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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Aug 16. 2021

파티도 훈련이 필요한가요?

유전학과 삶 #5

환아의 엄마: "She's party trained."

나: ????????? oh, okay. (노트에 "파티 훈련?"이라고 우선 작성해둠)


클리닉이 끝난 후 슈퍼바이저에게 아니, 미국은 애들 저렇게 어릴 때부터 파티도 훈련을 시키냐, 신기하다, 이런 얘기를 했더랬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하하하.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때의 난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니까.

그럴 수 있어!! 괜찮아!! 하하하.




Cincinnati Children's Hospital은 미국 내 어린이 병원 중 3위를 할 만큼 시설, 의료진, 교육, 연구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병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유럽 등지에서 어려운 수술을 해야 하거나 특이한 케이스들이 있어서 현지 의료기술로는 안 되는 경우 비행기를 타고라도 오는 병원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 병원에서 유전상담학 석사 내내 클리닉을 돌며 실습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다양하고 특이한 클리닉들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선생님들과 일할 기회도 있었고, 또 다양한 환자들과 가족들을 만나는 귀한 경험도 했다. 


대학원 2학기쯤, metabolic disease 클리닉에서 실습을 하던 때였다. 대학원 2 학기면 상담할 때 한 두 가지 역할을 맡아서 할 때라 열정이 넘치기도 하고 긴장도 많이 할 때이다. 정말 준비를 많이 해가는데도 긴장한 탓에 준비해 간 것을 다 못 보여줘서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하는 시기이다. 나는 어렸을 적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 덕에 영어를 조금은 수월하게 하는 편이었는데도 공부하는 것이 "상담"이다 보니,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의 의미를 깨우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지금도 완벽히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colloquialism이라고 불리는 용어들, 즉 일상에서 사람들이 쉽게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같은 것이 외국인인 나에게는 정말 어렵다. 미국의 중소도시나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일수록 영어 사투리도 심하고, 이런 colloquialism이 들어간 표현도 많이 쓰는데, 그런 환자/가족들을 이 병원에서 꽤 많이 만났었다. 


어쨌든. 

그날 난 만 4살의 예쁜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가 follow up visit을 왔을 때 만났다. 이 어여쁜 여자 아이는 Late-Onset Pompe Disease (LOPD)가 있는 아이였다. 신생아 대사검사에서 의심 소견이 있어 유전자 검사를 해본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다행히 아직까지 증상이 없어 일 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만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Pompe disease는 약 100,000명당 1-2.5명씩 나타나는 질환으로, GAA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아 몸속에 glycogen (글리코겐)이 쌓여서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우리 몸속에는 GAA 유전자가 두 개 있는데 (부모님께 하나씩 물려받음) 두 유전자 모두에 돌연변이가 생겨야 발생하는 질환이다. 글리코겐은 글루코스, 즉 포도당이 여러 개가 합쳐져서 나중에 에너지로 사용하기 편하도록 간과 근육에 저장된 형태를 말하는데, GAA 효소 (acid alpha-glucosidase)가 이를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GA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GAA 효소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글리코겐이 분해가 잘 안되고, 분해가 안되면 간과 근육에 쌓여 몸에 이상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인지영역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Reference: https://www.osmosis.org/learn/Glycogen_storage_disease_type_II_(NORD)

Pompe disease는 infantile-onset과 late-onset으로 나뉜다. 

Infantile-onset이 더 심한 증상을 나타내는데, 보통은 만 1살 이전에 (평균적으로 만 4달 때) 증상이 나타나고 비후성 심근증 (hypertrophic cardiomyopathy)이나 심장비대 (cardiomegaly) 등의 심장 증상을 동반한다. 근육에 힘이 없기 때문에 잘 먹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근육을 움직이기 힘들다 보니 발달장애도 나타난다. 그 외에도 청력을 잃거나, 간이 비대해지거나, 대설증이 생기거나, 호흡부전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 만 2세 전에 사망하게 된다.

내가 만났던 환자처럼 late-onset인 경우에는 증상이 나타나는 나이가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힘들다. 평균적으로 38세쯤 진단을 받는다고 하는데, 어떤 환자는 유아기 때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70대에 나타난다고 보고가 되어 있다. 주요 증상으로는 하지 근력 저하와 호흡부전이 있고, 유아기 때 진단을 받을수록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infantile-onset과는 다르게 심장 증상을 동반하지 않는다. 간 비대, 대설증, 수면무호흡증, 척추측만증, 삼킴 곤란, 관절 구축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치료는 ERT (emzyme replacement therapy)로 하는데, GAA 효소를 1-2주에 한 번씩, 약 4시간에 걸쳐 혈관으로 넣어주는 것이다. 물론 환자마다 치료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지만, ERT는 증상을 완화시키고 증상 발현을 멈추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폼페병 환우회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폼페병 환자는 약 1280명 정도 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폼페병에 대한 인식 개선과 그 외의 다양한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https://kpds.or.kr/



나는 이 날 지난번 방문 때와 비교했을 때 변한 것은 없는지 병력 조사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이의 발달 사항에 대해서 물어보는데, 뛰거나 움직이는데 문제는 없어 보여서 내가 가지고 있는 체크리스트에 체크를 하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아이의 엄마가 나에게 "she's party trained"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대략 이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oh okay" 하고 포커페이스를 하며 (이미 늦었지만 ㅎㅎ) 뭔가를 끄적거리며 넘어갔다. 


무사히 세션을 끝낸 후 슈퍼바이져와 세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역시 미국 애들은 다르구나 생각하며, 신기해하며, 슈퍼바이저에게 신나서 얘기한 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를 삭제해버리고 싶다... 알고 보니 party training이 아니라 potty training이었던 것이다... 난 potty training이라는 말을 그때 당시 몰랐고, 그래서 내가 아는 party라는 단어로 들었고, 그렇게 난 졸지에 4살짜리 어여쁜 여자 아이와 그 엄마를 파티광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미국 애들은 다 그렇구나 일반화시켜가며.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 이후로 친구들에게 이런 용어들 중에 내가 모를 만한 것을 알려달라며 족집게 과외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나는 조금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 




유쾌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어 나의 흑역사를 공개했지만, 내가 만났던 이 예쁜 4살 여자 아이는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다리에 살짝 힘이 풀려 넘어지는 일, 밥을 먹다가 사레에 들려 기침을 하는 것, 뛰다가 숨이 차는 것 등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이 이 아이에게는 "혹시"라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오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두려워하며 주저앉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이 가족이 나는 참 감동적이었다. 즐거운 날도 있을 것이고, 삶이 무너지는 날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지나가는 하루도 있을 것이다. 병원에 오는 그 하루, 몇 분 동안 본 것으로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이 가족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슬프지만은 않았던 만남으로 기억된다. 




이미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2010년 개봉한 Extraordinary Measures (특별조치)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Pompe disease의 치료법인 ERT를 개발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유전상담사가 되기를 꿈꾸며 봤던 영화라 기억력이 나쁜 나도 다 기억나는 그런 영화이다. 유전상담사를 꿈꾸거나, Pompe disease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합니다 :)

Reference: https://www.amazon.com/Extraordinary-Measures-Harrison-Ford/dp/B002ZG97J2



2021년 8월. 

바쁜 일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드디어 써낸 이 글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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