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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Sep 22. 2021

내 개인 이메일 주소를 딴다는 것

유전학과 삶 #7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 쉽지 않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한국인이 잘 없는 미국 의료계통에서 아시아인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뭔가 끈끈한 유대감? 연대감? 같은 것이 생긴다.


물론, 위의 경우들 모두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은 워낙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어딜 가나 한국인, 아시아인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렇게 반갑지 않고 엮일까 봐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난,

너~~무 반갑고 막 친해지고 싶다 :)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하는 날이면 열 일 제쳐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응원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리며 우리나라에 나쁘게 한 일본을 막 욕하면서, 독도 문제와 더불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많은 일들에 어이없어하면서 축구를 본다. 그저 하나의 스포츠인데, 왜 이렇게 애국심이 뿜뿜되는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 대한 이런 감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개인을 국가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로 만났다는 것은, 내가 존중하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냥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뉴욕의 산부인과에서 일할 때 일이다.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일본인 산모와, 영어를 아주 조금 하는 일본인 남편이 내 상담실로 들어왔다.




나: Hi, my name is Arang Kim and I am your genetic counselor. Very nice to meet you!

일본인 커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Hi. Thank you.

나: What brings you in today?

일본인 남편: My wife, (배를 가리키며) baby, sick.


세 단어였지만, 나는 다 이해가 되었다. 그의 간절한 눈빛, 제스처, 두려움에 살짝 떨리던 그의 손 끝.

나는 이미 차트로 무슨 일인지 다 확인을 하였지만, 항상 시작은 환자들에게 왜 왔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차트에는 적혀있지 않은 새로운 질문과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게 될 수도 있고, 그에 맞춰 상담의 방향을 정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산모는 임신 16주 차로 초음파에서 태아가 hydrocephalus, 즉 수두증이 있는 것으로 보여서, 혹시 유전적인 요인은 없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유전상담 의뢰를 받고 나를 만나게 되었다. 수두증이란, 뇌척수액이 비정상적으로 뇌실과 지주막하 공간에 축적되는 것을 말한다. 태아가 초음파 상으로 수두증이 있는 것으로 보이면, 그 정도에 따라 뇌 발달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만약 그 원인이 유전학적인 부분에 있다면, 질환의 예후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에 임신 중 여러 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태아의 수두증이 심하지 않은 편이면 자연적으로 괜찮아지기도 하지만, 이 산모처럼 주수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상태가 꽤 심하게 보이는 경우에는 예후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유전학적으로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검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1. L1CAM 유전자 검사 - 이 유전자는 X 염색체에 있는데, 새로 변이가 생기는 경우가 더 많지만, 간혹 엄마로부터 물려받는 경우가 있다. 여자는 X 염색체가 두 개 있어서 한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도 다른 유전자가 일을 제대로 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자 같은 경우에는 X 염색체가 하나만 있어서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수두증뿐만 아니라 뇌에 다른 문제들도 생길 수 있다. 이 L1CAM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산물은 뉴런을 만들 때 사용되는데, 뉴런이 올바른 위치에 자리 잡고, 다른 뉴런과 연결이 잘 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서 제대로 기능을 못할 경우에는 뇌 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2. 양수검사를 통한 염색체와 마이크로어레이 검사 - 수두증이 어떤 염색체 질환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검사들에 대해 상담을 진행한다.


3. Zika virus 검사 - 이 환자를 만났을 당시, 남미에서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zika virus가 유행하던 때라 태아가 수두증이 있는 경우에는 부모님이 남미나 zika virus가 유행하던 곳에 다녀온 경우 무조건 이 검사를 실시했었다.



사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해도 답을 찾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수두증이 유전적인 요인일 수 있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배제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가 유전적인 요인들을 다 검사할 수도 없고, 알고 있지도 못한 실정이기 때문에 답을 찾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이 부부 같은 경우에는 임신 한 달 전쯤 남미로 여행을 다녀왔어서, zika virus 검사까지 다 얘기를 한 상황이었다. 영어를 못하셨기 때문에 설명을 하는데 큰 제약이 있었다.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전달할 정보도 많고, 검사를 하는 경우에는 검사 동의서까지 받아야 하는데, 내가 효율적으로 잘 전달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참 미안했다. 그래도 손짓 발짓해가며 최대한 쉽고 심플한 단어들로 설명을 했고, 구글 번역기도 그 자리에서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산모와 남편도 열심히 알아듣기 위해 노력했다. 평소보다 상담 시간이 두 배 넘게 걸렸지만, 마지막에는 커뮤니케이션이 그래도 어느 정도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다른 나라 출신의 외국인들과는 통하지 않는 그런 손짓 발짓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상담 말미에는 끈끈한 전우애와 같은 무언가가 형성되었다. 상담 내내 무표정이던 산모는 마지막에 thank you를 얼마나 많이 하던지... 마음 한켠이 아린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부는 위에 나열한 세 가지 검사를 다 해보기로 했고, 검사 결과는 허무하게도? 다행히도? 안타깝게도? 음성이었다. 즉,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임신이 진행될수록 태아의 뇌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 부부는 임신을 종결하기로 했다.




검사 결과에 대한 상담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영어를 그나마 조금 알아듣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결과가 나왔다, 답을 찾지 못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얘기할 때 저편에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안도하는 숨소리가 불안했다. 원인을 찾지 못한 것뿐이지 태아에게 있는 수두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유전상담이란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해 상담하는 것은 기본이고,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환자들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도 해야 하고, 설명을 받아들이는 그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니.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히 산모를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 일본어를 하시는 분이라 환자에게 미쳐 커뮤니케이션이 안된 부분은 산부인과 선생님께 맡길 수 있었다.


두 번째 상담이 이루어졌다. 사실 결과 상담은 전화로 많이 하고, 후속 관리는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맡아서 하시기 때문에 환자를 다시 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환자의 요청으로 두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상담과는 다르게 산모와 남편의 얼굴에 무언가 결심이 선 것 같은 표정과 함께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두 번째 상담은 임신 약 22주쯤 이루어졌는데, 산모가 나를 한 번 보고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꺼낸 종이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랑, 땡큐 베리 머치 포 헬핑 미 앤드 마이 베이비.

아이 윌 세이 굿바이 투머로 투 마이 베이비 벗 아이 윌 네버 포겟 유어 카인드니스.

유어 베리 나이스 펄슨.

땡큐.

땡큐.


나는 보통 환자들 앞에서는 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환자의 상황에 내가 같이 빠져버리면 거기서 나오는 게 힘들다는 것을 경험했던지라, 친절하되 감정상으로는 거리를 두면서 상담을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근데 그날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당시에 임신을 한 상황이라 배가 꽤 나와 있어서 누가 봐도 임신한 것이 티가 나는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뭔지 모르게 더 미안하고, 불편했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고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종이에 보니 나에게 영어로 말해주려고 일본어로 영어 발음을 써서 준비해온 것이다.

여기서 난 그냥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말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면 임신을 종결하러 가는 산모가,

나에게 고맙단다.

나의 친절함에 고맙단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내 개인 이메일로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그 일본인 산모였다.

나는 당시 첫째를 낳고 출산휴가 중이라 병원에 출근을 안 하던 상황이었다.

이 산모는 다시 임신이 되어서 유전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서 섭섭했다면서 그래도 아들 잘 낳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반갑다는 내용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였지만, 요즘 학원을 다니며 배운 영어로 열심히 썼다고 했다. 

두 번째 상담 당시 내가 조금 있으면 출산휴가를 가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면서 내 개인 이메일 주소를 줬었는데,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니 너무 고마웠다. 가끔 환자들에게 내 개인 이메일을 알려줄 때가 있는데, 이렇게 연락을 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혼자 또 감동.


이 한 통의 이메일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몸 회복 속도도 더뎠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내가 쌓아온 커리어가 하루아침에 아이와 함께 날아갔다는 생각에 산후우울증 비슷하게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드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찰나에, 나를 기억해주는 환자에게 연락을 받으니, 큰 위로가 됐다.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의료진과 환자 사이로 만나다 보니, 아무래도 의료진인 내가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에 서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보면 그게 맞다. 하지만 나만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처참히 깨부수고, 환자 덕분에 내 삶이 위로를 받는 그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이런 감사했던 순간들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남겨뒀으니, 어느 날 또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땐 이 글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되길 :)


바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Arang Kim, MS, CGC

Certified Genetic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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