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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아닌 작가로

나의 꿈은 소설가였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책 속에서 무수한 인간들을 만나며 어느새 다양한 인간이 가진 독특함에 매료되고 그런 인간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문예창작학과로 진로를 잡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다. 사람 일은 모르니 직업을 가지기 쉬운 학과로 진학하라는 게 요지였다. 나는 비교적 순하고 착한 딸이었기에 그 말에 따라 원래 관심이 많았던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하면 나의 꿈에 한 발짝 성큼 다가서리라 생각했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은 실제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문학론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좋아했다. 시와 소설에 빠져들었고 그 내용을 흡입하는 빨대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와중에 단편소설을 써서 신문사에 투고도 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말하길, 신춘문예에 글을 보내고 당선 소감을 쓰라고 연락이 오는 시점이 크리스마스 전후라고 해서 그즈음에는 외출도 삼가고 집에서 목 빠지게 소식을 기다렸으나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골방에 파묻혀 주먹질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두 번 정도 투고를 하고 희망에 싸여 시간을 죽였으나 좋은 소식은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어려서 책을 좋아했던 나는, 늘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놀았다. 할아버지는 전집류를 진열하여 자신의 지적인 충만함을 외부에 드러내길 좋아하셨기에 어린이가 읽기에 다소 버겁고 두꺼운 세계문학 전집 같은 책이 주로 많았다. 나는 그 책 중에서 비교적 내용이 쉽고 짧은 글을 주로 읽으며 성장했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진 못했으나 작품이 주는 전반적인 분위기나 작가의 특징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작품에 대한 취향과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벽으로 스며드는 남자 이야기와 광고를 보고 물건을 구매하지만, 끊임없이 과장, 허위 광고에 망가지는 남자의 삶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했다. 벽으로 스며드는 특별한 재능은 그가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일 수 있었는데 하필 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벽과 한 몸이 되어버린 그가 며칠 동안 약을 먹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을 때의 낭패감은 광고에 혹해서 매번 물건을 구매하지만 결국 그 물건은 조악한 쓰레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 상황과 유사하다.



이런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상상하기를 즐긴 나는, 일상에 스민 환상적인 이야기나 삶이 우리에게 주는 허위와 거기에서 맛보는 씁쓸한 인생의 맛을 좋아했으니 어린아이의 취향치고는 다소 독특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학교에 근무할 때는 글을 집중해서 쓸 시간이 부족했다. 나에게 허락된 자유시간은 주로 방학 기간이었다. 나는 방학 때 집에 들어박혀 단편을 완성하기도 했고 아직 읽지 못했던 책을 마음껏 읽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개학을 하면 주어진 업무에 동동거리며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학교는 살아있는 정글이었고 프로스트의 시처럼 ‘길은 길로 이어져 다시 보기가 어려웠던 것’을 절감할 뿐이었다.


은퇴한 이후에야 나는 오롯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내 전화번호부에 있는 선생님 숫자만큼 앞으로는 작가들 전화번호로 가득 채우겠노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학교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 학교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한국의 고등학교가 얼마나 획일적인 공간인지, 거기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삶이 얼마나 불쌍한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힘껏 달리고 달려도 제자리를 돌고 있는 많은 아이가 매번 시험이 끝날 때마다 죽을 만큼 좌절하는 것을 보며 문제의 원인을 말하고 싶었다. 아이들의 불행한 고리를 끊고 싶었다. 때로 반항으로, 가출로, 자살로 항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점차 병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음을 느껴야 했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가르쳐 온 아이들의 상황과 실태를 알리고 한국 교육의 문제점도 꼬집고 싶었다. 이대로는 절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 7세 고시에 이어 4세 고시까지 이어지는 한국 교육의 횡포. 그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아이들의 절망과 도전, 실패와 좌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 속에 많은 이야기가 꿈틀대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 이야기가 무르익을까, 인물이 종이를 찢듯이 이야기 속에서 폭발할 날이 과연 언제일까.

나는 지금 인생 이모작의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뒤로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이 또한 은퇴가 내게 준 기회이자 선물이다.

더는 머뭇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나만의 색채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고 다짐하는 이 시간, 외롭고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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