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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Sep 16. 2021

다~~ 했다고요. 다~~

유전학과 삶 #6

(제목에 있는 그림 reference: https://www.advancedtelegeneticcounseling.com/whole-exome-sequencing/)



정말 할 수 있는 검사 다~~ 했다고요. 다~~

근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우리 아이는 완벽했다고요.




UCLA 소아 유전학과에서 일할 당시, 나는 가끔 신생아 중환자실(NICU)이나 소아 중환자실(PICU)로 컨설트를 나갔다. 사실 중환자실로 가는 컨설트가 반갑지는 않았다. 많은 경우 가벼운 증상으로 입원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한 번은 내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환자의 차트를 볼 일이 생겨서 열었다가 환자가 사망했다는 기록을 보고는 심장이 차가워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 환자가 사망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었다고 해서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PICU에서 만 18개월의 여아에 대한 유전상담 컨설팅이 들어왔다. 차트를 보니, hydrocephalus, seizure, developmental regression 등의 증상을 가지고 있고, 현재는 hydrocephalus shunting 시술과 seizure의 조절 및 맞는 약물 선택을 위해 중환자실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의 부모님이 exome sequencing이라는 유전자 검사에 관심이 많으시고, 유전학적인 질문이 많으시다는 이유로 유전상담 컨설팅이 들어온 것이었다.


* Hydrocephalus (수두증) - 뇌척수액이 뇌실과 지주막하 공간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증상을 말한다.

* Hydrocephalus shunting - 수두증으로 인해 쌓인 뇌척수액을 관을 삽입함으로써 몸의 다른 부위로 수액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시술 방법이다.

* Seizure (발작) - 간질, 경련 등으로도 불리는 증상으로, 뇌의 신호가 잘못되어 몸에 이상을 준다.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눈에 띄는 경련 없이 의식이 흐려지는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 Developmental regression (발달의 퇴행) - 잘 발달하던 아이가 퇴행을 일으키는 증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잘 걷던 아이가 어느 날 걷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의 중환자실은 원할 때 언제든지 보호자가 들어가도 된다. 소아 환자의 경우, 부모님이 집에도 안 가시고 환자와 함께 밤낮 머물기도 한다. 물론 병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있었던 병원은 중환자실 환자들 개개인 모두 각자 방을 하나씩 배정받는다. 나는 환자가 있는 방으로 컨설팅을 나갔다. 그날은 환자의 엄마가 빠질 수 없는 미팅이 있어서 출근을 한 상황이라, 환자의 아빠와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자가 자고 있어서  안의 분위기는 조용했고, 우리는 환자가 깨지 않도록 방의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환자를 임신하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환자가 입원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시던 환자의 아빠는, 다소 격양된 어투로 "정말   있는 검사 ~~ 했다고요. ~~. 근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우리 아이는 완벽했다고요."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차트를 리뷰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있었다.


이 환자의 부모님은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으신 분들이기도 했고, 걱정도 많으신 분들이라 자연임신을 시도해보기도 전에 인공수정으로 임신을 해서 "가장 퀄리티가 좋은" 수정란을 착상시키는 방법으로 임신을 계획하신 분들이었다. 이 환자가 그렇게 태어난, "모든 검사"를 다 통과한 가장 좋은 수정란/태아/유아였다. 그런 아이가 현재 원인도 모른 채 hydrocephalus, seizure, developmental regression이 나타나니,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부모님이 말하는 "모든 검사"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갈까.

많은 분들이 임신 전 혹은 임신 중 검사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고 오해하시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는데, 가장 먼저는 나를 포함한 의료진들의 설명 부족을 들 수 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중요한 정보만 쏙쏙 전달하는데, 그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전학 분야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이해가 되었다가도 잊어버리시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 경우, 다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바쁜 현대사회라는 이유로 다시 설명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버리거나 무시되어 버려서 오해를 안고 살아가시는 경우들이 있다. 또한, 완벽해 보이도록 만드는 마케팅의 영향도 있다. 피 한 방울로 모든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광고나 한 검사로 자폐, 발달 장애, 지적 장애 등을 모두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광고들. 광고에 보면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disclaimer (주의 경고문)" 같은 것들이 붙어 있는데, 이는 법적인 제재에 순응하거나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만들어놓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유전학의 불친절한 면에 의해 오해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부모님이 정의하는 "모든 검사"에는 IVF, ICSI, PGS, carrier screening, first trimester screening, quad screening, NIPT, 양수검사까지 포함한다. 정말 임신 전과 임신 중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하셨다.


 * IVF: in vitro fertilization; 인공수정.

* ICSI: intracytoplamic sperm injection; 정자 하나를 난자에 찔러 넣어주는 인공수정 기법.

* PGS: preimplantation genetic screening; 체외수정 후 4-5일 후 형성되는 배반포 단계에서 세포 몇 개를 떼어내어 염색체 질환에 대한 검사를 진행 (착상 전).

* First trimester screening: 피검사와 태아의 목덜미 투명대 초음파 결과를 합쳐서 태아가 다운증후군 (Trisomy 21), Trisomy 13, Trisomy 18이 있을 확률을 보는 검사.

* Quad screening: 임신 중기 (16-18주쯤) 피검사로 태아가 다운증후군 (Triomsy 21), Trisomy 13, Trisomy 18, open neural tube defect (신경관 결손) 등과 같은 질환이 있을 가능성을 보는 검사.

* NIPT: non-invasive prenatal testing; 한국에서는 니프티 검사로 많이 불리는 검사. 산모 혈액 속에 돌아다니는 태아의 DNA 조각을 검사하여 태아가 다운증후군 (Trisomy 21), Trisomy 13, Trisomy 18, 성염색체 질환이 있을 확률을 봄.



환자의 아빠는 수정란도 가장 예쁘고 "퀄리티"가 좋은 것을 골라서 착상시켰고, 할 수 있는 검사도 다 했다고 하시며, 그래서 우리 아이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개인마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이 부모님에게는 최소 이렇게 지금 딸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전학 전문의 교수님의 진찰과 나의 유전상담 컨설트 결과 exome sequencing을 진행하기로 했다.


Exome sequencing이라는 검사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 몸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유전자, 즉 20,000여 개의 유전자에 오타가 없는지 검사하는 방법이다. 유전자에는 exon이라는 부분과 intron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단백질을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exon 부분만 검사하기 때문에 exome sequencing이라고 부른다. Exon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체 유전체의 1% 정도를 차지하는데, 그 1%만 검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99%는 검사하지 못하는/않는 것이다. 검사를 할 수는 있지만 해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들로 상용화되어 있지는 않다. 또한, "sequencing"이라는 기법을 이용하는데, 첫 문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전자에 오타가 없는지 검사하는 방법이다. 유전자를 문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단어가 빠져 있거나 더 들어가 있거나, 같은 단어가 계속 중복해서 나타나거나 하는 등의 오타/변이는 이 sequencing 기법으로는 검사할 수 없다.


이 검사에 대한 첫 번째 문장만 봤을 때는 완벽해 보이는 검사이지만, 쭉 설명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포괄적인 검사로 사용되고 있는 exome sequencing이지만, 완벽한 검사도 아니고, 검사가 갖는 단점들도 분명히 있다. 나는 환자의 아빠가 "모든 것을 다 검사했다"는 오해를 풀어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Exome sequencing을 하면 또다시 모든 것을 다 검사했다, 가장 완벽한 검사를 했다 등의 생각으로 오해를 하게 될까 봐 걱정하면서.




유전학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유전자 검사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충분히 오해할만하고, 오히려 때로는 오해를 하고 싶기도 하다.

오해를 오랫동안 하다 보면 그것이 마치 진실처럼 느껴지고, 완벽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 환자의 결과가 나오기 전 나는 UCLA를 떠나서 결과 상담은 해드리지 못했지만, exome sequencing을 통해 이 환자의 증상에 원인이 되는 유전자 변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인 유전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 환자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원인을 찾게 되었다.


이 환자의 부모님은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임신 전이나 임신 중에 왜 몰랐을까. 이걸 검사할 수는 없었을까. 어떤 확신을 가지고 혹은 의심을 품고 또 임신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딸의 삶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등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흔하지 않다.

완벽을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기적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흔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이 가족에게는 기적이 흔하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 상황에 맞게 재정의된 "완벽"에 가까운 삶을 누릴 수 있길 멀리서 응원해본다.


가을이 온 줄 알았는데, 아직은 여름인 9월 중순에.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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