 문학인 사전에 등재된 이유다.
이러한 이야기는 힘이 세다. 유치하지만 이상하게 슬프고 그래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름다운 글은 사랑스러우니까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그는 냉혹했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거나 아주 적었다. 그리고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멋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칠레 공군의 전직 장교처럼 보이지 않았다. 전설적인 암살범처럼 보이지 않았다. 공중에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남극까지 비행했던 위인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멀리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pp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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