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말
안다는 말의 깊이
안다는 말에도 깊이가 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속담은 속담이겠거니 했다. 예를 들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라는 말들. 그러나 서른이 넘어가며 이 속담들이 다르게 들렸다. 언젠가부터 화려한 미사여구를 넣은 좋은 글들보다 구전으로 내려온 옛말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담은 다양한 지혜가 들어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미 아는 것을 배우는 것도 즐거워졌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내가 모르는 걸 발견하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를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도 한 번쯤은 새롭게 만나려고 해 볼 필요가 있다. 아는 것도 낯설게 만나 볼 필요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내가 가진 편견을 깨는 것이다. 자기 틀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 예쁜 것을 봐도, 맛있는 걸 먹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하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도 사랑이다.
나를 사랑하면 좋은 것
첫 번째로 자신을 사랑하면 '미움'이 줄어든다. 미워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넘쳐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 있는 폭신한 실내화를 신고 아이들을 등원, 등교시킨다. 모두가 다 나간 조용한 집을 조금 청소하고 저녁 메뉴를 생각해 놓은 후에 식탁 한쪽에 앉는다. 요즘엔 식탁 한쪽이 내 자리다. 좋아하는 거실 창을 등지고 있지만 안정감이 느껴진다. 여기서 백지의 블로그와 브런치를 켜는 것이 일상이다. 그리고 그날의 무드에 맞는 커피를 고른다. 이렇게 집에서 커피를 고르는 것도 나에게는 즐거움이다. 믹스이거나, 일리커피를 내리거나, 스틱커피다. 조금씩 느리지만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걷는 것이 행복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누군가를 미워할 때 누릴 수 없는 여유로운 행복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려다가도 내 일상에 집중하게 된다.
두 번째로 자신을 사랑하면 주변 사람들이 편안해진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불편한 것이 많다. 내 안에서 해소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동 발달에서 배웠고, 많은 책에서 말하고 있는 '투사'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잔소리가 늘어난다.
바뀐 것은 없다.
단지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내가 달라짐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로 재단한다. 자기 안경 삐뚤어진 줄 모르고 세상을 삐뚤게 본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면 불편한 것이 줄어든다.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때 좋은 점도 보인다. 자신의 좋은 점을 봐주는 사람을, 우리는 또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도 주변도 편안해진다.
세 번째로 나를 사랑하면 삶이 풍성해진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깨달음을 공유한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경험하지 못한 걸 경험하는 계기로 만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보는 계기로 만든다. 그런 사람의 삶이 풍성하지 않을 리 없다. 대화의 모든 순간 험담을 하는 사람은 삶이 메마른다. 시선이 좁아진다. 험담은 하는 순간 자신이 결정권자가 된 양 우쭐해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험담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해소를 위해 험담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늘 양이 문제다. 해소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나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것들
나를 이해하며 내 속에서 발견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 속에서 발견한 어떤 것들을 버려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첫 번째로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내 MBTI는 INFJ다. 이전에는 J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사람이나 상황을 통제해야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경험해 보니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을 답답하게 만드는 올가미였다. 이 올가미는 함께하는 상대도 시들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많아지면 미움으로 가득 찬다. 저 사람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갇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해주지 않지?"라는 말을 달고 산다. 이 말은 상대방의 반응을 통제하겠다는 말이다. 이 마음을 없애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아직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내 신념과 부딪히는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할까?"라는 마음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전처럼 나를 괴롭게 하거나 삶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사람이기에 모든 걸 초월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 통제가 나와 상대의 삶을 방해한다면 꼭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질투에 집착하는 마음이다. 나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친구들에게도 남자 친구에게도 질투가 많았다. 왜 질투가 많은지에 대해 오랜 시간 고찰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서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자 좋은 친구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겼다.
질투는 상대에게 자신만 아는 불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상대에게 불화살을 쏘았으니 뜨거워서 상대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 가까이 가면 그 불화살에 나도 데어버리니까. 그래서 멋진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다. 질투를 마주 보고 질투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니, 질투를 유발하는 사람들이 귀해졌다. 그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두근두근 거린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싶은지 알려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질투가 싫지만은 않아졌다. 질투라는 감정은 속박되지만 않으면 아주 귀하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탓하는 마음이다.'내가 너 때문에 ~~!!!!!' 이 말은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직장을 다녀보면 꼭 만나게 되는 유형이다. 그냥 하면 되는 일도 구시렁거리며, 같은 공간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사람이 꼭 있다. 탓하는 마음은 세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간단한 일도 꼬아버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니탓 내 탓' 하지 말고 해결하면 빠른 일들도 있다. 어떤 일은 어디서 누가 이 문제를 계속 만드는지 찾아야 하는 일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 탓을 버리면 인생이 편해진다. 사실은 자신도 안다. 탓하는 내가 멋있지 않다는 걸.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 사랑하기가 힘들어진다.
나를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
나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지금 안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 더 깊이 나를 아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를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새롭게 나를 만나고, 자신을 이해하면,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해는 사랑보다도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 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새로운 시선으로 보면 내가 이해된다."네가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고 나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깊이 아는 것이고, 앎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편견을 마주 보는 일이다. 그리고 발견한 편견을 스스로 깨주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삶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나를 안내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만 그 가치에 대해 깨닫는 습성이 있다. 건강을 잃고, 일상을 잃었을 때 당연했던 가치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은 잃어버려도 잘 모른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기도 한다. 어쩌면 애초에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아이에게 삶으로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아이가 또 다른 아이에게 사랑을 줄 것이고 그 사랑이 계속해서 전달되며 세상은 더 많이 따뜻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주 이타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 이타적인 일 덕분에 또다시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은 알고 보면 아주 깊은 말이다.