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과 단단함 사이

편안함의 물동이

by 말로이

부모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A4용지 두 장으로 나를 표현해보는 시간이다. 나는 그때 '나 사랑하기' 라는 숙제를 혼자 할 때라 아무것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A4 2장 그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맞춰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A4용지 하나를 구겨지지 않게 돌돌 말았다. 그리고 남은 A4용지 반을 접어 똑같이 말아서 다른 A4용지를 감싸고 고정했다. 언제든 종이를 풀면 나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다.


나의 작품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서로의 작품에 별명을 지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서로의 포스트잇에 붙여주고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을 작품의 주인이 선택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포스트잇에 이런 별명을 남겼다. '유연함과 단단함 사이 어딘가' 이 말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이 별명을 뽑았다. 실제로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내 모습을 지향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잇은 2024년 다이어리 뒷면에 붙어있다.


나를 이해하고 수용해 :)


나는 천성이 세련되고, 심플하며, 카리스마 있고 단호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대신에 친숙하고 가끔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평소에 부드럽고, 가끔 단호한 사람일 수는 있다. 그런 내가 좋다. 이해되기 때문이다. 맥락적으로 나는 내가 왜 그러는지를 안다. 우리는 이해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부족한 나지만 사랑스러울 수밖에.


난 다 이해해. 네가 왜 그러는지....


어릴 적엔 숨기고 싶었던 예민함과 섬세함


예전에는 내 예민함을 들키기 싫었다. 예민함이 나의 결점이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는 내 예민함을 약함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내 예민함을 조용히 바라본 순간, 이것이 나다움을 만든 거란 걸 알게 되었다. 나의 예민함을 조금만 알아주고 달래주면 세련된 보석이 된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나의 예민함을 사랑한다.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잘 다듬어진 섬세함이나, 잘 다듬어진 예민함을 좋아한다.

깊은 단순함이나 무언가를 소화해 낸 심플함도 좋아한다"


이 과정은 모두 자기 이해에서 시작된다. 자기를 이해하고 수용한 과정을 거쳐야만 이 단계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기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나를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예민함과 섬세함을 다듬어간 성찰들이 멋지게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둔한 부분이 있고 예민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자신의 예민함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자신은 예민한 구석이 없는 양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 고찰해 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다. 그런 배려 없는 말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공부였다. 그리고 지금은 감사하다. 그들 덕분에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함의 물동이


나의 단점을 바라보고, 토닥여주고, 수용하고 이해할 때 편안함의 물동이가 채워진다.


이렇게 편안하게 유연한 엄마, 단단한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아이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두면 엄마는 유연해야 한다. 아이는 늘 성장하고, 성장하며 많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세계를 중심으로 두면 단단함도 필요했다. 이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조금씩 더 나은 엄마를 연습한다. 여전히 미숙하고 오늘 아침에 또 아이들을 등원시키느라 닦달 후 후회하는 엄마지만 한 달이 지나며 조금이라도 나아진 내가 그려진다.


그래서 매일 글을 쓴다. 글쓰기는 다짐의 과정이다.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웬만하면 실천하고 있는 부분을 쓰려고 하고 글로 쓰면 더더욱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글쓰기가 나를 더 나은 엄마로 만들어준다. 두 자매의 엄마는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 가족은 잘난 엄마, 잘난 아이보다, 지금 당장 행복한 엄마, 지금 행복한 아이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엄마의 숙제 : 나를 사랑하기는 계속 진행된다.







이전 20화나를 사랑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