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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과로사하는 시간

은퇴 후,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점차 시간 감각, 날짜 감각이 무뎌졌다. 그러면서 일주일이 통째로 사라지고 한 달이 빠르게 흘러갔다. 초기에 느리게 흐르던 시간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정말 물 흐르듯 빠르게 삶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는 너무 빠르게 스치는 세월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시간이 이리도 빠르게 흐르고 상대적으로 나는 늙어가는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뭐라도 해야지. 은퇴했다고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일단 일주일에 2번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 취미이자 특기는 숨쉬기이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소파에 눕는 거다. 그러니 운동이라곤 숨쉬기밖에 없는데 은퇴하자 딸의 특명이 떨어졌다. 집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지 말고 운동하러 다니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한 거다. 집 가까이 헬스장이 있는데 하면 하겠지만 헬스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하다 보면 지루해지는 게 싫었다. 딸이 권한 필라테스는 그리 큰 움직임은 없었지만, 열심히 하고 나면 다리가 떨릴 정도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다리가 후들후들하면 아, 오늘 운동을 제대로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있어서 열심히 다녔다. 아니, 사실 값이 비싸서 더 열심히 다녔는지도 모른다. 1:1 강습은 아니지만 3:1 레슨도 가격이 싸지 않았다. 몇 주년 이벤트라 해서 조금 깎아주거나 횟수를 더하는 시즌에 등록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은퇴자가 감당하기엔 비싼 수업료였다.


운동하는 것 외에 한 달에 한 번 같은 시기에 은퇴한 친구와 영화 보고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는 자칭 ‘문화의 날’을 만들었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도 영화관에 앉아 보고 맛집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시간도 너무 좋았다.

그러다가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은퇴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넷플릭스나 보고 티브이 앞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고 싶진 않거든요.”



나도 집에서 넷플릭스나 보며 하루를 마감하긴 싫었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 유익하면서도 도움이 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친구는 인문학과 관련 있는 강의를 듣기 시작했고 그게 끝나자 사서삼경을 공부하는 과정에 등록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좋아하는 건 책 읽고 글 쓰는 거다. 나는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정리하고 매일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직에 있을 때는 주로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글을 썼는데 퇴직 후에는 나의 내면과 직면하는 시간을 갖고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시간은 많았고 나는 퇴직했기에 걸리적거릴 것이 없었다.


은퇴하고 몇 달이 지나가자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일주일에 2번 운동, 매주 화요일 독서 모임, 영어소설 일기 모임, 친구와 만남 등등이 그것이다. 일주일을 빼곡히 해야 할 일로 채워 넣고 나니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화살처럼 날아가 버렸다. 누가 만나자고 해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처럼 나는 은퇴해서 일이 없었는데도 일이 많았다.



어느 날 문득 창밖을 보다가, 내가 왜 이렇게 바쁜 거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를 채운 일과를 바라보며 바쁘게 허덕이며 사는 삶이 행복한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사실 조용히 집 안에서 책이나 읽고 내 생각을 끄적거리는 삶을 선호한다. 그런데 은퇴 마케팅에 휘둘려 내 삶의 방향을 잃고 말았다. 바쁘게 사는 삶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라 나를 잃어버리고 질주하는 삶이 과연 괜찮은가. 하는 자각이 싹튼 것.

대부분 은퇴 초반에 너무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몰두한다. 외로움이 스며들 순간을 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잃고 방황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나는 나의 하루를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일로 채우고 있었다. 그 일들을 완수하느라 헉헉거리며 하루를 보냈는데 그 모습은 전에 직장에 다닐 때 업무에 치여 힘겨워하던 모습과 흡사했다. 게다가 그 모습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하루를 짜임새 있게 관리하고 허투루 살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러느라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잃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모임을 줄이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강요로 ‘은퇴 후의 삶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식의 방식은 던져버렸다. 대신 창문을 열고 신록이 얼마나 푸르러가는지,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이 얼마나 다른지, 걷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터득해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일하느라 바빠서 놓쳤던 가족과의 행복한 대화, 다정한 눈빛 속에 오가는 따스함을 만끽하고 빗방울이 꽃잎에 스쳐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내가 원하는 은퇴 후의 편안하고 조용한 삶을 펼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 새 세상을 만나되 내면의 충만함을 잃지 않는 노후, 어찌 보면 추상적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조용하고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며 참 은퇴의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시간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와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대개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거다.

나는 은퇴 후의 삶이 남 보기에 그럴듯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삶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은퇴자의 시작점이 아닐까?

그동안 보냈던 은퇴 초기의 시간은 이 삶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지체없이 방향을 과감하게 틀어 그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실 은퇴 후에 남은 삶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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